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칼럼]박종무의 생명 이야기① – 가축전염병에 의한 반생명적 살처분 정책은 지속돼야 하나(上)
지난 1월 고창에서 발생하여 확산된 AI로 인해 3월30일까지 약 1천200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농림축산식품부 3/31 보도자료). 아직도 이번 AI 사태가 마무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처분 될 가금류의 수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역대 최대의 살처분 숫자이다. 지난 2010년 구제역 사태 때에도 30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가 살처분됐고, 또 AI로 600만 마리에 이르는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갈수록 살처분하는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살처분 된 가금류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는 것은 AI가 발생한 농장은 말할 것도 없고, 반경 3km 이내는 위험지역으로 간주하여 살처분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AI사태에서 고병원성 H5N8에 감염된 가금류는 모두 28마리다. 28마리가 감염이 되었는데 1천200만 마리의 살아있는 생명이 살처분됐다. 우리가 이들 생명을 대하는 이러한 방식은 바람직한 것인가?
또 AI의 확산에 철새가 연관이 되었다며 철새의 관리방안과 더 나아가 야생동물의 질병관리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논의들도 있었다. 그로 인해 해마다 철새가 먹을 사료를 살포하던 작업이 중단되어 철새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여 제때에 이동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AI에 대한 논의가 이러한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AI가 발생한 후 가금류의 예방적 살처분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며 AI를 포함한 가축전염병에 대하여 우리가 현재 행하고 있는 이러한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특히 이 고민은 가장 큰 고통을 받지만 이러한 사태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 동물의 생명의 관점에서 해보고자 한다.
살처분의 역사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발생농장과 오염지역(반경 500m이내)에 있는 가금류에 대해 살처분을 실시한다. 또 반경 500m~3km까지는 위험지역으로 설정하여 지자체의 건의를 받아 살처분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살처분을 실시한다. 이러한 예방적 살처분은 가축전염병 확산 차단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이러한 평가를 대부분의 국민들과 수의사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가축 전염병과 관련하여 우리가 먼저 생각해볼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은 생명이란 무엇이며, 그 생명에게 발생하는 질병은 무엇이고, 또 그 중에 전염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수의 전염병학이나 수의 내과학 등에서 동물의 질병에 대하여 배우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색(色)에 대하여 배우면서 빨간색만 배운다면 빨간색도 색의 한 부분이기에 색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빨간색의 특성을 색의 특성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틀린 이야기가 된다.
이와 같이 우리가 동물의 질병에 대하여 배우지만 그것은 동물이라는 생명에서 벌어지는 생명 현상의 한 부분이다. 이러한 부분은 전체에 대한 이해 속에서 이해가 되어야지, 한 부분을 전체인 것처럼 이해하려 하면 생명 현상을 잘못 이해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 부분에서 간략하게 다루기로 하고 먼저 살처분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 보겠다.
우리는 수의 전염병학 등을 통하여 동물에게는 어떠어떠한 전염병이 있다고 배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동물에게는 그러한 전염병이 원래부터 있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가축의 전염병은 원래부터 있던 질병은 아니다. 또 그에 따른 살처분도 원래 가축의 질병을 다루던 방식이 아니었다. 가축의 전염병에 살처분이라는 방식이 실시된 것은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 영국의 귀족들은 쇠고기를 많이 먹는 것을 자신의 부의 상징으로 삼았다. 또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들 또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많은 쇠고기를 먹었다(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늘어나는 쇠고기 수요에 맞추어 사육하는 소가 늘어나면서 여러 전염병도 발생하게 된다. 구제역은 1839년에 처음 발생한다. 당시 영국 정부와 농민들은 이 질병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구제역으로 인해 죽는 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김동광, 「우리에게 구제역은 무엇인가」).
처음으로 구제역을 심각하게 생각한 집단은 우수한 품종의 가축을 키우는 영국의 부유한 귀족계층 사육자들이었다. 우수한 품종은 근친교배 등으로 인하여 구제역이 일반적인 품종보다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구제역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받게 되는 비용손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구제역을 법률적 해법이 필요한 심각한 질병으로 규정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감염된 가축의 이동을 제한하는 법안을 1864년 의회에 제출하지만, 일반 농부, 가축상인, 도시주민들에게 구제역은 심각한 질병이 아니었기에 그들을 대표하는 의원들에 의해 법안은 기각되었다. 하지만 1865년에서 1867년 사이에 치사율이 높은 우역(牛疫)이 발생하여 확산되면서 영국정부는 가축의 살처분을 통한 통제를 실시하고 또 효과를 거두었다. 이로 인해 국가의 가축 질병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기 시작되었다.
구제역에 대한 일반 농부들의 생각과 영국정부의 생각은 차이가 있었지만 1884년 영국 의회는 구제역 발생 국가로부터 가축수입을 전면금지했고, 그로부터 2년 후 구제역은 1839년 이래 처음으로 영국에서 사라졌다. 이로 인해 정부의 강제적이고 보편적인 일련의 조치가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을 근절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확산시켰다. 즉 살처분 정책이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살처분이 공식적인 대응책으로 처음 채택된 것은 1892년이었다. 국가에 의한 가축의 살처분이 실시되면서 구제역은 익숙하고 대체로 무시되어 온 병이 아니라 무서운 동물전염병이자 엄청난 비용손실을 초래하는 외부로부터의 침입자로 간주되었고, 광범한 국가적 통제수단을 통해 영국에서 근절시켜야 할 무엇이 되었다. 질병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바뀐 것이다. 구제역에 대한 새로운 프레이밍이 이 병의 임상적 심각성과 역학적 성질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다. 그런 점에서 구제역은 자연의 산물일 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의 산물이기도 했다.
영국농수산부(Ministry of Agriculture and Fisheries, MAF)가 선호했던 구제역 정책은 기본적으로 국가주의적 접근방식이었다. MAF의 수석수의관이었던 스튜어트 스톡먼은 국가의 주도로 구제역을 통제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대응 방향을 수립한 인물이었고, 고비 때 마다 반대자들의 주장에 맞서 살처분 정책을 지지하는 이념들을 만들어 냈다. 그는 살처분이 효율적이고 가장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정책이라는 생각을 농민과 일반대중들에게 주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했고, 정보를 차단하거나 은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살처분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대응방식은 2001년 구제역 대유행까지 지속되었다. 영국과 달리 살처분 정책을 채택하지 않았던 독일에서는 세균학자 프리데리히 뢰플러가 20세기 초에 처음으로 구제역 혈청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후 1938년에 사용가능한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영국은 백신접종으로 영국에서 구제역을 근절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967~1968년 대유행 이후 구제역 발생이 주춤하면서 서유럽국가들은 백신접종을 중단하는데 합의했고, 그 과정에서 살처분과 구제역 청정적 지위 유지가 EU 전체의 정책이 되었다(김동광, 「우리에게 구제역은 무엇인가」).
정리를 하자면 전염병으로 인한 가축 살처분의 시작은 전염병의 치사율이 높았기 때문이 아니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 정책으로 강행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에서 일반 농민이나 가축의 이익은 배제되었다.
생명의 자연치유력
가축의 전염병과 질병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될 때 동물의 질병 또한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생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35억 년 전이다. 그리고 35억년의 긴 시간을 거쳐 생명은 진화를 하여 오늘의 다양한 생물이 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볼 부분은 모든 생명은 자기가 존재하는 공간(Niche)에 적응하도록 진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진흙탕에 사는 벌레는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도록 진화되었고, 똥 더미에 사는 구더기는 그러한 환경에서 ‘아주 잘 살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어느 생명이나 자기가 사는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문제로 인하여 그 생명은 번창할 수가 없다.
지렁이가 습한 땅속에서 살면서 끝없이 피부염을 앓는다면 그 피부 문제를 해소하느라고 면역력과 영양을 소모하기 때문에 종의 번성에 에너지를 소모할 수 없게 된다. 그로 인해 그 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지렁이는 번창한 것이다. 이것은 지렁이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들이 마찬가지다. 북극에 사는 생명은 그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했고 열대에 사는 생명은 그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했다.
모든 생명들은 자신이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든지 그러한 환경이 오랜 시간 자신이 진화해왔던 공간이라면 그러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간다.
그 환경은 매우 많은 것을 포함한다. 습도, 온도, 기압, 산소포화도와 같은 공간적인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먹거리 환경도 포함한다. 여기에 또 중요한 환경적 요소가 있다. 그것은 생태적 환경이다.
생명은 어느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은 생태계 내에서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러한 생명의 생태계와의 관계성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에 철새가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전파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철새는 생태계의 순환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존재들이고 이런 관계의 역사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온 것이다. 원인은 명확하게 다른 곳에 있는데 철새 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들 간의 관계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와의 관계이다. 사람들은 생명의 역사가 박테리아에서 시작했지만 박테리아에서 다른 생명이 진화한 이후에 박테리아와는 별개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항상 박테리아를 기반으로 하여 진화되어 왔다. 모든 생명은 이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퍼져 있는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를 해왔다. 이 말은 이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존재가 각 생명의 질병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관계에 있다. 모든 생명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포함한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왔다. 생명이 건강하다는 것은 이들 미생물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의 피부에 세균이 있다고 하여 피부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건강할 때에는 그 세균과 적절한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건강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하여 그 균형이 깨어질 때 질병이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명이 건강한 것은 동적평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오늘날 질병을 바라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생명의 질병을 어떠한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요인으로 환원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원주의적으로 질병을 파악하려는 시각은 질병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 부분은 아래 전염병과 관련된 부분에서 좀 더 이야기를 하겠다.
생명은 자신이 진화해온 공간에서 건강하게 살도록 진화되었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동물의 질병을 공부한 우리는 동물들이 선천적으로 다양한 질병을 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일정 부분 옳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르다.
생명이 노화에 인한 죽음을 제외하고 동물은 건강하게 살아간다. 물론 예외도 존재하지만 예외는 예외일 뿐이다. 또 생명의 노화는 다른 문제이다. 생명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진화를 했다.
동적평형상태가 깨졌을 때 일시적으로 앓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자기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이것을 자연치유력이라고 한다. 자연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생명에게 자신이 처한 환경(Niche)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치유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이해할 때 이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서양의학은 생명의 생명력에 대한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생명은 원래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은 원래 건강한 것이다. 그렇게 살도록 진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나 인간에 의해 사육되는 가축이 많은 질병을 겪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인간이나 동물이 진화해왔던 환경에서 너무나도 벗어나 살고 있기 때문이다(홍윤철, 「질병의 탄생」).
<下>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