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테크니션, 논의 중이긴 한데 이렇게 할 겁니다?
채혈, 스케일링 허용 등 합의 없던 발표에 수의계 격분 `자가진료 제한 선결이 먼저`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수의테크니션(동물 간호사) 제도화를 공식 보고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당초 농식품부는 4월부터 대한수의사회, 동물병원협회, 한국동물복지학회 등과 테크니션 도입방안을 논의하는 TF를 운영해오고 있다. 3차례 회의를 거쳤지만 아직 TF 내에서조차 테크니션의 업무범위나 자격관리주체 등 주요 쟁점을 조율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황.
이러한 가운데 이날 이동필 장관의 보고에는 주사, 채혈, 스케일링 등 아직 합의되지 않은 업무범위가 마치 정해진 것처럼 포함됐다. 농식품부는 테크니션의 자격요건과 업무허용범위를 구체화하는 내용의 수의사법 개정을 2016년말까지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테크니션 도입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반려동물 자가진료 제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 같은 농식품부의 행보를 두고 수의사들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반려동물 자가진료 제한 없이 테크니션에게 침습적인 진료행위를 상당부분 허용한다면, 불법진료나 동물학대적인 자가진료가 확대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의테크니션 제도화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정부의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창출될 것이라 주장하는 진료보조인력 3천명은 지금도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경과조치가 TF 논의 안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수의사들의 분노 바탕에는 실망감이 자리한다. 수의서비스를 ‘전문가가 수행해야 할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합의되지 않은 침습적 진료행위허용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일면에는 자가진료 전면 허용, 수의사처방제 약사예외조항과 일맥상통하는 정부의 시각이 녹아있다는 이야기다.
한국동물병원협회 허주형 회장은 “이미 동물병원에서 원장을 돕는 직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테크니션 제도화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허위를 보고한 것”이라며 “향후 TF회의에서 수의사 전문성을 무시한 이동필 장관의 사과를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회의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수의사회 홈페이지에도 18일부터 테크니션 도입과 자가진료 제한 문제에 대한 집행부 해명을 요구하는 게시글이 줄을 이었다.
이에 대해 대한수의사회는 “반려동물 자가진료 제한이 수의테크니션 도입의 선결조건”이라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면서 농식품부가 발표한 테크니션의 업무범위도 수의사회나 테크니션TF 내에서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라고 못박았다.
대한수의사회는 “아직 테크니션 도입시 업무허용범위 어떻게 할지 논의할 단계조차 아니다”라며 “선결조건인 자가진료 제한이 현실화되는 것을 확인한 후, 업무범위 등 구체적인 도입조건을 회원 의견을 수렴해 협의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논란을 빚은 테크니션 업무범위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테크니션 업무허용범위는 공식적으로 확정된 바 없다”며 “TF 회의 등을 통해 정해나갈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자가진료 제한을 위한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 준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밝혔다.
소, 돼지, 닭 등 축산업 관련 축종으로 자가진료 범위를 한정함으로써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서 자가진료 허용을 철회하는 방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부처 의견조회를 거쳐 오는 6월 개정입법을 예고하는 것이 목표 . ‘검토하겠다’는 피상적 답변에 그치던 예전과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입법예고와 규제심사, 법제처 법제심사 등 넘어야 할 고비도 여전하다. 수의사가 아닌 일반인들의 동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대응논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