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비,가격이 다르면 내용도 다르다
동물병원 진료비 편차에 또 비난..차이를 만들라는 정부와 없애라는 보호자
동물병원 진료비 편차를 부정적으로 다룬 언론보도가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일반시민이 보도하는 KBS뉴스의 시청자 리포트에서다.
3일 KBS 9시뉴스에 <애완동물 치료비, 부르는 게 값?>이라는 제목의 시청자리포트가 실렸다. 리포트는 동일한 반려견의 중성화수술비를 서울시내 동물병원 여러 곳에 문의한 결과, 수술비가 15만원에서 66만원까지 최대 4배 차이를 보였다고 전했다. 시청자리포터 노수아씨는 “동물병원 진료비의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 소비자의 부담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물병원 진료비에 ‘기준’을 세우는 일은 불법이다. 해당 뉴스에서 다뤘듯 공정거래위원회가 진료비를 통일하거나 편차를 줄이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상 담합이라는 것이 그 근거다.
반려동물 진료 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서비스와 재화의 금액은 경쟁을 바탕으로 시장 안에서 자유롭게 결정된다. 오히려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거나 통일시키려는 경우 강력한 처벌을 받고 있다. 국가에서 정하는 의료보험수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같은 종류의 재화나 서비스도 공급자에 따라 다른 가격표를 달고 있다.
이처럼 진료비에 편차가 있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비 편차가 있는 것이 문제고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수의사들은 나쁘다’는 식의 언론 보도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료비 편차는 외국도 마찬가지…일본 4.5배, 미국 3배까지 편차 존재
그 이유로 먼저 우리나라 동물병원의 진료비 편차 정도가 유독 심하다는 인식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반려동물 진료비 통계를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일본수의사회(JVMA)에서 1999년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반려견 암컷의 중성화 수술비를 계산했을 때 17,800엔에서 79,000엔까지 약4.5배의 차이를 보였다.
술전검사 항목과 마취방법, 입원치료기간(1일)까지 동일하게 가정하여 계산한 결과다. 여기서 술전검사 항목과 마취방법 등의 차이까지 고려하면 편차는 더욱 커진다.
술전검사, 마취비, 입원비 등을 제외한 순수 수술비도 1만엔부터 5만엔 이상까지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동물병원협회(AAHA)가 2007년 발간한 수의진료비 통계자료에 따르면, 하위25% 진료비와 상위25% 진료비가 1.5배~3배의 편차를 나타냈다. 기본적인 진찰에서부터 수술까지 모든 진료 항목에서 해당되는 얘기다.
진료수준, 의료기기, 병원입지 등 다양한 요소가 진료비 결정..사람병원비도 편차 커
진료비가 차이 나면 진료내용도 다르다
또, 진료비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동네 모텔과 5성급호텔은 설비와 서비스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가격차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중성화수술은 똑같은 수술인데 왜 가격이 다르냐는 것이다.
이것은 동물병원 진료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인의에서도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은 비급여 항목 진료비는 천차만별이다.
올해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한국소비자원이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비급여 진료비 비교결과를 공개하자 진료비 차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갑상선 초음파 진료비는 9만원부터 21만4천원까지 2배 넘는 차이를 보였다. 상급병실료차액의 경우 편차는 더욱 크다.
당시 이 문제를 다룬 언론보도에서 모 병원 관계자는 “각 병원이 가진 다양한 변수를 고려치 않은 단순진료비 비교(는 잘못된 것이다)”라면서 “진료비를 책정하는 것에는 의사의 실력과 경험, 검사장비 수준과 감가상각, 병원이 위치한 지역별 차이, 인건비, 재료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진료도 마찬가지다. 같은 내용의 진료라도 해도 위에서 언급된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비용 차이가 발생한다.
게다가 동물진료의 특성 상, 같은 상황이라도 수의사의 주관이 영향을 미칠 여지가 크다.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하고, 통증을 잘 참기 때문이다. 즉, 수의사에 따라 선택하는 검사 방법이나 치료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진료비 편차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결국, 15만원을 요구한 동물병원과 66만원을 요구한 동물병원의 중성화수술은 같은 수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임상태’라는 결과는 같을 지 몰라도, 내용이 다른 진료행위다. 진료비가 높을수록 다양한 검사를 진행하거나 입원치료를 병행함으로써 반려동물의 건강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높은 수준의 케어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동물병원을 운영 중인 손은필 서울시수의사회장은 “반려동물이 어떤 상태인지, 수술전 검사를 어떻게 하는지, 동물병원 시설과 수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수술비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손 회장은 또한 “저렴한 가격이 무조건 착한 진료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며 “수술비를 비정상적으로 싸게 하면 그만큼 수술전 검사 항목을 생략하거나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의료기구를 사용해야 하고 집중적인 후처치를 받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 위험성은 고스란히 수술을 받는 반려동물이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