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찬의 Good Vet Happy Vet⑪] 수의사는 정말 불행한 직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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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yechan 300

“나는 이 일이 진짜 지긋지긋해.”

‘수의사들의 불행’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친한 동료의 이 말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삶이 엄청난 행복감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기에 이 말은 나에게 작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직업은 개인의 행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행복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행복이 50%의 유전적 요인과 10%의 상황적(환경적) 요인, 그리고 40%의 활동적 요인으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60%를 차지하는 유전적 요인과 상황적 요인은 행복에 대한 역치나 인종, 국가와 같이 주어지는 것에 가깝다. 개인이 통제 가능한 것은 의도적인 활동과 관계된 영역으로, 직업적 측면의 행복은 여기에 포함된다.

다행히도 여러 조사결과에서 세계적으로 70~80%의 수의사는 직업적으로 만족한다고 답하며, 이는 우리나라의 수의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수치로 나타나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48%의 수의사들이 직업적 스트레스로 인해 불만족을 느끼며 32%의 수의사들이 5년 전보다 덜 행복하다고 응답했다는 미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와 같이, 수의사들이 직업적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것이 다양한 연구와 통계를 통해 알려졌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 수의사들이 전 직종을 통틀어 가장 높은 자살률(일반 인구의 약 3.5~4배)을 나타내는 상황은 이미 수의사 사회를 넘어서서 심각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의사를 행복하게 만들고, 또 불행하게 만드는 것일까?
 

“야, 우리 과장 진짜 완전 꼰대야, 너무 짜증 나!”

“난 여기 연봉이 너무 적어. 이직할까 봐.”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직업이나 직장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만족스러운 부분보다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직업적 경험과 관련된 연구들은 대부분 직업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것을 최소화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직업의 부정적인 부분이 사라지면 직업의 만족도가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직업적 만족’과 ‘직업적 불만족’은 서로 다른 욕구에서 기인하는 조금 다른 영역이다.

심리학자 허즈버그(Frederick Herzberg)는 이를 “동기-위생 이론(motivator-hygiene theory)”으로 설명하였다.

직업의 불만족요인(위생요인; hygiene factors)은 주로 환경적인 요인으로, 급여, 동료와의 관계, 직업 안정성, 작업조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요소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직업에 불만이 발생하지만, 이것이 충족된다고 하여 직업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직업의 만족요인(동기요인; motivation factors)은, 이것이 충족되지 못해도 불만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족되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증가하는 요인인데, 성취감, 직업 그 자체, 성장 가능성, 책임감, 인정받음 등이 여기에 속한다.

물론 하나의 이론으로 인간의 심리를 전부 풀어낼 수는 없겠지만, 직업에 대한 불만과 만족은 어느 정도 교집합을 가진 각자의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직업적 측면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불만족 요인들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만족 요인을 최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수의사의 동기요인과 관련하여 캐나다의 수의사와 수의테크니션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직업의 어떤 부분에 만족을 느끼는지 조사한 연구(Jean E. Wallace)에서, 응답자들은 직업 만족 요소로 크게 네 가지를 꼽았다.

그들은 1)동물을 돕고, 2)고객(보호자)을 도우며, 3)흥미로운 일에 도전하고(역동적인 업무), 4)동료들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것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 연구결과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응답자들이 직업 만족도의 큰 부분을 돕는 행위, 즉 이타성의 충족에서 비롯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타성과 관련하여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Janette Dill 외)에서, 이타성은 강한 직업적 동기를 부여하지만 동시에 이타성이 높은 간호사는 스트레스와 번아웃(burn out)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조건 헌신하는 것보다 환자에 대한 적절한 감정적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의사의 직업적 행위는 기본적으로 돌봄의 행위이다. 이는 이타성 및 여성성과 관계가 있다. 나는 이것이 대두되고 있는 수의사들의 동정 피로(compassion fatigue) 및 번아웃 문제, 그리고 여성 수의사들의 특히 높은 자살률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만성적인 불행에서 최악의 예후는 자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의사의 높은 자살률에 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질적 요인(더 내성적이고 완벽주의자적인 성향), 동정 피로, 불규칙한 근무시간, 높은 근무 강도, 정신적·신체적으로 고립된 근무환경, 높은 학비로 인한 과도한 빚, 진료에 대한 압박감과 보호자의 높은 기대감 등에 따른 스트레스, 그리고 이어지는 우울증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이것이 자살로 이어지는 데에는 수의사들이 지나치게 죽음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과(의사보다 다섯 배 더 많은 죽음에 대한 경험) 안락사 약물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수의사들이 안락사 약물을 통한 자살을 많이 선택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쯤 되자, 수의사의 불행은 마냥 ‘너의 개인적인 사정’이라고만 하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수의사 사회에서 대응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수의사의 웰니스(wellness)에 관한 많은 연구와 시스템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며, 수의사에게 바람직한 직업 태도, 스트레스에 대한 적절한 대처와 관리, 긍정적 마음가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으로 최근에는 수의사의 웰니스와 관련된 연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WSAVA에서는 2018년부터 산하에 Professional Wellness Group을 구성하여 수의사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수의사는 정말 불행한 직업일까?

결론적으로 수의사는 ‘불행한 직업’이라기보다, 직업이 담고 있는 요소들을 볼 때 ‘불행에 취약한 직업’은 맞는 것 같다.

억지로 밝은 마무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긍정적 마음가짐과 만족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많은 전문가가 말하고 있으니, 우울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상기시켜 보도록 하자.

우리는 완벽한 행복을 갈구하지만, 행복의 본질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또 순간적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살아가는 데에는 바캉스 같은 행복을 만들어내는 방법보다 일상적인 불행을 담담하고 슬기롭게 감당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 참고자료

– Stoewen, Debbie L. “Veterinary happiness.” The Canadian Veterinary Journal 57.5 (2016): 539.

Wallace, Jean E. “The Ups: What Veterinarians and Technicians Love about their Jobs.” (2016).

Dill, Janette, Rebecca J. Erickson, and James M. Diefendorff. “Motivation in caring labor: Implications for the well-being and employment outcomes of nurses.” Social Science & Medicine 167 (2016): 99-106.

Milner, A. J., Niven, H., Page, K., & LaMontagne, A. D. (2015). Suicide in veterinarians and veterinary nurses in Australia: 2001–2012. Australian veterinary journal, 93(9), 308-310.

Shock Central: Veterinarian Suicides (Candy Lawrence)

http://www.corralonline.com/articles/article080310152649.htm

The current state of veterinary job satisfaction.

http://veterinarynews.dvm360.com/current-state-veterinary-job-satisfaction.

– Veterinarians Face Unique Issues That Make Suicide One of the Profession’s Big Worries.

https://time.com/5670965/veterinarian-suicide-help/

수의사 중간 연봉은 5288만원…직업만족도는 75%

https://www.dailyvet.co.kr/news/etc/110971

[정예찬의 Good Vet Happy Vet⑪] 수의사는 정말 불행한 직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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