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일라진 마약류 지정 검토..대동물 임상 여파 우려

소 진료에 대체약 없는 자일라진, 대동물 수의사가 관리해야할 첫 마약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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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에토미데이트(etomidate), 자일라진(xylazine)에 대한 마약류 지정을 놓고 관계부처와 수의사회의 의견 수렴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자일라진은 미국에서 펜타닐 등 다른 마약과 함께 혼용하는 ‘좀비마약’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에토미데이트는 사람에서 프로포폴 대신 오남용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중 자일라진은 대동물에서 필수불가결한 진정제로 쓰인다. 마약류로 지정된다면 진료 현장에 여파가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1월 18일(월) 관계부처와 대한수의사회, 동물약품협회 등 관계기관을 대상으로 에토미데이트, 자일라진의 마약류 지정 여부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10월 10일 식약처 국감에서 오유경 식약처장(왼쪽)에게 에토미데이트 오남용 문제를 질의하는 남인순 의원(오른쪽)
(사진 : 국회방송)

지난달 식약처 국정감사에서는 에토미데이트 오남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비슷한 약물이다. 사람에서도 마취유도제로 쓰이는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묶여 있는 프로포폴과 달리 전문의약품으로만 분류되어 있다. 프로포폴을 오남용하려는 잘못된 수요가 에토미데이트로 풍선효과를 일으키는 셈이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0일 국감에서 에토미데이트 오남용 정황을 지적했다. 2019년 대비 2023년 공급량이 44%나 증가했는데, 사용 여부를 알 수 없는 비급여 위주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당 남인순 의원은 “SNS로 문의하니 에토미데이트 1박스를 120만원에 팔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불법 유통 문제를 꼬집었다. 오유경 식약처장도 에토미데이트의 마약류 지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수의 임상에서 에토미데이트는 주목받는 약물이라 보기 어렵다. 서울대 수의대 마취통증의학과 손원균 교수는 “(에토미데이트를) 반려동물 환자의 심혈관계가 좋지 않을 때 프로포폴 대신 마취유도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서도 “프로포폴 대비 사용 비중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맥주사가 요구되는 약물이다 보니 반려동물을 제외한 다른 축종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덧붙였다.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몇 백kg이 나가는 대동물에서 쓰기 부적합하다.

이처럼 에토미데이트는 쓴다 해도 반려동물에서 쓰는 약물이다 보니 설령 마약류로 분리된다 하더라도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려동물병원에서는 이미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과 연동한 마약류 의약품 관리가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일라진이다.

자일라진이 마약류 지정 검토대상에 오른 것은 미국에서 오남용 문제가 심각해진 여파로 풀이된다. 펜타닐과 자일라진을 섞어 쓰면서 팔 다리가 괴사되는 이른바 ‘좀비마약’이 미국 현지에서 주요 마약문제로 떠올랐다.

상품명 럼푼으로 잘 알려진 자일라진은 대동물 진료에 필수적인 약이다. 일선에서 대동물을 진료하는 남기준 한국소임상수의사회 총무이사는 “대동물 수의사가 수술을 포함한 침습적인 처치를 해야 할 때 자일라진 이외에는 쓸 약이 없다. 적은 양을 투약해도 잘 진정된다. 대체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일라진과 같은 계열(α2작용제)인 메데토미딘은 소에서 쓰기 어렵다는 점도 덧붙였다.

서울대 수의대 마취통증의학과 이인형 교수는 “말이나 반려동물에 쓰는 (α2작용제) 약물을 쓰면 자일라진에 비해 약값이 너무 비싸진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목적으로 기르는 대동물 특성상 1마리에 부담할 수 있는 진료비에 상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마취·진정에 드는 비용이 너무 높아지면 수술 등의 처치는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에 빠진다는 것이다.

(사진 : KBS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300회 캡쳐)

물론 마약류로 지정된다 해서 자일라진의 사용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축종의 진료 사례와 마찬가지로 동물병원 수의사는 마약류취급의료업자로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구입, 처방 등 사용내역을 보고하면 된다. 마약류도매업자를 통해 받아야 할 테니 유통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제껏 대동물 수의사는 소를 진료할 때 마약류로 분류된 의약품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반려동물 진료를 함께 하는(혼합진료) 동물병원이 아니었다면 NIMS 사용 경험도 없을 수밖에 없다.

이미 고령인 대동물 수의사가 많고, 전자의무기록(EMR)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허들이다. 젖소 번식진료를 중심으로 몇몇 대동물병원이 전산화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지만 아직 일부에 그친다.

반려동물 임상에서는 기존에 쓰던 전자차트에 연동하는 식으로 NIMS 보고업무 부담을 줄였는데, 대동물에서는 이 마저도 여의치 않은 셈이다.

대동물진료가 왕진을 전제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통상 대동물수의사는 왕진차량에 자주 쓰는 약물을 싣고 다닌다. 자일라진이 마약류로 지정되어도 차에 싣고 다녀야 한다. 언제 응급환자가 생길지 알 수 없는데, 수술이 필요한 소가 생기면 그제서야 동물병원에 들러 마약류 의약품을 챙겨 농장에 가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병원(동물병원) 내 시건장치 안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만 분출해서 쓰는 형태의 현행 규정은 애초에 대동물진료 형태를 고려하지 않았다.

NIMS 운영을 맡고 있는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관계자는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마약류 의약품을 반드시 어디에서만 써야 한다는 장소에 대한 규정도 없다”면서 만약 자일라진이 마약류로 지정된다면 대동물 진료환경을 고려한 세부 규정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애초에 국내에서는 아직 자일라진이 마약류로 지정될 필요성이 낮은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이인형, 손원균 교수 모두 자일라진이 단독으로 사용해서는 사람에서 의존성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지목했다. 국내에서도 미국처럼 펜타닐과 같은 다른 마약에 섞어 쓰는 문제가 자일라진까지 마약류로 묶어야할 정도로 심각한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해외에선 마약류가 아닌 프로포폴도 국내에서는 중점관리대상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관리한다. 오남용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기 때문”이라며 “이처럼 마약류 관리는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자일라진 마약류 지정에 반대하면서, 자일라진이 현재도 수의사 처방이 반드시 필요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이라는 점을 지목했다. 오남용이 걱정된다면 수의사처방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동물용의약품은 동물용의약품을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한 수의사처방제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면서 “자일라진은 자체적으로 사람에게 마약으로 작동할 수 있는 성분도 아니고, (국내가) 해외처럼 혼용 문제가 심각하다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사예외조항 문제를 지목했다. 마약류 지정을 검토할만큼 우려가 높아진 자일라진이지만, 동물약국에서는 수의사 처방없이도 마음대로 팔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자일라진은 동물약국에서 수의사 처방없이도 마음대로 팔 수 있도록 풀려 있다”면서 “이런 부분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약사예외조항 철폐를 비롯해 수의사처방제가 실효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면 될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편에서는 자일라진이 마약류로 지정되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왔다. 사람에서의 오남용보다, 동물에서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非)수의사의 거세·제각 등 대동물에서 만연한 불법진료에도 자일라진은 필요하다. 수의사처방제 위반에 대한 실질적인 단속이 벌어지지 않다 보니 불법진료도 차단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일라진이 마약류로 지정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약을 내어준 동물병원장이나 쓴 비수의사나 마약사범이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일라진을 쓰는 농가의 위험한 자가진료도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다.

자일라진 마약류 지정 검토..대동물 임상 여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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