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의 다양한 분야 및 이슈에 대한 수의대생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8기가 “수의학 A to Z”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의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미리 학생들로부터 공모받은 알파벳에 따른 키워드를 정해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A부터 Z 키워드 기사가 계속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일곱 번째 키워드 알파벳 G는 안내견(Guide Dog)입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김승호 수의사님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수의임상 업무를 맡고 있는 김승호 수의사라고 합니다. 저는 건국대학교 93학번으로 2000년에 졸업하였습니다. 졸업 후 일반 동물병원에서 임상수의사로 일하다 2003년에 안내견학교에 입사해 지금까지 근무 중입니다.
Q. 안내견학교에서 수의사가 하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
안내견학교에서 수의사는 예방접종, 질병 진단 및 치료, 수술, 건강검진 등 일반적인 수의 임상 업무를 주로 수행하고 그에 수반되는 동물병원 관리 업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개들은 견사에 있는 훈련견뿐 아니라, 활동 안내견, 퍼피워킹 중인 자견, 홈케어 위탁 중인 은퇴견 및 번식견 등이 모두 해당합니다.
각 개체별 질병관리뿐 아니라, 집단 사육에 필요한 방역 업무를 총괄하고 있으며, 번식과 관련된 기술 지원으로 정액동결, 인공수정, 유전질환 검사 등도 수행합니다.
또한, 안내견학교 직원들에게 개와 관련된 최신 지식과 정보 등을 공유하고 교육을 하고 있으며, 필요시에는 조사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안내견학교 수의사의 하루 일과를 소개해 주세요.
8시부터 17시까지가 정규 근무 시간인데요, 사무실과 진료실 등이 있는 별도의 동물병원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견사를 돌며 회진을 하고 현장에서 진료업무를 하기도 합니다.
업무가 마무리되면 당일 진료내역과 특이 사항을 보고서로 작성하여 이메일로 직원 전체에 공유하고 퇴근합니다.
가끔 분만이나 중환견 등으로 응급 진료가 발생하면 출퇴근 시간과 상관없이 회사로 바로 출근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주·야간 항시 콜 대기 상태일 때도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Q. 안내견 수의사는 일반 소동물 임상수의사와 어떤 면이 다른가요?
기본적으로는 저도 소동물 임상 수의사에 속합니다. 개라는 동물의 질병을 개별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기본 프로토콜이나 원칙은 비슷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집단 사육을 하기 때문에 군 관리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견사 전체에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역 프로토콜을 관리해야 합니다. 또한, 좋은 개를 생산하기 위한 번식 기술도 필요하므로 정액동결, 인공수정과 같은 영역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소동물과 산업동물의 임상을 섞어 놓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진료비를 받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도 로컬 병원에서 경험했지만, 일선 동물병원 수의사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가 진료비용에 대한 설명이나 보호자 설득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로워서 원하는 대로 검사하고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영리 추구라는 부분이 배제되고, 안내견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일반 동물병원과 진료 방식이나 환견에 대한 접근법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Q. 특별히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학부 때부터 동물병원보다 기업체 취업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소동물 임상을 먼저 시작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안내견학교에서 임상 경력 수의사를 채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동물병원의 스트레스와 개원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임상만 전념하고 싶었고 사회 공헌사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회사에 입사하길 희망했는데, 이 부분이 운 좋게 잘 맞아 현재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장단점 또는 좋은 점과 애로사항은 무엇인가요?
국내 유일의 수의사라는 자부심과 동시에 1인 수의사 클리닉의 한계를 모두 느낍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현재는 유일하게 안내견에 특화된 진료를 해왔다는 큰 자부심이 있습니다. 수의사에 대한 신뢰와 의존도가 높아 직원들도 잘 따라주어서 일반 동물병원보다 사람과의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고, 주5일 근무가 정착된 이후에는 워라밸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그러나 수의사가 저 혼자이다 보니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임상적 의견을 나누거나 일하면서 생기는 고충을 토로할 동료가 없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내부적으로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국내 Working Dog 분야에 종사하는 수의사가 적은데, 외국의 경우 규모가 큰 안내견학교 외에는 수의사 없이 운영되는 곳이 많습니다. 지리적, 언어적 장벽으로 외국 안내견 또는 Working Dog 수의사들과의 교류가 쉽지 않은 점도 큰 애로사항입니다.
Q. 안내견학교의 근무 환경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대기업에서 직접 운영하는 만큼 근무 환경은 매우 좋습니다. 시설뿐 아니라 근무에 필요한 여러 지원도 세계 어느 안내견학교에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근로 시간, 급여체계, 복리후생 등은 회사 기준과 관련 법규에 맞추어 운영되고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저희 직원은 각자 정해진 뚜렷한 업무들이 있으므로 누가 매일 지시 감독을 하지 않아도 눈치 없이 본인 업무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또한, 사회공헌의 성격이 강해 매출 등의 압박을 받지 않으므로 근무 분위기는 수평적이고 유연하며 자유로운 편입니다.
Q. 기억에 남는 안내견이나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안내견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저를 계속 만나게 됩니다. 눈도 못 뜨던 꼬물이들이 어느새 훌쩍 커서 훈련받으러 오고, 얼마 지난 것 같지 않은데 의젓한 안내견이 되어 사회로 나갑니다. 그런 녀석들이 어느 순간에는 희끗한 털로 바뀌어서 은퇴하여 돌아옵니다. 모든 연령대의 안내견을 보지만 주로 은퇴 후에 저를 만나러 자주 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들도 나이를 먹으면 병이 생기고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게 됩니다. 수많은 안내견의 생로병사를 보면서 인생의 축소판을 보는 듯합니다. 또 수의사 입장에서 여러 질병의 진행 과정과 종말을 보면 너무나 귀중한 경험이며 교훈이 됩니다. 어느 죽음 하나하나 저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 없는데 다 기억하지 못함에 미안할 뿐입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안내견이 있다면 가장 오래 장수한 ‘보은’이라는 안내견입니다. 열일곱 살 때 비장 종양이 파열되어 제가 응급 수술을 했는데 다행히 잘 회복되었고, 그 후 1년을 더 살다가 노령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축복’이라고 방송프로그램에 등장해 유명해진 안내견도 있습니다. 뮤지션인 정재형씨가 안내견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기억에 남습니다. 축복이는 작년에 은퇴해 좋은 가정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Q. 안내견은 다른 반려견에 비해 제약이 많은데 공통적으로 보이는 질병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안내견의 특성상 인간과의 스킨십에도 제약이 있고 많은 훈련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안내견에서 유독 많이 보이는 질병이나 혹시 힘들어하는 점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안타깝게도 질문에서 안내견에 대한 편견이 느껴지는데요, 우선 안내견은 반려견에 비해 제약이 많지 않고, 오히려 혜택이 더 많습니다.
안내견은 우수한 기질과 건강한 신체를 지닌 번식견으로부터 태어나서 위생적이고 좋은 환경 속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관리를 받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평생 받으며 살아갑니다. 일반 반려견들은 갈 수 없는 공공장소에도 보호자와 함께 다닐 수 있으며, 사회화 과정과 훈련 과정, 그리고 안내견 생활과 은퇴 후 노후보장 기간 중에서도 인간과 충분한 교감을 나누고 더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제 경험상 안내견이기 때문에 많이 생기는 질병은 없습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라는 품종의 특성 때문에 생기는 질병일 뿐입니다. 그렇게 생기는 질병이라도 조기에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동일 품종의 반려견보다는 질병 발생 빈도가 더 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훈련견, 활동견, 은퇴견 등 모두 지역 동물병원이든 저희 안내견학교 부속 동물병원에서 충분히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뿐 아니라, 1차 진료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은 수의대 부속 동물병원에 의뢰하여 최적의 진료 서비스를 받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경우’는 없고 ‘왜 죽었는지 모르게 죽는 개체들’도 없습니다.
그런 노력으로 안내견의 평균 수명은 동일 품종의 반려견들보다 더 장수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Q. 최근 롯데마트 퍼피워킹 사건을 보고 느끼는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잘잘못을 따지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상 국내에 안내견의 수가 너무나 적기 때문에 안내견에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국내에 60여 두의 안내견이 활동하고 있는데, 실제로 길에서 안내견을 만나는 게 흔한 일이 아닐 겁니다. 아마도 국민 중 상당수가 평생 안내견을 만나 보지도 못할 수도 있고, 아무리 법으로 정하고 인터넷이나 언론에 소개된다 해도 생업에 바쁘시면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수의사분들조차도 안내견이 어떻게 양성되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안내견 출입 거부 사례는 안내견의 역사가 길고 활동 두수가 많은 선진국에서도 간혹 발생하는 일이며 아직도 안내견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과 그 보조견에 대한 인식개선도 지속하여야 하겠지만, 우선 반려견 문화가 더 선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사람과 개가 함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느 공간이든 예절만 잘 갖춘다면 개도 같이 출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에 대한 일반적인 부정적 인식이 줄어든다면 안내견과 같은 장애인 보조견에 대한 거부는 사라질 것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안내견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진 것은 사실이나, 불미스러운 일이 아닌 아름다운 일로 더 알려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슈화가 되었을 때만 관심이 증가하였다가 사그라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내견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였다면 사회적으로 어떻게 안내견을 더 많이 양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의 편의시설 접근’을 보장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추진했다고 하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안내견학교는 안내견 활동의 사회적 보호 및 확대를 위해 꾸준히 법개정을 제안해 왔습니다.
19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보조견 관련 법개정이 있었습니다. ‘장애인복지법’ 내 장애인보조견 관련 조항이 생긴 것입니다(보건복지부).
장애인보조견 표지를 붙인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는 곳에 출입할 때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했습니다.
2012년에는 법이 재개정 되면서 대상이 확대됐습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보조견의 육성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 및 훈련사도 공공시설 및 편의시설 등 이용 시 거부당하지 않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2015년에는 장애인보조견의 검역을 간소화하는 법개정이 있었습니다. 장애인보조견의 경우 입국 검역 시 장애인보조견임이 입증될 경우 광견병 항체검사결과서 제출이 필요없도록 절차가 간소화됐습니다.
김민서 기자 alstj9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