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검역관 부족, 비수의사 인력이 과연 답인가

동물검역관 자격조정 연구용역 진행 중..현장선 '수의직 기피·이탈 오히려 심해질 수 있다'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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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수의사뿐만 아니라 일정 자격을 갖춘 비수의사 인력도 동물검역 업무를 수행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한 의견은?”

“수의전문성 등을 고려할 때 전문성이 높은 업무는 동물검역관이 맡고, 낮은 경우는 동물검역사가 맡아 효율적으로 업무처리를 하기 위해서 다음 표에 대해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물검역관과 동물검역사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가칭)동물검역사(비수의사)를 전문경력관으로 채용을 고려한다면, 적합한 직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동물검역관(이하 검역관) 수의직 공무원 인력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검역관의 업무·자격 조정안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연구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비(非)수의사에게도 검역관 자격을 주거나, 검역관은 아니지만 검역실무를 맡길 수 있는 보조인력을 만드는 방안이 거론된다.

전자는 수의사회는 물론 현직 검역관들 사이에서도 반대 기류가 분명하다. 후자가 그나마 현실적 대안으로 꼽히지만, 검역관 부족의 근본적 해결책인 수의직 처우개선을 오히려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최근 복수의 현직 검역관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동물검역관 자격조건 조정 등 제도개선 및 검역인력 운용 방안 마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검역본부 동물검역과 의뢰로 한국정책학회 연구진이 담당하고 있다.

현재 검역관은 정원 236명 중 49.5명(21%)이 결원인 상태다. 이번 연구용역은 검역관 인력부족 문제를 두고 ▲수의직 공무원 수급 전망 ▲동물검역관의 법적 자격·권한 조정 ▲동물검역관 업무 조정 ▲제도 개선에 따른 운영 개선 방안 등을 도출한다.

이를 위해 일선 검역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직에서 검역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A검역관은 “(검역관 자격 조정을 위한) 제도화를 이미 정해 놓고 물어보는 느낌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일명 ‘답정너’ 질문이다.

연구용역이 의견을 수렴하는 검역관 제도 개선안은 크게 2종이다.

1안은 검역관은 수의사가 하도록 유지하되, 기타 자격자의 ‘동물검역사’를 신설하여 CIQ·우편·특송 현장검사 등 일부 검역업무를 보조·집행하도록 한다. 이미 야생생물법에 도입된 야생동물검역관-야생동물검역사와 유사한 형태다.

2안은 수의사가 아닌 기타 자격자도 검역관이 될 수 있도록 하면서, 수의사는 동물과 수출축산물을, 기타 자격자는 휴대, 우편·특송 등을 담당하는 식으로 업무를 나누는 형태다.

1안을 두고서는 휴대 동·축산물 검역, 축산관계자·외국인근로자 관리, 전문지식이 필요한 업무 등 검역관의 업무를 60여개의 세부항목으로 제시하고 각각의 업무성격과 요구되는 전문성 수준도 설문한다. 향후 검역관과 검역사의 업무를 나누는데 근거로 활용하기 위한 조사로 풀이된다.

    

두 개선안 중에서는 1안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수의사의 고유업무인 검역관에 비수의사가 포함되는데 대한 반감이 있는데다, 어차피 수의전문성이 요구되는 특수검역, 수출축산물 검역이나 해외로 나가야 할 검역문서 등은 수의사인 검역관이 반드시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역사’ 보조인력이 공식화되면 검역관 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수의직 처우개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현장에서는 검역관 수의직 TO의 일부를 ‘복수직’으로 설정해 운영하고 있다. 수의직 공무원이 부족하다 보니 기타 직렬 공무원도 올 수 있는 자리로 만든 것이다. 검역관이 아닌 이들이 검역 실무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검역관은 “검역사가 도입된다면 이들 복수직 자리가 검역사로 전환되면서 수의직 정원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그러면 결국 수의직의 진급문제가 더 악화되어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의직 정원이 실질적으로 줄어들면 승진할 수 있는 5급, 4급 자리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역사 보조인력이 생겨도 현재 수의직 부족으로 생긴 과중한 업무부담은 크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CIQ에서 여행객의 짐을 수색하는 등의 업무를 보조인력이 맡는다고 해도 수의사가 해야 하는 동물검역이나 책임소재 등을 고려하면 수의사 검역관이 아예 없을 수는 없고,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의사로 시간을 메우기가 이미 빠듯하다는 얘기다.

검역사가 생기면서 수의직 TO가 아예 줄어버리면, 결국 수의사가 담당해야 할 검역업무가 과중한 상태는 해소되지 않고, 처우개선이 없다면 기피·이탈현상은 지속될 것이란 우려다.

또다른 현직 B검역관은 “(수의직과 기타직렬이 모두 올 수 있는) 복수직을 아예 검역사로 전환하면 향후 수의사를 충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수의사 검역관이 부족한 문제는 수의사가 와야 해결된다. 보조인력 신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A검역관은 “수의사 인력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처우개선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당 인상, 주거지원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공중방역수의사가 받는 방역활동장려금이 월 90만원선인데 반해 검역관이 받는 특수업무수당은 월 25만원에 그친다. 공중방역수의사를 마치고 수의직 공무원이 되면 급여가 오히려 줄어든다.

공항만에서 일해야 하는 특성상 주거지원도 필수적이다.

A검역관은 “지역본부 검역관들은 적은 인원으로 CIQ를 운영하면서 검역에 사무업무까지 하다 보니 업무가 매우 과중하다”면서 “수당도 낮고 주거지원도 안 된다면 지금도 결원인 부서에 누가 가려 하겠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축산관계자의 출국신고를 출입국 기록과 연계해 자동화하지 않고 굳이 개별적으로 따로 하게 하면서, 신고 누락자는 일일이 연락하며 챙기게 하는 등 비효율적인 업무 문제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물검역관 부족, 비수의사 인력이 과연 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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