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윤리적 수의사 자정작용 기대 어렵나..품위손상행위 범위 좁다
수의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허위과대광고·유인행위·미허가물질 사용만 품위손상행위로
오는 7월 24일부터 수의사의 품위유지의무와 수의사회 징계요구권이 시행된다.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수의사에게는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고, 수의사회가 윤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개정법 시행을 앞두고 품위손상행위가 무엇인지, 윤리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여 운영할 것인지를 구체화하는 수의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이 지난달 입법예고됐다.
하지만 품위유지의무·징계요구권 신설을 계기로 비도덕적 수의사의 자정작용이 크게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시행령 개정안이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로 구체화한 내용은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존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에도 적용하기 어렵다.
품위손상행위로는 허위·과대광고, 유인행위뿐
적극적인 자정 기대 어렵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품위손상행위로 구체화한 내용은 의료법에 비해 좁다. 시행령 개정안은 ▲허위·과대광고 ▲동물병원 유인행위 ▲품목허가·신고하지 아니한 동물용의약품을 진료에 사용하는 행위만 품위손상행위로 규정했다.
이 같은 개정안의 내용만으로는 비윤리적 수의사에 대한 자정작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 3개 항목 중 앞선 2개 항목은 기존에도 금지됐던 것들이고, 신설된 항목은 사실상 마지막 1개에 불과하다.
공업용 쇠톱 수술 사건, 유기동물보호소를 운영하면서 유기동물을 개농장에 판매한 사건, 브루셀라 등 채혈을 위탁받은 공수의가 몰래 시료를 분주하는 행위 등 기존에 수의사들 사이에서도 ‘자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던 사례들마저도 개정안의 품위손상행위에는 해당되기 어렵다.
반면 의료법은 허위·과대광고와 유인행위뿐만 아니라 ▲비도덕적 진료행위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진료행위 ▲지나친 진료행위를 하거나 부당하게 많은 진료비를 요구하는 행위 ▲자신이 처방전을 발급하여 준 환자를 영리 목적으로 특정 약국에 유치하기 위해 담합하는 행위 등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역 의사회가 품위를 손상시킨 의사를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에서는 불법성형앱 광고, 의료인 폭행, 불법 본인부담금 면제 및 무면허의료행위 방조, 과도한 마약류 처방(비도덕적 의료행위) 등 다양한 문제를 다뤘다.
수입절차 안 지킨 해외허가 동물약, ‘고양이 FIP 신약’ 미허가 물질 사용도 금지
시행령 개정안은 품목허가를 받거나 품목신고를 하지 않은 동물용의약품을 진료에 사용하는 행위도 품위손상행위로 규정했다.
함께 입법예고한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해당 규정을 위반할 경우 최대 6개월의 면허정지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동물의료에서는 인체용의약품을 사용하거나, 특정 종에게만 품목허가된 동물용의약품을 다른 종에도 활용하는 일(허가외사용)이 불가피하다. 품목허가 비용을 들여 정식으로 출시할 만큼 시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개정안의 규제가 폭넓게 적용될 경우 동물 진료 자체가 마비될 수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존에 진료현장에서 통용된 허가외사용을 금지하려는 취지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체용의약품이나 타축종으로 품목허가된 동물용의약품을 수의사 전문성에 따라 허가외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소렌시아, 팔라디아 등 국내에선 허가받지 않았지만 해외에선 허가된 동물용의약품을 합법적으로 수입해서 쓰는 경우도 그대로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규정된 절차를 지키지 않고 몰래 들여와 사용하는 경우는 품위손상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GS-441524처럼 애초에 허가된 의약품이 아닌 물질을 사용한 경우는 품위손상행위로 판단될 전망이다. 고양이전염성복막염(FIP) ‘신약’으로 불리지만 정작 국내외 어디에서도 품목허가를 받지 못한 물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입법예고기간 동안 구체적인 금지 범위를 두고 수의사회와 실무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리위 구성·운영은 의료법과 유사
시행령 개정안은 위원장 1인을 포함한 위원 11명으로 대한수의사회 윤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위원장은 대한수의사회장이 위촉한다.
윤리위는 동물진료 및 수의업무에 전문성이 풍부한 수의사와 법률·윤리·동물복지·언론·소비자 권익 등한 경험과 학식이 풍부한 비(非)수의사로 구성한다.
이중 비수의사 위원이 4명 이상이어야 한다. 3년 임기로, 한 번만 연임할 수 있다.
이 같은 요건은 의료법이 윤리위원회 구성·요건을 규정한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이번 수의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6월 17일까지 국민참여입법센터를 통해 개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