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위탁농가에게 살처분보상금 전액 지급, 계열화사업자의 재산권 침해”
살처분 보상금 수급권 관련 가전법 규정, 헌법불합치..내년말까지 법 개정해야
축산계열화사업자의 위탁을 받아 가축을 사육하는 경우 살처분 보상금을 계약사육(위탁사육)농가에게만 지급하도록 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5월 30일 가축의 소유자가 축산계열화사업자인 경우 계약사육농가의 수급권 보호를 위하여 살처분 보상금을 계약사육농가에 지급하도록 한 가축전염병예방법 제48조 제1항 제3호 단서조항(이하 심판대상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헌법불합치7:합헌2).
심판대상조항의 효력을 2025년 12월 31일까지로 한정하고, 그때까지 양측의 손실에 비례해 살처분 보상금이 지급될 수 있게 국회가 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계약사육농가에 채권 추심 들어오며 계열화사업자로의 살처분보상금 지급 막혀
헌재에 따르면 축산계열화사업자인 A법인과 돼지농장을 운영하는 B씨는 돼지위탁사육계약을 체결했다. A법인 소유인 돼지를 B씨가 키우고, B씨는 출하한 돼지에 마리당 사육수수료를 지급받는 형식이다.
2019년 10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면서 B씨가 사육하던 A법인 소유 돼지 1,065마리가 살처분됐고, 그에 대한 살처분보상금은 4억여원으로 책정됐다.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살처분보상금의 수급권은 돼지의 소유자인 A법인이 아니라 B씨에게 인정됐다.
가축전염병예방법은 살처분 보상금의 지급 대상을 가축의 소유자로 규정하면서도, 가축의 소유자가 축산계열화사업자인 경우 계약사육농가의 수급권 보호를 위하여 계약사육농가에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가축의 소유자인 계열화사업자에게 살처분보상금이 주어지면서 갑을 관계에 놓인 계약사육농가가 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축전염병이 발생했을 때의 매몰비용이나 방역책임은 계약농가나 지자체가 부담하고, 보상금은 계열화사업자가 가져간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 같은 지적에 따라 2018년 12월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하면서 일차적인 수급자를 계약사육농가로 변경했다. 일단 농가가 받고, 이후에 계열화사업자와 정산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A법인으로부터 살처분된 돼지의 사육수수료 전액을 지급받았던 B씨는 파주시로부터 받은 살처분 보상금 1차 지급분 1억 5,900만원을 A법인에게 송부했다. 나머지 금액에 대한 2차 지급분 수령권한도 A법인에게 위임했다.
하지만 B씨의 채권자인 농협 등이 살처분보상금 수급권에 채권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파주시가 이를 이유로 A법인에 2차 지급분을 지급하기를 거절했고, 결국 법정다툼으로 이어졌다. 해당 법원은 재판 중 문제의 원인이 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재 ‘현행법은 축산계열화사업자의 재산권 침해’
계열화사업자·계약사육농가 각각에 보상금 주는 방식으로 법 바꿔야
헌재는 “살처분 보상금 수급권이 계약사육농가에게만 귀속하도록 법정되어 있는 한, 계열화사업자는 경제적 가치의 손실을 회복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처럼 살처분된 가축에 대한 사육수수료를 전부 지급했음에도 법인 소유의 가축에 대한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살처분 보상금의 분배는 그가 입은 경제적 가치의 손실에 비례하여야 한다”면서 “계약사육농가만이 가축의 살처분으로 인한 경제적 가치의 손실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열세에 놓인 계약사육농가가 갖는 교섭력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개입”이라고 판단했다.
계약사육농가의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었던 규제가 도리어 계열화사업자의 피해를 일으키게 된 셈이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축산계열화사업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이전과 같이 계열화사업자에게 보상금을 일괄 지급하는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대신 계열화사업자와 계약사육농가에게 각각 보상금을 지급하여 각자의 손실에 비례한 보상을 실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가령 살처분 보상금 중에서 사육비나 생산장려금 등 농가에 지급해야 할 부분은 계약사육농가에 지급하고, 나머지는 계열화사업자에게 지급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개선입법 전까지는 현행 규정을 유지하되, 2025년 12월 31일까지 개선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다음날부터 효력을 상실하도록 선고했다.
헌재는 “살처분 보상금 중에는 계열화사업자와 계약사육농가가 각각 투입한 자본, 노동력 등에 따라 각자 지급받아야 할 몫이 혼재되어 있다”면서 “살처분 보상금은 가축의 소유자인 계열화사업자와 계약사육농가에게 가축의 살처분으로 인한 각자의 경제적 가치의 손실에 비례하여 개인별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입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