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뉴얼 때 ‘재입점 구두 약속’ 앞세워 업체들 퇴점
A 동물병원장, 공사 중에도 병원 지키며 계약기간 사수
수도권의 한 대기업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마트동물병원 A원장은 지난 8월 중순경 쇼핑몰로부터 한 장의 합의서를 받았다.
10월 말부터 쇼핑몰 리뉴얼 공사가 시작되니, 퇴점에 동의하라는 내용이었다.
합의서에는 ‘입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적혀있었지만, 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쇼핑몰 이외에 임대차 계약중인 50개 업체 대부분은 ‘리뉴얼 기간 동안 점포를 비워주고, 리뉴얼 후에 새로운 자리를 배정받아 재입점하는 것’으로 알고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고 “합의서의 표현이 조금 복잡하고 강한 느낌이지만, 절차상 필요하다”는 쇼핑몰 책임자의 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합의서에 이상한 부분이 많다고 느낀 A원장은 합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고, 재입점 시 대략적인 위치와 월세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얼마 뒤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업체 대부분은 보상도 못 받은 채 억울하게 퇴점당했고, 도장을 찍지 않았거나, 도장을 찍었어도 끝까지 버틴 점주 일부만 약간의 보상금이라도 받고 나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7층 건물 쇼핑몰에는 지하 마트와 영화관을 제외하고 A원장의 동물병원과 커피전문점만 남게 됐다.
정확한 위치와 월세를 알려달라는 A원장의 요구에 쇼핑몰 책임자는 9월이 되야 알 수 있다고 답했고, 이에 A원장은 구체적으로 정해지면 결정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쇼핑몰 측은 “그럼 공사진행이 안 된다”며 A원장의 합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A원장에게 퇴점을 종용하기 위해 지원팀장부터 지점장, 본사서브관리팀장, 본사법무팀장까지 A원장을 찾아왔다.
A원장은 이런 모든 상황을 전부 음성 녹음 및 CCTV녹화를 했다. 개인은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증거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A원장은 “구두로 재입점에 대해 노력하겠다는 말만 했지 월세나 위치 등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어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들이 퇴점 하자 A원장의 병원이 영업 중임에도 리뉴얼 공사가 시작됐다. A원장은 이에 따라 쇼핑몰 공사로 인한 피해에 대해 시청, 도청, 경찰서, 소방서 등에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 소음측정기를 구입해 소음이 심하게 나는 경우 소음을 측정한 뒤 쇼핑몰 책임자에게 "소음이 기준치를 넘는다. 영업방해를 하지 말아달라"고 전했다.
A원장의 여러 번의 노력 끝에 시청의 행정지도 및 경찰이 나오게 됐고, 결국 쇼핑몰은 A원장의 요구를 들어줬다.
A원장은 쇼핑몰로부터 ▶ 가벽설치 ▶ 공기청정기 4개 제공 ▶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주간공사 ▶ 야간공사 시작 전 병원 주위 비닐 설치 ▶ 쇼핑몰 각 출입로에 동물병원 접근 법 안내 ▶ 주차안내요원 등에 동물병원이 위치 인지시키기 등을 요구했고, 이 모든 것을 받아냈다.
A원장은 “유동인구 감소로 인한 매출손실을 봤고, 현재 시설물도 계약이 종료되면 쓸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무료 법률상담을 받고, 대책마련촉구 및 영업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할 거라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A원장은 이어 “많은 대형마트들이 5~6년에 한 번씩 리뉴얼을 하기 때문에 마트동물병원 원장님들 중에 분명 나와 비슷한 일을 당하는 원장님들이 있을 것”이라며 “내 사례를 통해 다른 원장님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생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A원장은 결국 원래 계약기간인 내년 2월말까지 병원을 지킬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