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려견 심장약 사용내역 모아봤자 쓸데가 있나?
수의사 직접사용 처방대상약 전산보고 범위 축소 추진..행정부담은 진료비 인상으로 이어져
수의사가 직접 사용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의 전산보고 의무 범위를 조정하는 수의사법 개정안(대표발의 김선교)이 정기 국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일선 수의사들에게 주어진 행정업무 부담은 줄이는 규제개혁 법안이지만 통과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문위원실이 낸 개정안 검토보고서는 전산보고 의무 축소에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담았다.
반면 수의사회는 개정안이 통과되어도 항생제 오남용 억제라는 수의사 처방제의 도입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다며 통과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처방대상약 전산보고 의무화에 이어 중대진료행위 사전설명·서면동의 의무화 등 진료 관련 규제가 연이어 강화되며, 일선 동물병원의 행정부담이 크게 증가했다는 성토도 나온다. 행정부담 증가는 결국 진료비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규제 효율화와 함께 행정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의사 직접사용 처방대상약 전산보고 대상 줄인다
김선교 의원안은 수의사가 직접 사용한 내역을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eVET)에 의무적으로 입력(전산보고)해야 하는 처방대상약의 범위를 조정한다.
당초 처방대상약 전체였던 전산보고 대상을 ‘오용·남용으로 사람 및 동물의 건강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동물용의약품(마취제·호르몬제·항생항균제)’ 중 농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일부 의약품으로 축소하는 형태다.
생물학적 제제나 수의사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여 지정된 처방대상약(전문지식 처방대상약)은 의무 전산보고 대상에서 제외한다(본지 2022년 6월 10일자 ‘수의사 처방대상약 사용내역 전산보고 범위 줄인다‥법 개정안 발의’ 참고).
기존 전산보고 의무화 당시에는 일선 임상수의사의 반발이 거셌다. 규제 시행 전 홍보가 부족했던 데다, 처방대상약 유통실태 관리라는 명분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약사예외조항으로 약사가 수의사 진료·처방 없이 판매하는 처방대상약은 전산보고 의무가 없는데, 오히려 오남용 우려가 적은 수의사의 직접 사용부터 먼저 규제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항생제의 전산보고 의무는 남기되, 반려동물 임상에서 부담이 큰 전문지식 필요 처방대상약의 규제 부담은 없애는 김선교 의원안이 절충안이 된 셈이다.
전산보고 완화, 처방제 취지 퇴색 우려된다지만..
‘정부가 반려견 심장약 사용내역 모아서 뭘 할 건가’
하지만 김선교 의원안에 대한 전문위원회 검토보고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검토보고서는 전산보고 의무 대상 완화가 ‘처방대상약 유통 실태를 투명하게 관리해 오남용 방지하려는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자처방전 의무화 수의사법 개정 이후 2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 전자처방전 발급이 미미하고, 항생제 사용도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수의사회는 항생제 오남용 방지가 수의사 처방제 도입의 핵심 목표라며 반박했다. 김선교 의원안도 항생제는 전산보고 의무대상으로 남기는 만큼 공중보건상 위해를 관리하려는 기존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애초에 전문지식 처방대상약은 수의사 사용 내역까지 정부가 파악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도 지목했다.
반려동물에서 쓰이는 전문지식 처방대상약은 진통소염제나 심장사상충예방약, 심장약, 신장약, 피부약 등이다.
반려동물의 질병 통계도 없고, 특정 질병을 어떻게 관리할 지에 대한 정책도 없는데 관련 의약품 사용내역만 먼저 파악해봤자 쓸데도 없다는 얘기다. 당장 필요성도 불분명한 기록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체 동물병원에 규제를 만든 셈이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항생제가 아닌) 일반적인 치료용도로 쓰는 약품의 사용내역까지 모두 보고하라는 것은 큰 부담인데다, 그 자료를 가지고 정부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목표도 불명확하다”고 꼬집었다.
‘동물병원 행정업무 늘면 진료비도 올라간다’
전산보고 운영 지원정책 고민해야
동물 진료에 대한 규제가 점차 심화되며 행정업무가 과도하다는 성토도 이어졌다. 지원없이 일을 늘리다 보니 진료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일 열린 대한수의사회 이사회에서 이승근 충북수의사회장은 “처방제에 이어 수술동의서, 진료비 게시까지 규제가 늘어나며 행정업무가 수의사의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고 있다”면서 “수술동의서만 해도 (의무화 법 시행 전에 비해) 최소 30분 이상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이승근 회장은 “시대가 변하면서 설명·기록을 해야 할 일이라 보더라도, 수의사에게 (행정업무에 대한) 지원은 없다”면서 “결국 진료비 상승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도 “정부는 동물병원의 행정업무 증가를 보상해주는 시스템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면서 “동물병원으로서는 (행정업무 비용을) 진료비에 반영시키는 방법 밖에 없고, 그래서 규제를 도입하면 진료비가 폭등한다고 거듭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정부가 법만 개정하는 것을 넘어, 실제 동물병원 현장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처방대상약 사용통계가 필요하다면, 일선 수의사들이 진료 과정에서 생산한 기록이 큰 불편 없이 집적될 수 있는 운영방식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개별 전자차트(EMR)를 사용하는 동물병원에게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eVET)에 따로 입력하라는 주문은 현실성이 없다.
결국 차트에 입력한 내용이 eVET에 자동 연동되는 기능이 핵심인데, 차트업계에서는 벌써 ‘처방대상약 전산보고가 본격화되면 서비스 민원이 폭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연동기능 자체는 이미 개발됐거나 완료를 앞두고 있지만, 일선 동물병원의 초기 행정부담과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기존에 ‘내복약’ 등 청구 목적의 기록에만 치중했던 동물병원이라면 개별 진료마다 의약품 성분별로 기록을 남기도록 ‘문화’를 바꿔야 하는 일인데,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차트업계 관계자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 도입 당시에도 사람 병의원에는 연동프로그램 운영을 정책적으로 지원했지만, 동물병원과 동물병원용 전자차트에는 아무런 지원도 없었다”며 “지금도 NIMS 관련 민원이 서비스 부담은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정부의 규제가 민간의 사업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기록 업무 증가는 결국 동물병원과 (전자차트) 프로그램사들이 감당하게 된다”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인프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