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려동물 최초 국가자격증 동물보건사, 누구를 위한 자격증인가
일자리 창출한다고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제도, 수의사 일자리만 창출했다는 비난도
반려동물 분야 최초의 국가자격증인 동물보건사 제도가 시행된 지 2년째다. 지난해 2월 시행된 제1회 자격시험에서 2,544명이 합격했고, 올해 2월 시행된 제2회 시험에서 727명이 합격했다. 총 3,271명의 합격자 중 자격증빙서류 미흡자를 제외하면 실제 동물보건사 자격증 취득자는 3천명 미만으로 추정된다.
3천명에 가까운 국가자격증 소지자가 탄생했는데, 현장에서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면허증이 아닌 자격증이다 보니 자격증이 없는 일반 수의테크니션과 업무 차이가 없다”며, “큰 기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시간과 투자 비용이 아깝다”는 의견이 가장 많다.
이런 불만은 추후 동물보건사 자격증을 면허증으로 개편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수의계의 대비가 필요하다. 이미 일부 동물보건 관련 학과에서 “몇 년 후 면허증 제도로 바뀌게 될 것이고, 동물보건사 면허증을 따지 않으면 동물병원에서 일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보건사들의 불만은 동물보건사 연수교육이 시작되면서 더욱 커졌다. 동물보건사는 수의사법에 따라, 수의사처럼 1년에 10시간의 연수교육을 들어야 한다. 올해 하반기에 첫 연수교육이 시작됐는데 올해는 5시간(하반기 기준), 내년부터는 10시간의 연수교육이 시행된다. 연수교육은 지난 9월부터 12월까지 전국 각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교육비는 1인당 75,000원인데, 10시간 교육을 들어야 하는 내년에는 더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동물보건사들은 “일요일 하루 종일 시간을 내서 돈을 내고 연수교육에 참여하는데, 교육의 질도 낮고 돈도 아깝다”며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이런 자격증이 무슨 의미가 있냐. 자격증을 반납하고 싶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자격증이 없는 수의테크니션과 업무 차이도 없고 급여 차이도 크지 않은 상황에서 연수교육 등 해야 할 일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동물보건사협회의 동물보건 컨퍼런스를 비롯해 각종 수의사 학회에서 동물보건사 세션을 운영하고 수준 높은 강의도 제공되지만, 연수교육 시간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동물보건사 자격증 취득자들의 관심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현재 대한수의사회가 운영하는 동물보건사 연수교육 운영권을 다른 협회·학회로 이관해달라는 요구가 커지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연수교육 등 의무만 늘어난다는 불만이 커질수록 면허 제도로의 전환 요구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면허제도 전환 다음에는 동물병원의 동물보건사 채용 의무화 요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동물보건사 제도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논의가 시작됐다. 10년 전인 2013년 11월 발표된 정부의 고용창출 방안(고용률 70% 로드맵)에 2017년까지 발굴할 미래 유명직업과 전문자격증 신설의 예로 ‘수의간호사(수의테크니션)’가 포함된 것이다.
이후 2016년 4월 한 일간지가 ‘미국엔 동물간호사 8만 명…정부가 나서 길 열어줘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며 제도 마련의 불씨를 지폈고, 정부도 “동물병원 보조 인력(3,000명)이 전문인력으로 양성되어, 수준 높은 진료서비스 제공 및 일자리 증가가 예상된다. 미국과 같은 진료환경으로 개선 시 향후 1만 3천명 고용 창출이 추산된다”며 맞장구쳤다.
수의계에서는 “이미 (자격증이 없는) 수의테크니션이 동물병원에 근무하고 있는데 자격증 제도를 도입한다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는 없다”며 “동물의료계 내부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구실로 제도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제도 시행 2년이 지난 현재 1만 3천명의 고용 창출은커녕,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객관적인 데이터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자격증 제도 신설을 계기로 관련학과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각 학과에 수의사 교수가 채용되면서 “수의사 일자리만 늘었다. 정부가 말한 일자리 창출이 수의사 일자리 창출을 의미했냐”는 풍자까지 나온다. 실제 여러 동물보건 관련 학과에서 수의사 면허증을 가진 교수 채용이 힘들다 보니 공무원이나 관련 업계를 퇴임한 수의사들을 교수로 많이 채용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하겠다고 구체적인 내부 논의 없이 밀어붙인 동물보건사 제도. 제도 시행 2년 만에 여기저기서 많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면허제도로의 전환 요구는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동물보건사 제도가 수의사와 발맞춰서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수의계 내부의 중장기적인 논의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