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늦어지고 있는 맹견 기질평가..‘실효성 있나’ 회의적 시각도

기존 5대 품종 맹견 기질평가 벼락치기 불가피..개물림사고에 대한 준비는 더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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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견 사육허가제가 4월부터 시행됐지만 아직 허가에 필요한 기질평가가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 기존에 사육 중인 5대 품종 맹견은 10월 26일까지 사육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한 기질평가는 9월 이후 벼락치기로 집중될 전망이다.

기질평가는 입마개 착용이나 낯선 사람·개 만나기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자극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5분~20분 정도의 실기평가로 위험성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5대 품종 맹견이 아닌 개도 개물림사고를 일으킬 경우 기질평가를 거쳐 맹견으로 지정될 수 있다. 이때 실시하는 기질평가가 앞서 5대 품종 맹견에 대한 기질평가와 동일하다는 점은 큰 문제로 지적된다.

기초시험 성격의 현행 기질평가로는 개물림사고를 일으킨 원인과 해결책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년 전 본지 보도를 통해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문제점이 결국 그대로 현실화된 셈이다.

4월 시행된 개정 동물보호법은 맹견과 개물림사고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했다.

5대 품종(도사견,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 로트와일러와 그 잡종의 개)의 맹견은 시도지사의 사육허가를 받아야 한다. 동물등록, 맹견책임보험 가입, 중성화수술 등의 요건을 갖추고 기질평가를 거쳐야 한다.

기질평가는 시도별로 구성된 기질평가위원회가 실시한다. 위원회는 수의사, 반려동물행동지도사, 동물복지정책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구성한다. 최소 3인 이상의 위원이 기질평가를 수행해야 한다.

기존에 사육 중인 5대 품종 맹견은 동물등록 기준 2,800여 마리로 파악된다. 이들은 오는 10월 26일까지 사육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기질평가가 아직 시작되지 못했다. 정부가 올 초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3월 구성한 기질평가발전협의회를 중심으로 준비 작업을 벌였지만 출발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농식품부가 지난달 4일 전국 광역지자체 중 4곳은 7월 중 기질평가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미뤄졌다. 서울, 경기 등 주요 지자체들은 아직 기질평가 시행을 보조할 민간사업자를 선정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아직 기질평가를 시작한 지역은 없다”면서 “지자체별로 여건이 다르지만 빠르면 8월 중순 이후로 시작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기질평가 특성상 하루에 몰아서 많이 실시하기도 어렵다. 평가항목에는 다른 개를 만나는 자극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보조견의 과로도 문제고, 평가대상견들이 마주치지 않도록 간격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하루 10마리 이하로 기질평가 두수를 제한할 방침이다.

결국 10월 26일 기한에 맞추려면 벼락치기가 불가피하다. 기질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개들이 재교육을 거쳐 최대 2회까지 재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한 지자체 담당자는 “본격적인 기질평가는 9월부터 시작될 전망”이라며 “(시간 여유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맹견 기질평가 절차 (자료 : 경기도)

기질평가는 크게 사전설문표 작성과 현장 실기평가로 나뉜다.

사전설문은 훈련과 복종, 공격성, 두려움과 불안, 분리와 관련된 행동, 흥분성, 애착과 관심추구, 건강상태 등에 대한 98개 문항으로 구성된다.

핵심은 현장 실기평가다. 접근 공격성 평가, 놀람 촉발, 두려움 촉발, 사회적 공격성 평가, 흥분 촉발 등에 대한 12개 항목을 평가한다. 개들이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통상적인 자극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보호자가 평가대상견에게 입마개를 착용시키는 것부터 타인이 접근하거나, 쓰다듬거나, 군중 속을 걸으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핀다. 낯선 사람과 소형견, 대형견을 만날 때 공격성을 보이는지, 갑자기 우산을 펼치거나 킥보드가 지나갈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평가한다.

기질평가는 시도별로 실시하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거의 동일할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국에 배포한 표준안에 따라 평가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질평가가 평가대상견의 공격성을 제대로 평가하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당국은 실기평가에 마리당 15~30분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질평가 제도 도입 시 모델로 삼았던 독일의 기질평가에 마리당 1시간가량 걸리는 것에 비하면 대폭 축소됐다.

공격성을 평가할 때 행동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기저질환을 먼저 감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반영되지 못했다.

이우장 동물행동클리닉하이 원장은 “(현행) 기질평가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수의사가 기질평가위원으로 참여한다 한들 수의학적 측면을 살피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만들어 경각심을 높이자는 취지가 있다는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개물림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5대 품종 맹견’과 ‘개물림사고를 일으킨 개’에게 적용하는 기질평가가 같은 것도 큰 문제다.

전자가 기초시험 성격의 기질평가라면 후자는 정밀한 행동분석이나 동물행동의학적 진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고의 맥락도, 심각성도, 문 개의 특성도 다 다른 만큼 개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혜원 경복대 교수는 “독일에서도 물림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맹견 품종을 대상으로 하는 기질평가와 실제로 물림사고를 일으킨 개에 대한 접근은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전자의 경우 정형화된 시험 형태로 진행되지만, 후자는 행동치료 전문가에 의한 진료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독일 지자체 수의당국이 사고견에 대한 진료를 의뢰하고, 문제를 일으킨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치료를 명령하기도 한다.

현행대로라면 가령 5대 품종 맹견이 이번에 기질평가를 거쳐 사육허가를 받은 뒤 개물림사고를 일으키면, 한 번 통과했던 기질평가를 똑같이 반복해야 한다. 실효성이 없다.

개물림사고를 일으킨 개들 중 어디까지를 기질평가 대상으로 볼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맹견이 아닌 개가 사람 또는 동물에게 ‘위해를 가한 경우’ 시도지사가 기질평가를 받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그 ‘위해’가 어디까지인지는 불분명하다.

가령 별다른 자극도 없었는데 달려들어 큰 부상을 유발한 경우와 위협적인 자극에 방어적으로 살짝 문 경우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모든 개물림사고에 일일이 기질평가를 시행하는 것도 비현실적인 만큼 기준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도 기질평가위원회가 부상의 경중, 과거 이력 등을 고려해 기질평가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형태”라면서도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협의 중이라고 답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는 맹견으로 지정되는 절차는 있지만 해제되는 절차는 없다.

타고난 특성을 바꿀 수 없는 5대 품종은 그렇다 쳐도, 개물림사고를 일으켜 기질평가를 받고 맹견으로 지정된 경우에도 한 번 맹견이 되면 죽을 때까지 맹견으로 살아야 한다.

이를 두고 한 전문가는 “애초에 회복될 수 있는 문제라면 (기질평가로) 맹견이 되는 결론이 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형태의 기질평가로는 이를 가늠할 수 없다.

현행법이 맹견으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소유주나 사고견에 대한 교육을 명령할 수 있도록 했지만 행동의학적 진료가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저질환을 포함해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필요하면 약물치료를 병행해 상태를 호전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재발방지책임에도 제도 구성에 빠져 있는 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처음 도입되는 제도인 만큼 시행해 가면서 보완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우장 원장은 “예단하긴 어렵지만 관련 제도가 강화되면 보호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보다 조기에 행동의학적 진료를 시도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계속 늦어지고 있는 맹견 기질평가..‘실효성 있나’ 회의적 시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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