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에 대한 긴급진단 토론회가 3일 개최됐다. 대책에는 다양한 내용이 담겼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체고 40cm 이상 개를 관리대상견으로 지정하여 특정 공간에서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 시키는 방안’이 주로 논의됐다.
대형견 보호자 모임과 여러 동물보호 단체가 대책 발표 직후부터 문제제기 했고 현재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바로 그 방안’이다. 토론회 제목도 ’40cm 개입마개 이대로 좋은가’였다. 자극적인 제목이었지만 그만큼 동물보호단체 및 보호자들이 이 대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토론회에서는 정부 관계자와 동물보호단체 대표 등 2명의 발제에 이어 지정토론,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 토론회를 끝까지 지켜본 뒤 드는 생각은 ‘체고 40cm’라는 기준이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이 방안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근거의 부재’다.
정부 관계자가 이 기준에 대해 “해외 사례를 참고해서 체고 규정을 만들었다”고 답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날 토론회에서 동물보호단체와 보호자들이 직접 찾아 온 해외 사례를 참고하면 농식품부의 해외 사례 적용이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
선진국에서도 맹견법이 폐지되거나 재검토되는 분위기며, 체고 40cm이상의 개를 ‘큰 개’로 규정하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도 ‘큰 개’에게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시키지는 않는다.
결국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해외 사례를 철저하게 검토한 것이 아니라, 답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해외 사례’라는 근거를 짜맞추기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동물보호 담당 인력 및 예산 부족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한계점을 고려하더라도 보호자와 동물보호단체가 며칠 만에 확인할 수 있는 해외 사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통의 중요성’과 ‘과정의 공정성’을 강조해왔다.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이낙연 국무총리가 직접 “우리 농림축산식품부가 소비자단체, 동물보호단체들과 상의해서 모처럼 좋은 대책을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동물보호단체는 이낙연 총리의 발언에 대해 ‘자화자찬했다’고 평가했다. 왜냐하면 대책 마련을 위해 구성된 ‘반려견 안전관리 TF팀’에 참여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과 수의사 등 전문가들이 ‘체고 40cm 이상 반려견을 관리대상견으로 지정’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피력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과정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정부가 ‘의견을 무시하고’ 대책을 발표하자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온 것이다.
이번 토론회의 한 지정 토론자는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계속해서 의견을 무시했을 때 정부를 지지하다가 적극적 반대로 돌아설 분들의 숫자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남북 단일팀 구성과정에서 선수들과의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단일팀을 결정한 정부의 판단이 논란이 되어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까지 이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미 경기도에서 ‘체중 15kg 이상 반려견’에게 일괄적으로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시키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바 있다. 왜 지자체의 실수를 보고서도 중앙 정부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품종을 기준으로 하는 ‘맹견’ 이외에 개체별 특성을 고려하여 ‘관리대상견’을 지정하고 일반 반려견과 다르게 관리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체고 40cm 이상의 반려견’을 일괄적으로 관리대상견으로 지정하는 ‘그 기준’ 하나 때문에 동물보호단체들과 보호자들이 계속해서 반발하는 것이다.
이번 대책에는 여러 가지 좋은 방안들이 담겼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고민도 느껴진다. 하지만 ’40cm’라는 숫자 하나 때문에 다른 방안들은 제대로 평가 받지도 못하고 비난만 받고 있다.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 요구도 거세다. 정부가 ‘체고 40cm 이상 기준’을 철회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대책 재검토에 나선다면 모든 문제는 바로 해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