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츄어리만 지으면 뭐하나…곰 매입·안락사 대책 없는 정부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농장 조사 및 시민 인식 조사 결과 공유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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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야생생물법이 개정되면서 2026년 사육곰산업이 종식된다. 정부는 산업 종식 후 사육곰들이 여생을 보낼 보호시설(생츄어리) 2곳을 건설 중이지만, 모든 사육곰이 보호시설에 들어갈 수는 없다.

보호시설에 들어갈 곰을 어떤 기준으로 선별할 것인지, 곰 매입은 무슨 예산으로 할 것인지, 보호시설에 들어가지 못하는 곰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한국HSI)가 16일(화) ‘2024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농장 조사 및 시민 인식 조사 결과 공유회’를 개최했다.

사육곰 농장 현장조사와 시민인식 조사 결과가 공유된 것은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국내에서 사육곰 산업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부터다. 1973년 동아일보에 사육곰 농가가 소개된 적이 있다. 이후, 1981년에 정부가 공보처 산하 극장상영용 뉴스에서 사육 산업을 장려하는 장면을 내보내며 곰사육 활성화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1993년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 협약)에 가입하고,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곰 고기(곰 발바닥 등), 기름, 웅담 수요가 줄었고, 사육곰 산업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2010년대에는 시민단체의 곰사육 중단 요구도 시작됐다. 1997년 110여 개 농장 1,600여 마리(산림청 발표)에 달했던 사육곰은 2012년 1천마리 이하로 줄었고, 2019년에는 6월에는 31개 농장 479마리, 현재는 18개 농장에 280여 마리만 남았다. 2014년부터 3년간 전국 사육곰을 대상으로 중성화수술 사업을 벌여 2015년 이후로는 개체수도 늘어나지 않는다.

환경부와 사육곰협회, 동물보호단체, 구례군, 서천군은 2022년 1월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식’을 체결하고, 2026년까지 국내 사육곰산업 종식을 선언했다. 구례군과 서천군에는 사육곰 보호시설(생츄어리)이 지어지고 있다.

이후 지난해 12월, 2026년부터 사육곰 사육과 부속물(웅담) 생산·섭취 등을 금지하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개정으로 50여 년 만에 국내 사육곰산업이 완전한 종식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문제가 적지 않다는 게 곰보금자리프로젝트의 지적이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최태규 대표

사육곰산업의 종식이 확정됐지만, 농장에 있는 곰들의 상황은 바뀐 것이 없다. 사육곰 농장을 조사한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 따르면, 여전히 많은 곰이 뜬장에서 길러지며 발바닥 피부질환 등을 겪고 있었고, 조사 대상 농가 중 절반 정도는 물그릇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만성 탈수 상태인 개체가 많았다고 한다.

오래된 부상과 장애를 지닌 곰도 많았으며, 스트레스 지표로 활용되는 비정상 반복행동(정형행동)은 모든 개체가 보였다.

오히려 과거에는 목욕탕 같은 수영시설도 있었지만, 현재는 방치 상태였다. 사육곰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2026년 금지가 확정된 상태에서 농장주가 사육곰의 환경을 개선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자료 :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농장에 있는 사육곰들은 사육곰산업이 법으로 금지되는 2026년 이후 갈 곳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구례에 약 50마리 규모, 서천에 약 70~80마리 규모의 생츄어리(보호시설)를 짓고 있다. 구례 생츄어리는 국립공원공단, 서천 생츄어리는 국립생태원이 운영할 예정이다.

2곳 보호시설의 수용 마릿수는 120~130마리이기 때문에 생츄어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육곰도 많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 민간 사육곰 보호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2025년 말까지 노화로 자연사할 숫자를 고려해도 최소 100여 마리의 개체가 보호시설에 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해당 곰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황이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지금 환경부의 기조는 농가에서 알아서 (조금 서둘러) 도살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인데, 현재 농가에서 이루어지는 도살 방식은 비인도적”이라며 “사육곰 정책을 끝내는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 의식을 느끼고 온전히 체계적으로 마무리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정부가 보호시설에 가지 못하는 곰을 방치하지 말고 매입해서 안락사해야 한다”며 “동물복지 측면에서 곰을 농가에 두어 죽게 하는 것보다 안락사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호시설에 들어갈 곰의 매입 비용도 문제다.

정부는 현재 2곳의 보호시설에 보낼 곰을 고르지도 못했고, 고를 기준조차 없는 상황이다. 곰의 매입도 시민단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한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정부는 직접 곰을 매입하지 않겠다고 버티며 시민단체에 매입 책임을 미루고 있다. 정부가 남은 사육곰을 모두 매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6년 사육곰 산업 불법화를 앞두고 사육곰협회를 중심으로 사육곰 가격을 한 마리당 2~3천만 원으로 동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만난 농장주들은 2천만 원이면 대부분 곰을 넘기겠다고 답했고, 1천만 원대까지 곰 가격을 낮출 의향을 보인 농가도 있었다고 한다. 만약 (보호시설에 들어가지 못하는 곰) 140마리를 마리당 1,500만 원에 매입한다면 필요한 예산은 21억 원이다.

이날 공개된 전체 시민 대상 ‘사육곰에 대한 시민 의식 조사 결과’에서도 사육곰 매입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이 69.8%로 가장 많았다(보상할 필요 없다 20.1%, 시민단체가 부담해야 한다 7.7%).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또한 “구례 생츄어리의 운영을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 맡길 것”을 제안했다. 환경부가 생츄어리의 운영 여건을 만들지 않고, 하급 조직(구례의 경우 국립공원공단)에 무리하게 운영을 맡겼는데, 아직 구체적인 운영조직·인력·예산도 정해지지 않았으며, 운영의 전문성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국내 어느 조직보다 사육곰 돌봄에 관한 경험도 풍부하고 전문성도 높다”며 “시민단체가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의 범위는 관료 조직보다 훨씬 넓다”고 설명했다.

최태규 대표는 마지막으로 “앞으로 생길 곰 생츄어리는 무지했던 지난 시절 사육곰 산업이라는 괴물을 길러냈던 과거를 반성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츄어리만 지으면 뭐하나…곰 매입·안락사 대책 없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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