수술 사전동의·진료비 게시, 농장동물 진료에도 의무화됐다?
반려동물로만 논의했지만 정작 법령에는 구분 근거 없어..동물병원이면 모두 해당
수술 등 중대진료행위의 사전설명·서면동의, 주요 진료비 게시를 의무화한 개정 수의사법이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든 축종에 적용될 전망이다.
지난달 입법예고된 수의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도 규제 적용 축종을 별도로 명시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법 개정논의는 개·고양이에만 집중됐는데, 정작 규제 범위는 소·말 등 가축으로까지 번진 셈이다.
국회에서도 논의 안된 농장동물 진료비 게시도 의무화
수술 등 중대진료에 관한 설명·동의, 주요 진료비 게시 등을 골자로 한 개정 수의사법은 지난 1월 공포됐다.
이에 따라 7월 5일부터는 전신마취를 동반한 수술 등 중대진료행위를 할 때 사전에 후유증·부작용·수술법 등을 설명하고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 2023년 1월 5일부터는 초·재진료, 입원비, 엑스레이 검사 등 주요 진료비를 미리 게시해야 한다. 수술 등 중대진료행위의 비용도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규제의 적용대상(축종)이 별도로 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소, 말, 돼지, 가금 등 모든 동물에 대한 진료에 규제가 적용되는 셈이다.
국회에서 수의사법 개정을 심의할 때도 이 같은 문제는 검토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수의사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24일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검토했다. 해당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국회의원과 농식품부 모두 반려동물에서의 진료를 전제로 논의했다. 가축이나 농장동물 관련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후 취재과정에서 농식품부는 반려동물병원에만 중대진료·진료비 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위법령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입법예고된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서는 이 같은 장치를 확인할 수 없다. 함께 예고한 규제영향분석서에는 산업동물 수의사를 피규제자에 포함시키면서도, 이해관계자는 반려동물 양육 가구인 동물병원 이용자로 한정했다.
소는 전신마취 수술 거의 없고, 말은 이미 설명·동의 절차 정착
다행히 입법예고안 대로라면 당장은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전망이다.
반려동물 개체치료를 전제로 만들어진 규제인만큼 돼지나 가금에는 적용될 여지가 별로 없다. 소, 말, 야생동물(동물원·수족관 포함) 등 개체치료를 받는 축종에 적용된다.
이중 야생동물은 주인이 없어 서면동의나 게시의 의미가 없다. 동물원·수족관도 자체 동물병원에서 자기 소유의 동물을 진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해당사항이 없다.
시행규칙 개정안은 사전설명·서면동의 의무가 발생하는 대상을 전신마취를 동반한 수술·수혈로 규정했다.
소는 전신마취 수술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왕진을 나간 상황에서 전신마취를 시도하기엔 제약이 많은데다, 반추동물의 특성상 전신마취가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말은 산통이나 근골격계 부상으로 인한 전신마취 수술이 적지 않다. 개정 수의사법 규제가 적용되는 셈이다.
다만 이미 말에서는 사전설명이나 서면동의 절차가 현장에 자리잡고 있다.
일선의 한 말수의사는 “주로 말 관리를 위임받은 조교사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서명을 받는다. 필요하면 마주에게도 사전에 설명한다”며 “말이 워낙 고가인데다 건강과 관련한 보험 문제도 복잡하다. 진료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절차를 철저히 지키는 편”이라고 전했다.
진료비 게시 문제도 비슷하다. 소에는 없고, 말에는 있지만 이미 규제내용을 실시하고 있는 형태다.
시행규칙 개정안이 게시대상으로 제시한 항목은 초진료·재진료·상담료·예진료·입원비·개 종합백신·고양이 종합백신·광견병백신·켄넬코프백신·인플루엔자백신·전혈구 검사 및 엑스레이 검사 및 판독료다.
소는 통상 왕진비를 청구한다. 진찰비와 출장비를 결합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전혈구 검사나 엑스레이는 POCT 기기가 없거나 인력 문제 등으로 목장 현장에서는 잘 실시되지 않는다.
말에서는 초·재진이나 혈액검사, 엑스레이 검사가 일상화되어 있다. 다만 마사회 말보건원 동물병원의 경우 진료비를 공개하고 있는 것은 물론, 주고객인 조교사들이 대부분 오랜 기간 동물병원을 이용하면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혈·주사 등 추후 문제 소지..축종 명확화 필요
하지만 당장 문제가 없더라도 규제 축종을 명확히 명시할 필요성은 지적된다.
추후 시행규칙 개정으로 서면동의 대상이나 진료비 게시 대상이 추가·변경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여러 축종에 모두 적용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검안비용이 추가된다면 농장동물에서 일상화된 부검에 적용될 수 있다. 채혈이나 주사료, 수액처치 등도 마찬가지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입법 단계 논의는 반려동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농장동물에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진료비 게시항목을 정할 때 의견을 반영했다”면서도 “(축종 관련) 문제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입법예고 기간 중에 추가 의견을 수렴하면서 관련 논의를 지속하겠다”고 전했다.
수의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5월 31일까지 통합입법예고시스템(바로가기)이나 농림축산식품부 방역정책과(seungmad@korea.kr, fax.044-868-0628)로 개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