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약국..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중 주사용 항생제 및 주사용 생물학적제제만 적용
조레틸, 럼푼, 석시닐콜린까지 동물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쉽게 살 수 있어
8월 2일 수의사 처방제 실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동물약국이라는 큰 구멍이 무방비로 뚫려있어 '처방제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농식품부는 지난 5월 2일,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성분을 확정·고시했다.
농식품부가 발표한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성분은 마취제 17종, 호르몬제 32종, 항생항균제 20종, 생물학적 제제 13종, 기타 전문치료제 15종 등 총 97개 품목이다.
8월 2일, 수의사 처방제가 실시되면 처방대상 97개 성분(1,162개 제품)의 동물용 의약품은 수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동물약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동물약국에서는 처방대상 97개 성분 중 주사용 항생제와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만 처방전을 받고 판매하고, 나머지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은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
즉,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중 마취제(전체), 호르몬제(전체), 주사용이 아닌 항생항균제, 기타 전문치료제(전체)는 모두 동물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 할 수 있는 곳은 동물병원, 동물용 의약품 도매상, 동물약국 등 3곳이다. 동물약국은 일반 약국 중 시·군·구청에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한다고 '신고' 한 약국을 의미한다.
처방제가 실시되면, 동물병원 수의사는 동물을 직접 진료해야만,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에 대한 처방전을 발행할 수 있다.
동물용 의약품 도매상은 모든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수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판매해야 한다.
하지만, 동물약국은 주사용 항생제,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를 제외하면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그냥 판매할 수 있다.
처방전도 필요없고, 동물을 사육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냥 자신이 키우는 동물에게 사용할거라고 하면 신분증 확인 후 조레틸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처방제가 실시되면 동물약국만 이득을 보게 되는 시나리오다.
동물약국이 수의사 처방제의 큰 구멍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약사들, 수의사 처방제 협의 당시 "약국은 아예 제외시켜달라" 주장
그렇다면, 왜 동물약국은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일부를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바로 일부 약사들의 '대의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 때문이다.
수의사 처방제 협의 당시 약사들은 "약사는 약의 전문가이고, 동물용 의약품 오·남용의 근원은 도매상이므로, 처방제에서 동물약국은 아예 제외시켜달라"고 주장했다. 즉, 수의사 처방제 실시와 상관없이 자신들은 계속해서 모든 동물용 의약품을 처방전 없이 팔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주사용 항생제'와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 는 처방전이 있어야만 팔 수 있도록 결정됐다.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2/3를 처방전 없이 동물약국에서 구매 가능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으로 포함된 97개 성분(1,162개 제품)의 연간 시장 규모는 900억원 정도다. 그 중 주사용 항생제와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는 약 300억원의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다. 결국 나머지 600억원 시장은 동물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전체 시장의 2/3를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 다.
현재 전체 동물용 의약품 시장 규모는 연간 5000~6500억원 정도다. 그 중 동물약국을 통해 유통되는 시장이 60억원이다. 전체 동물용 의약품 중 동물약국을 통한 유통은 고작 1% 수준인 것이다. 또한, 동물약국이 모든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중 처방전 없이 팔 수 있는 품목을 얼마나 취급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처방제 실시 이후, 주사용 항생제와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를 제외한 나머지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동물약국을 찾는 보호자와 축주가 늘어나고, 이런 제품을 취급하는 동물약국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동물약국을 통해 유통되는 동물용 의약품 규모가 당연히 커질 수 밖에 없다.
최근, 동물약국 개설 신고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동물약국들이 하나 둘 `약국에서도 동물약품을 판매한다`는 홍보문구를 내걸고 있는 걸 보면, 동물약국 약사들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 가능하다.
조레틸, 석시닐콜린, T-61, PGF2a, 자일라진, 옥시토신 모두 동물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판매 가능
처방전 없어도 신분증만 제시하면 OK…동물 사육안해도 구입할 수 있고, 어디에 쓰는지도 몰라
사실, 수의사 처방제 실시 전에도 동물용 의약품 도매상이나 동물약국에서 동물용 마취제·호르몬제 등이 일반인들에게 팔려 문제가 된 적이 많다.
지난 2009년, 광주광역시에서 여성에게 동물용 마취제를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동물용 마취제를 맥주에 몰라 타 마시게 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당시 해당 사건을 취재한 한 언론사는 직접 동물약국을 방문해 동물용 마취제를 구입했다. 해당 기자가 구입한 약품은 조레틸(Tiletamine+Zolazepam)과 럼푼(Xylazine).
기자는 간단한 신분증 제시만으로 조레틸과 럼푼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수의사 처방제 도입 목적은 "동물약품 오·남용 방지, 축산식품의 안전성 확보, 국민보건 향상"
처방전 없이 처방대상 약품 구입가능한데, 처방제 실효성 있을까?
처방제의 도입취지 살리기 위해선 동물약국의 예외조항 없애야..
수의사 처방제는 '호르몬제 및 항생제 등 동물용 의약품의 오·남용에 따른 내성균 출현과 동물·축산물에 약품의 잔류 등을 예방하여 축산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국민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됐다.
따라서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97개 성분은 오·남용 방지와 축산물 안전성 확보,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매우 중요한 성분들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품목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기 때문에, 이번에 선정된 97개 성분은 말 그대로 기본 중 기본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97개 성분 조차도 주사용 항생제와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를 제외하면, 동물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으니, 과연 동물용 의약품의 오·남용이 얼마나 줄어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양돈수의사는 "수의사 처방제는 선진국으로서 안전한 축산식품 생산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추진된 것이지, 약사들을 배부르게 하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양돈 농장에서 경구용 항생제를 구입하기 위해 출장비·처방전 발급수수료를 지출해가며 수의사를 부를지, 동물약국 가서 약값만 주고 마음껏 약을 살지 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인천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H원장 역시 "주사용 항생제는 처방전을 받고 판매하고, 경구용 항생제는 처방전 없이 판매 할 수 있는 상황인데, 같은 성분이라도 주사용은 안되고 경구용은 괜찮다는 뜻인가"라고 반문하며 "농장에서는 주사용보다 경구용이 오히려 더 오·남용 되기 쉽다"고 덧붙였다.
만약, 수의사 처방제가 실시되고 동물약국을 통해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이 `처방전 없이` 대대적으로 유통될 경우, 처방제를 실시하는 의미가 없다.
처방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실시하는 제도가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동물용 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축산물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하는 제도다. 따라서 동물약국에서도 똑같이 모든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당연히 `처방전을 발급 받은 경우에만` 판매해야 한다. 말 그대로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처방전 없이 판매하다가 문제가 생기면(조레틸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해 범죄에 악용하는 일이 또 발생하면) 결국 그 책임은 `처방제 시행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처방제에서 동물약국을 제외해달라`고 주장한 약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