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국감] 국정감사장에 처음 등장한 동물병원 의료사고 피해자
동물의료사고 정의도, 분쟁 관리제도도 없다
국정감사 현장에 동물병원 의료사고 피해자가 등장했다. 동물병원 의료사고 관련 참고인이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은 4일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동물병원 의료사고 피해자(보호자)를 참고인으로 신청하고, 동물 의료사고 분쟁을 조정할 중재제도 필요성을 지목했다.
2015년 이후 수의사 면허정지 처분 33건
동물의료사고 법적 정의, 관리 제도 없어
김승남 의원이 농식품부로부터 받은 ‘반려동물 의료사고 현황’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국내 동물병원 의료사고에 대한 관리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수의료분쟁과 관련한 민원이 들어오면 지자체가 점검하고, 그 과정에서 수의사의 부적절한 진료행위가 확인되면 면허정지 등의 처분을 내리는 정도다.
그마저도 면허정지 처분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소수에 그치는데다, 사고 분쟁이 얼마나 일어나는지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수의사법에는 동물의료사고가 무엇인지 법적인 정의조차 없다.
김승남 의원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수의사에게 면허정지 처분이 내려진 건수는 33건에 그쳤다.
사유별로는 유효기간이 지난 약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예후가 불명확한 수술·처치를 할 때 위험성이나 비용을 알리지 않거나(5건), 허위·과대광고(4건)가 뒤를 이었다.
불필요한 검사·투약·수술 등 과잉진료행위나 부당하게 많은 진료비를 요구하는 등의 사유로 면허가 정지된 사례는 없었다. 소비자 측에서 과잉진료나 고가의 진료비에 대한 불만이 주로 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면 소비자단체에 접수된 동물병원 진료 관련 민원은 훨씬 많다. 한국소비자연맹이 2017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접수한 동물병원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988건에 달한다.
설명의무 위반, 과태료 낮다?
분쟁조정 기구 설립 주장 나오지만..
시기상조, 수의사 악마화 경계 시각도
김승남 의원은 동물의료 주무부처인 농식품부가 동물병원 의료사고·분쟁 관련 가이드라인이나 반려인 지원 제도를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국가로부터 제도적 지원을 받거나 동물병원에서 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의무화된 수술 등 중대진료행위에 대한 사전설명·서면동의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날 국감장에 출석한 참고인도 비슷한 취지로 진술했다. 진료 시작 직후 반려견이 폐사했지만, 사전에 폐사 가능성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현행 수의사법이 중대진료행위 사전설명·서면동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는데, 진료비가 고가인 동물병원에서는 과태료 금액이 합리적이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진료비에 비해 과태료가 낮다 보니 무시한다는 취지다.
김승남 의원은 동물의료분쟁조정중재원 설립이나 우수 동물병원 인증제도 등 의료분쟁 관리제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사람의 경우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2017년 이후 조정절차가 종료된 7,557건의 의료분쟁 중 4,660건을 조정·중재하는 성과를 냈다.
김승남 의원은 “사람처럼 동물의료도 의료사고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하고, 수의사의 의료과실로 반려동물이 사망하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처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면서 “농식품부가 동물의료사고·분쟁 가이드라인과 실질적인 조정·중재 제도를 마련하면, 우리나라 동물의료 서비스 수준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식품부도 반려동물 의료사고에 대한 제도적 지원 필요성에 공감했다. 관련 위원회 구성·운영 방안을 검토하고 동물병원 의료사고·분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수의사회는 수의료분쟁의 조정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사람에서 하니까 동물에서도 하자’는 식의 주먹구구식 주장에는 비판적 시각을 내비쳤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사람의료는 동물의료의 100배에 달하는 시장 규모로, 대상도 전국민”이라며 “동물의료사고가 무엇인지, 몇 건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논하기 이르다”고 지적했다.
분쟁조정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동물의료 전반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의료분쟁에서 수의사를 무조건적인 가해자로 보는 시각도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진료 과정에서 동물병원이 소비자 민원을 겪는 스트레스나 업무 방해 등의 문제도 (의료사고와) 같은 무게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