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면 누구나 동물실험윤리위원 된다?‥`실험동물 복지 도움 안 돼`
강병철 실험동물수의사회 총무이사 “실험동물 전임수의사 양성지원, 단계적 역할 확대 필요”
농림축산식품부가 동물등록제, 동물판매업 시설기준, 동물실험윤리위원 자격기준 등 동물보호법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고 19일 밝혔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 참여하는 수의사의 추가 자격요건을 삭제하겠다’는 이번 발표를 두고 실험동물의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동물보호법 입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동물실험윤리위원 수의사 자격에 실험동물 관련 조건 삭제 방침 `수의사면 누구나 가능토록`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실험을 시행하는 기관은 실험동물의 보호와 윤리적 취급을 위해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15인으로 구성되는 윤리위에는 수의사, 동물보호단체 추천인이 1명 이상 포함되어야 하며, 이 밖에도 동물실험 분야 학계 인사로서 관련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참여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동물실험시설은 394개소로 현재 400~500개소가 운영 중일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실험동물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활동하는 수의사들은 200명 이하에 그치고 있다.
소규모 동물실험시설의 경우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타 시설과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의사가 부족한 것. 때문에 1명의 실험동물 수의사가 여러 시설의 윤리위원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농식품부는 이번 규제개혁을 통해 수의사 면허 소지자는 누구나 동물실험윤리위원이 될 수 있도록 조정할 방침이다. 당초 수의사가 위원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한수의사회에서 인정하는 실험동물 전문수의사이거나 동물실험 관련 업무에 1년 이상 종사해야 하는 등 자격요건이 요구됐다.
실험동물 전임수의사(AV) 양성 및 역할 단계적 확대 필요해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한국실험동물수의사회 총무이사 강병철 서울대 교수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수의사 자격조건을 완화하는 것은 실험동물 복지를 증진하고자 하는 동물보호법의 근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험동물 전문수의사(DKCLAM)이자 실제로 여러 기관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강 교수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서 수의사는 각 실험에서 동물이 받을 고통의 수준을 가늠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해결방안을 제안하는 전문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실험동물이 아닌 타 분야에서 활동하는 수의사는 윤리위에서 이 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
때문에 타 분야 수의사인 윤리위원은 명목상 참여했을 뿐인 ‘거수기’가 되어버리는 행정편의주의적 행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열악한 동물실험시설에서 이를 악용해 윤리위를 형식적으로만 운영한다면 실험동물 복지 증진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 교수는 “실험기관의 행정부담을 덜어주는 규제개선에는 동의하지만, 실험동물 수의사의 전문성이 동물실험 과정에 좀더 반영될 수 있는 환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실험동물시설에서 전임수의사(AV, Attending Veterinarian)의 고용과 역할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전임수의사로 활동할 수 있는 수의사의 양성을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AV가 실험동물의 복지를 보장하는 핵심주체 중 하나다. 실험과정에서 지나친 고통이 주어진다고 판단되면 안락사 및 실험중지를 명령하고, 이를 윤리위에 회부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진다.
때문에 국내에서도 척추동물에게 큰 고통이 주어지는 D, E 등급의 동물실험부터라도 전임수의사가 통증관리, 인도적인 안락사 등을 주관하게 함으로써 3R 원칙 중 ‘개선(Refinement)’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병철 교수는 “2008년 이후 동물보호법 상 동물실험윤리위원회 근거조항 개정, 실험동물법 제정을 시작으로 국내 실험동물 관리제도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며 향후 제도 변화에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방향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