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테크니션 제도화, `반려동물 자가진료 제한이 선결돼야`
테크니션 대표 한국동물복지학회 “자가진료 제한과 테크니션 제도화 함께 추진해야
정부가 수의테크니션 제도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반려동물 자가진료 제한을 선결한 후 제도화를 추진해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다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 주재로 대한수의사회, 한국동물병원협회 등 수의사단체와 수의테크니션 대표단체인 한국동물복지학회 관계자가 18일 세종청사에서 회담을 갖고 이 같은 방향성에 의견을 나눴다.
반려동물 임상수의사 84% 테크니션 제도화 반대
“자가진료 제한, 불법진료 환경 해소가 먼저..이대로는 시기상조”
대한수의사회가 3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동물병원 임상수의사 2,3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4%인 2천여명이 테크니션 제도화에 반대했다.
이들 대부분이 이미 만연된 자가진료 및 불법진료의 부작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를 반대이유로 꼽았다. 자가진료 문제 심화가 67.6%로 1위, 수의테크니션 업무범위 모호로 인한 불법진료 가중이 23.3%로 뒤를 이었다.
이러한 우려는 반려동물의 자가진료와 불법진료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수의사가 아닌 무자격자들도 자가진료 허용을 명분으로 백신이나 항생제 등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불법진료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운영하는 펫샵에서 백신이나 의약품들을 구매하고, 이를 판매 전 동물에게 사용하다가(자가진료), 판매 후에도 일부 의약품을 공급하거나 백신을 접종해주는(불법진료) 것이 이러한 문제의 전형 중 하나다.
때문에 수의사들은 테크니션이 섣불리 제도화될 경우 이러한 문제가 더 심각해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사, 채혈, 정맥카테터 및 수액연결 등 진료보조행위를 익힌 인력이 현행 진료환경에서 동물병원 밖으로 배출되면, 깊어진 불법진료행위의 수준만큼 의약품 오남용, 부정확한 진료로 인한 동물학대 등의 부작용 문제도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허주형 동물병원협회장은 “반려동물에서의 자가진료를 금지하는 수의진료권 독립 없이는 테크니션 제도화에 찬성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테크니션 측, “자가진료 제한과 테크니션 제도화 함께 가야”
이날 협의에서 동물복지학회도 이 같은 수의사단체의 의견에 대체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반려동물에서의 자가진료를 금지하는 ‘자가진료 제한 문제’와 ‘테크니션 제도화’를 함께 처리하고, 테크니션 제도화의 경우 현행 시행령 개정보다 보완된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복지학회 관계자는 “당초 농식품부 시행령 개정 초안은 ‘동물병원 종사자’로 표현하면서 대상자를 특정하지 않아, 테크니션 외의 인력이 진료보조행위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는 문제가 있다”며 “수의테크니션이라는 직역을 수의사법에 포함시키되, 시행령의 자가진료 제한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테크니션 제도화로 인한 1년차 임상수의사(인턴수의사) 고용 불안우려에 대해서 해당 관계자는 “테크니션이 제도화되어도 진료보조역할을 수행할 뿐 인턴수의사가 담당하는 ‘진료’와는 다르다”며 “오히려 제도화 과정에서 둘 사이의 역할구분이 명확해져 갈등소지도 해소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인턴수의사 고용이 많고 이들에게 입원환축 관리 등 단순업무가 주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향후 테크니션이 역할을 대체할 경우 고용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당초 대한수의사회는 농식품부와의 협의를 토대로 수의사법 시행령 제12조의 자가진료 허용 조항을 축산업 분야로 국한시키는 방향의 자가진료 제한을 추진해오고 있지만, 구제역 등 주무부처 사정으로 속도가 늦춰진 상황.
수의테크니션 제도화 움직임과 맞물려 자가진료 제한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또한 먼저 법을 개정한 후 시행령 개정이 이어지는 정부 입법의 특성 상, 현재 논의되고 있는 형태의 ‘자가진료 제한(수의사법 시행령 개정) 후 수의테크니션 제도화(수의사법 개정)’가 이뤄질 수 있을 지도 관심사다.
자가진료 제한과 테크니션 제도화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동물복지학회 측 입장과 자가진료 제한을 선결조건으로 보는 수의사 단체 간의 미묘한 입장차도 감지된다.
허주형 동물병원협회장은 “이번 사태가 자가진료 제한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수의사들 모두가 ‘자가진료 선결 후 테크니션 제도화’라는 원칙에 한 목소리를 내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