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의 전염병 신고 이끌어낼 당근과 채찍
조기신고가 방역핵심..정부 `NSP 등 예찰강화` 업계 `보상 늘려 신고로 인한 손실 없애야`
구제역 등 악성 가축전염병 방역의 첫 번째 요건은 농가의 신속한 신고다. 이동제한, 살처분, 역학조사 등 모든 방역조치는 일단 신고가 들어와야 이뤄질 수 있다.
때문에 신고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농가가 늦게 신고하거나 신고하지 않고 전염병발생을 숨긴다면 아무리 좋은 방역대책도 소용없다.
이번 구제역 사태에서도 농가의 신고는 주요 이슈였다. 농가가 신고를 꺼리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동제한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부분살처분 정책으로 인해 발생농장에서도 돼지를 계속 기르다 보니, 이동제한 상황에서 과도한 밀사, 출하시기 초과 등의 피해가 누적됐다. ‘내가 신고하면 이 같은 이동제한 피해를 옆 농장도 입게 된다’는 부담감도 작용했다.
이렇다 보니 4월 28일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구제역 발생은 없지만 ‘농가가 신고하지 않을 뿐, 구제역 바이러스는 돌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때문에 농가의 조기신고를 유도하는 것은 구제역 방역대책의 중요한 개선점 중 하나다. 7월 1일 서울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관련 공청회에서는 그 방법을 두고 정부와 업계가 차이를 보였다.
정부 개선방안, 도축장 NSP항체검사 전 농가대상 확대..발생지역 출하∙이동 제한적 허용도
정부가 준비 중인 ‘구제역 방역대책 개선방안’은 오순민 농식품부 방역총괄과장(CVO)이 소개했다.
농식품부는 “이동제한에 의한 불이익을 우려한 일부 농가가 신고를 출하 이후로 미루거나 기피했다”고 진단하며 신고기피방지를 위한 예찰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가축전염병예방법 상 전염병 발생의심신고는 농장주의 의무다.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 받을 수 있다. 이에 기반한 정부 측 접근법은 신고하지 않는 농장을 찾아내는데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도축장 출하가축에 대한 구제역 NSP 항체검사를 모든 양돈농가가 분기별 1회 이상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할 방침이다. 종돈 및 자돈분양 양돈농장의 가축이동 시 수의사의 임상관찰을 의무화하는 ‘검사증명서 휴대 의무제’ 도입도 검토한다.
이와 함께 구제역의 타지역 확산방지를 위해 도입할 ‘권역별 관리제도’에 이동제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포함시킨다.
구제역 발생지역(오염지역)을 권역으로 묶되, 오염지역 내에서도 가축방역관의 통제하에 지정도축장 출하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발생농장 반경 3km 방역대 밖이라면 오염지역 내의 가축이동도 사전 검사 후 허용한다.
“살처분보상금 깎아 손해 본다면, 농가는 신고 안 할 것”
반면 일선 농장과 양돈수의사회는 ‘살처분보상금’ 문제에 집중했다. 현행 보상금 제도가 농가의 신고의지를 꺾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보상제도는 가축전염병 양성으로 진단되면 살처분보상금 평가액의 20%를 기본적으로 감액한다. 이외에도 소독 및 백신접종 실시여부, 의심신고지연, 외국인근로자 미신고 등을 고려해 추가 감액할 수 있다.
양돈농장 ‘행복한농장’ 대표 김현섭 수의사는 “농가 방역의식 고취를 명분으로 한 최대 보상금 80% 규정과 여러 감액조치를 농가 입장에서 보면 ‘신고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며 “농가의 확실한 잘못은 처벌해야겠지만, 선량한 농가가 전염됐을 경우 살처분 보상금은 기본적으로 시가의 100%를 전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창섭 양돈수의사회장은 “선제적 방역조치를 강화하려면 발생 초기 신고를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며 “농장단위 살처분 대상이 될 수 있는 초기신고 농장에는 100% 살처분보상금은 물론 추가적인 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봉균 서울대학교 교수는 “살처분보상금 제도가 조기신고∙조기조치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현행 보상제도의 기본개념을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방역 소홀농가에 대한 감액기준을 현행 8종에서 30종으로 세분화하고 우수농가에 대한 감액량 경감 등의 인센티브를 도입할 계획이지만, 양성농장에 대한 20% 감액은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공청회에 참가한 충북도청 방역관계자는 “백신접종 혈청형 구제역 발생에 살처분보상금을 전액 지급하는 것은 일반국민의 여론에 맞지 않는다”며 “백신접종 혈청형 발생에는 농가의 책임과 의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구제역 방역대책 개선방안을 7월 중순여까지 확정하고 살처분보상금 제도를 개편하기 위한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령 개정을 올해 안으로 추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