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원 규모 반려동물 사료 관련 정부 연구과제를 둘러싼 잡음
정부연구과제 선정 과정 논란에 아직 사업 시작도 못 해
반려동물 관련 정부 연구용역 과제가 늘어나며, 과제 입찰과 선정 과정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도 생겨나는 분위기다.
농촌진흥청이 진행하는 한 반려동물 사료 관련 연구과제가 지난 2월 말 최종심사를 거쳐 과제를 수행할 팀을 선정했으나, 심사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로 3개월 가까이 계약 체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제기된 문제는 ‘선정된 팀의 연구원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농진청은 올해 5개 사업 73개 과제(연구비 201억 6100만원)를 공모했다. 이중 ‘반려동물 전주기 고도화 기술 개발’ 사업에 총 7개 과제가 포함됐다(반려동물 먹거리 수입 대체 및 국산화 3과제, 반려동물 건강 및 복지증진 기술 개발 4과제).
이중 논란이 된 과제는 ‘반려동물 먹거리 수입 대체 및 국산화’ 과제 중 하나인 <반려동물 사료 기준 및 규격 제도 개선 연구>다.
현행 사료관리법을 적용받고 있는 반려동물 사료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반려동물용 사료 안전성 확보 및 품질 관리를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연구로 2026년까지 4년간 총 13억 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되는 과제다.
해당 과제에는 4개 팀이 지원했다. 이중 서류심사를 통과한 2개 팀(이하 A팀, B팀)을 대상으로 2월 27일 축산과학원에서 구두발표 평가가 진행됐는데, 그날 저녁에 문제가 생겼다. B팀이 농진청 간사에게 ‘A팀의 연구원이 소속된 연구소를 운영하는 협회 회장 C씨가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C씨는 과제 신청 당시 협회 회장이었으며, 현재는 해당 연구소 대표다.
농진청이 본지에 밝힌 바에 따르면, 평가위원은 총 8명(외부 위원 6명, 내부 위원 2명)으로 구성됐고, C씨는 외부 평가위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B팀의 문제 제기가 있자 농진청은 C씨의 구두평가 점수를 최종 평가에서 배제했다. ‘충분한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평가에서 제외하는 적극 행정을 했다’는 게 농진청의 설명이다.
B팀은 이에 대해 “이의 제기 이후 단순히 점수를 배제한 것으로 충분히 영향력이 제거됐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구두발표 후 C씨가 현장에 남아 다른 위원들과 회의를 했고, 충분히 다른 위원들의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구두발표 평가 점수는 배제했지만 C씨의 서류평가 점수는 배제되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A팀 연구원과 관련이 있는 C씨가 평가위원에서 제외되지 않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B팀의 입장이다.
농진청 “협회와 연구소는 독립된 기관…제척대상 아니야”
농진청 “규정상 제재조항은 없으나, 향후 평가위원 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
농진청은 C씨가 회장으로 있던 협회와 협회 산하 연구소가 각각 별개의 고유번호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지역의 독립된 장소에서 업무가 이루어지며, 소속 근로자도 별도로 존재하는 등 서로 독립된 기관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협회 산하 연구소의 연구원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팀에 대한 C씨의 평가는 제척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진청의 입장은 ‘C씨가 평가위원에 포함된 것은 문제가 없으나, 현장에서 제기한 이의에 대해 현장판단에 따른 재량으로 수용(구두평가 점수 배제)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동시에 “현행 규정상 분명하게 명시된 제재조항은 없으나, 자체적으로 향후 평가위원 위촉 제외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추후 이처럼 공정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평가장, 평가위원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문제의 소지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2월 27일 구두평가 이후 현재까지 3개월 가까이 A팀과 과제 계약을 하지 않는 점도 농진청의 내부 고민이 크다는 점을 방증한다.
B팀은 C씨와 A팀 연구원이 사전에 정보를 교환했을 수도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으나, 농진청은 이에 대해 “객관적인 증거가 없이 정황만으로 사전 접촉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A팀 연구원과 C씨 역시 본지와의 통화해서 사전 접촉은 일절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C씨는 “사전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해도 되는지를 (농진청에) 문의했고 개인으로 참여하는 건 관계없다고 확인 받았으며, 이의 제기로 인한 구두평가 점수 제외도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B팀 “적절한 조치 없으면 감사원에 감사 요청”
농진청은 최근 자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을 평가위원들에게 전달하고 위원 개개인의 의견을 취합했다. 이 의견을 바탕으로 조만간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B팀은 이해충돌방지법이나 국가연구개발혁신법(해당 연구개발과제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어 평가의 공정성을 중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는 사람은 평가단에 포함되어서는 아니 된다) 등에 따라 이번 사안이 문제가 있으며, 과제에 대한 재평가 등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한다는 입장이다.
“꼭 필요한 연구가 위축되는 일 없어야”
“반려동물 용역 쏟아지는데, 관련 전문가 적은 게 근본 문제”
한편, 이번 사례 때문에 반려동물 관련 연구가 위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반려동물 관련 연구과제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사례가 찬 물을 끼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행 사료관리법은 펫푸드 관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별도법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고, 처방사료 관리 등 반려동물 사료 관련 규정 정비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이제 막 시작되는 분위기인데, 연구과제 자체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반려동물 사료 관련 전문가 풀이 적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적은데 관련 연구과제가 많이 나오고 시장에 돈이 풀리니까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펫푸드 관련 전문가 육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