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수의방역정책을 담당하는 국 조직이 대한민국 정부에 최초로 신설됐습니다. 같은 달 촉발된 살충제 계란 사태로 국장 인사가 지연된 끝에, 9월 말 초대 국장으로 오순민 전 방역정책과장이 임명됐습니다.
지난 1990년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전신인 국립동물검역소에서 공직을 시작한 오순민 국장은 농림부와 검역본부을 오가며 검역과 축산물위생관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검역검사본부 위험평가과장과 축산물기준과장, 농식품부 검역정책과장을 거쳐 2014년 11월 CVO(Chief Veterinary Officer)인 방역총괄과장으로 임용됐습니다.
데일리벳이 만난 오순민 국장은 신설 방역정책국의 최대 현안으로 AI 방제대책과 조직 역량 강화를 꼽았습니다.
Q. 방역정책국장 임명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초대 국장을 맡은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개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방역정책을 다루는 국 조직이 신설된 것은 수의계에도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크다. 국장 임명소식을 듣고서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언제나 불안함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질병 방역이 주 역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축산진흥과 수의방역을 조직적으로 분리해 보다 효과적인 방역정책을 펼치는 것이 방역정책국을 신설한 취지다. 그에 맞게 국내 동물질병 방역정책을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겠다.
Q. 말씀하셨다시피 방역정책국은 2년 연한의 한시조직으로 신설됐다. 비단 방역정책국 뿐만 아니라 정부가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면 일단 한시조직으로 출발해 실효를 거두었는지 평가한다고 들었다. 2년 후 지속여부를 가를 핵심기준은 무엇인가?
많지는 않지만 새로이 생긴 정부조직이 한시조직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방역정책국이 유지될 지 여부는 국 신설 취지에 맞는 실효를 거두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다. 질병 발생여부나 발생 시 정부방역조직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등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것이라 본다.
Q. 그런 측면에서 올겨울 고병원성 AI 재발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부담이 클 것 같다.
AI 방역은 신설 방역정책국의 최대 현안이다. 현재 국 전체가 AI 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만나는 분들마다 덕담과 함께 올겨울 AI 재발 우려를 전해준다. 철새가 병원체를 유입시키는 국내 특성 상 아예 발병하지 않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도 많다.
하지만 국가적인 축제를 앞두고 최대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가령 가금농가에서 AI가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의 확산으로 막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0월부터 위기경보단계 ‘심각’에 준하는 방역조치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철새와 농가의 AI예찰을 확대해 상황을 조기에 감지하는 한편, 재발위험지역 오리농가 일부에 겨울철 사육 휴지기제를 시범 도입해 발생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Q. 지난해 H5N6형 고병원성 AI가 확산되면서 역대 최악의 피해를 입혔다. 그 과정에서 방역대 내 알 반출을 허용했다거나, 초기 스탠드스틸 조치를 주말로 미뤘다는 의혹이 붉어지는 등 ‘방역조치가 축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을 지나치게 걱정하다가 실효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방역정책국으로 방역조직을 독립신설한 것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업계에서는 ‘과연 얼마나 독립적인 방역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 의심 섞인 시각도 있다.
‘방역정책국이 산업은 생각치 않는 방역정책을 펼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업계 일각에서 벌써부터 나온다는 후문도 들린다.
사실 방역정책을 수립하려면 생산자 단체와 협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본인 스스로도 생산자 측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물론 방역정책국으로서는 방역 측면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치열한 고민이 전제돼야 한다. 방역조치로 인한 여파를 생산자 분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근거와 설득력 있는 논리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가령 가축전염병 방역에 필수적인 ‘이동제한’도 과학적 측면에서 다듬어나갈 계획이다. 현재는 행정구역 위주로 조치가 이뤄지다 보니 경기도 북부에서 발생한 질병으로도 연관이 적은 경기 남부 농가까지 이동제한에 묶이거나, 행정구역 경계 근처에서 질병이 터져도 옆 지자체에 속한 근처 농가에는 다른 조치가 내려지는 등 세부적인 개선점들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연구용역이 마무리되면 이를 바탕으로 권역별 이동통제 범위 설정 기준을 다시 검토하겠다.
알 반출 문제나 스탠드스틸도 일괄적으로 ‘한다, 안 한다’를 미리 말하기보단 각각의 방역상황을 보고 판단할 문제다. 축산물 수급상황을 무조건 무시할 수도 없다. 다만 방역상 안전한지 여부를 최대기준으로 놓고 판단할 것이다.
– 그래도 스탠드스틸은 최초 질병 발생시점에서 최대한 빨리 발동하는 것이 맞지 않나. 지금은 무슨 ‘소독의 날’처럼 변질된 느낌이다.
사실 스탠드스틸 제도를 도입한 원래 취지는 발생초기 역학조사와 방역조치에 빈틈을 없애기 위해서 였다.
2010년 구제역 사태 초기 안동에서 경기 북부로 넘어가는 축산관계차량을 놓쳤던 실패경험을 교훈 삼아, 발생 즉시 축산관계 이동을 모두 정지시켜 초동 조치에 필요한 시간을 벌자는 것이다.
스탠드스틸도 현장 상황을 고려하되 방역상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 운영될 수 있도록 면밀히 검토하겠다.
Q. 철새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AI 피해를 줄이려면 발생의심 사례나 첫 발생을 최대한 신속하게 잡아내야 한다. 조기신고는 더 보상하고, 명백한 신고지연은 매우 강하게 처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시군별로 최초 신고농가의 경우 AI 양성이라도 100%까지 살처분보상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올 겨울부터 도입된다(당초 양성농가는 최대 80% 보상-편집자주). 대신 신고지연 행위 등에 대한 패널티도 강화할 방침이다.
사실 ‘조기신고’라는 단어는 좀 이상하다. 농가에는 질병이 의심되는 즉시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질병이 의심되지도 않는 시점에 신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만큼 신고지연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는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지연 여부를 판단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농가를 납득시켜야 한다. 최근 AI와 관련해 가금농가의 폐사체 발생 추이를 바탕으로 평가기준 마련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Q. 당장 겨울이 눈앞에 다가왔고 이미 철새에서 저병원성 AI가 분리되고 있는데 아직 방역조직 개편은 현재진행형이다.
각 지자체가 가축방역관 충원에 나서고 있다. 하반기에만 350명이 넘는 수의사를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지자체에 동물방역 전담과, 전담팀을 따로 두도록 한 조치도 현재 진행되고 있다.
가축방역관 채용의 경우 전반적으로는 수의사들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지역별로는 미달사태가 벌어진 곳도 있다. 아직 충원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자체의 방역조직 개편을 두고서도 축산과에서 방역과를 분리신설하다 보니, 유사시 방역정책에 참여하는 공직자 총원이 당장은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 아직 인원 충원이 미흡하고, 일부 인원들의 방역정책 경험이 적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가축방역체계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단기적으로는 극복해야 할 과제들도 함께 생긴 셈이다.
방역정책국도 조직역량을 기르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신규로 충원된 방역국 구성원들이 중앙정부에 걸맞은 행정역량을 다져야 한다. 방역정책을 힘있게 끌고 나갈 기반을 제대로 갖추려면 아직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Q. 당장은 AI·구제역 방역이 화두지만, 그 밖에도 방역정책국장으로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기존의 가축방역정책을 전반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AI나 구제역은 터질 때마다 가축전염병예방법이나 관련 방역요령 등을 조정하고 있지만 결핵, 브루셀라 등 매년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방역정책들도 있다.
이들이 정말 현장에서 효과를 잘 내는지, 현장에서 필요함에도 정책에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전반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가축질병 방역정책의 큰 틀을 새로 세우는 것이 방역정책국에 주어진 임무 중 하나라고 본다.
당장은 AI 방역에 집중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외부전문가를 포함한 TF를 꾸려 추진해보고 싶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실 말씀이 있다면
8월 8일 방역정책국이 출범해 이튿날 인사발령이 난 직후 살충제 계란 사태가 불거졌다(당시에도 오순민 국장은 방역정책과장으로서 공석이던 국장의 대리직을 맡았다-편집자주). 지금은 후속조치에 힘을 기울이는 단계지만, 처음 1~2개월은 살충제 계란을 비롯한 축산물 위생 문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서야 방역에 집중하고 있지만, 지자체 방역조직 개편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는 등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힘든 점도 있다.
그럼에도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갖고 방역정책에 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수의사로서 명예를 걸고, 아직 한시조직인 방역정책국의 연착륙을 위해 뛰겠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