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 진료횟수·산정기준도 조사한다?
‘동물병원의 진료비용 등의 공개에 관한 기준’ 제정안 윤곽..관계기관 의견수렴
내년부터 시행될 동물병원 진료비 사전게시·공시제와 관련해 정부가 세부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동물병원의 진료비용 등의 공개에 관한 기준’ 고시 제정안을 마련해 관계기관의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시제 시행은 개정 수의사법에 따라 피할 수 없지만, 고시 제정안은 진료 횟수까지 조사대상에 포함시켜 논란을 예고했다. 진료비용의 산정기준을 조사하고 적정성을 분석하도록 한 것도 동물병원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1월 5일부터 동물병원은 일부 진료비용을 병원 내부나 홈페이지에 미리 게시해야 한다.
초·재진료, 입원비, 개·고양이 백신접종비, 전혈구 검사비 및 판독료, 엑스선 촬영비 및 판독료다(사전게시). 이들 비용은 농식품부가 조사하여 지역별로 최저·최고·평균·중간 비용을 공개한다(공시제).
고시 제정안은 농식품부가 조사할 항목과 분석 사항, 공개방법 등을 세부적으로 규정했다.
조사항목은 사전게시된 진료항목의 비용, 산정기준, 실시 횟수와 그 밖에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현황 정보다.
이를 토대로 조사된 동물병원 진료비용의 전국 단위·시도별·시군구별로 최저·최고·평균·중간값을 분석하도록 했다. 진료비용 산정기준의 적정성도 분석 대상으로 명시했다.
법에 없는 ‘실시횟수’도 조사 대상에 명시
고시 제정안이 조사대상에 ‘실시 횟수’를 추가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수의사법은 비용과 산정기준을 조사하도록 했을 뿐 횟수까지 조사할 수 있다는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에 초·재진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초·재진료의 청구 횟수를 조사하면 사실상 동물병원별로 전체 진료건수가 그러나는 셈이다.
공시제 조사를 위탁할 수 있는 대상에 소비자단체까지 포함된 상황에서 ‘개별 동물병원의 경영 정보를 과도하게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수의사회도 횟수 조사에 반대했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수의사법에도 없는 횟수 조사는 부적절하다. 법에 명시된 항목만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일선 동물병원장은 “지금도 OO수술비 청구에 전혈구 검사나 엑스레이 비용이 포함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의 횟수를 파악하려면 결국 (전혈구 검사나 엑스레이를) 분리해서 청구해야 한다”면서 “특정 진료항목을 분리하여 세세히 청구할수록 전체 진료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산정기준이라고 할 만한 것이..있나?
이들 진료항목 비용의 산정기준을 조사하고 그 적정성을 분석하라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있다 지적이 나온다.
별다른 근거가 없는 ‘실시 횟수’와 달리 산정기준은 수의사법에 조사·분석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다.
취재과정에서 1인 원장 동물병원부터 수의과대학 동물병원까지 다양한 규모의 병원에 문의했지만 이렇다 할 산정기준을 보유한 경우를 찾지 못했다.
대부분 주변 병원이나 비슷한 규모의 병원에서 청구하는 시세를 바탕으로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병원은 규모가 있으니 1인 병원보다는 높게 받아야 한다’거나, 특정 약품이나 의료기자재의 사입가가 특별히 높다면 이를 반영하는 정도다.
한 수도권의 1인 동물병원 원장은 산정기준을 조사한다면 어떻게 응답할 지를 묻는 질문에 “의료기기 감가상각이나 인건비, 임대료 등을 따로 계산해 책정하지는 않는다”면서 “반려견의 체중에 따라 달리 청구하는 경우나, 특별한 촬영·판독이 필요한 엑스레이 검사 정도를 떠올릴 수 있겠다”고 답했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정부가 동물병원의 진료비 책정이 적정한지를 감독하려는 것처럼 보여 우려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