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면허대여·불법 약품 판매` 사무장 동물병원 무더기 철퇴
면대 사무장 동물병원, 불법약품판매에 허위 진료부까지..면대 수의사에 집유, 실소유주는 실형
수의사 면허를 대여해 사무장동물병원을 개설하고 항생제 등 동물용의약품을 불법으로 판매한 일당이 무더기로 처벌됐다.
이들은 육계농장에 동물용의약품을 불법으로 판매했을 뿐만 아니라, 무항생제 인증에 필요한 수의사 진료기록부까지 허위로 발급했다.
사무장동물병원 실소유주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매월 돈을 받는 대신 면허를 대여한 수의사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진료권쟁취특별위원회(위원장 최종영)는 최근 양평, 원주 등에 사무장 동물병원이 의심되는 수의사와 실소유주를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해당 사례도 이번 판결과 비슷한 구조로 추정되는 만큼 사법조치에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수의사 면허 빌려 개원한 사무장 동물병원, 4년간 동물약 48억원 규모 불법 판매
월 250만원에 팔아 넘긴 수의사 면허
수원지법 평택지원과 수원지법의 1∙2심 판결을 종합하면 수의사A와 실소유주B, 동물약품업체K의 대표C는 수의사 면허를 대여해 사무장 동물병원Ⅰ를 설립해 불법으로 약품을 판매했다.
실소유주B는 기존부터 동물약품을 판매해왔다. 하지만 수의사처방제가 도입되면서 약품 판매가 어려워졌다.
B는 합법적으로 수의사 처방에 따라 처방대상약을 판매하는 대신, 더 쉽고 저렴한 길을 찾았다. 수의사 면허를 빌려 불법 사무장 동물병원을 개설하기로 한 것이다.
수의사A를 실소유주B에게 소개한 인물은 동물용의약품 수입∙판매업체 K를 운영하는 대표C다. 대신 A명의로 동물병원을 개설한 실소유주B가 K업체의 수입 동물약품이나 보조제를 판매해주기로 입을 맞췄다.
이들은 2014년 3월 수의사A 명의로 경기도 안성에 동물병원Ⅰ를 열었다. 명목상의 원장은 A이지만, 약품 판매 등 동물병원의 실질적인 운영은 실소유주B가 했다. 대신 수의사A는 실소유주B로부터 매월 250만원씩 지급받았다.
B는 2015년 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경기∙충남∙충북∙강원 등지의 양계농가 300곳에 동물약품을 판매했다. K업체가 수입한 항생제를 포함해 48억원어치에 달했다.
수의사의 면허 대여 행위는 명백한 수의사법 위반이다. 동물병원 등 의약품 판매 권한이 없는 자가 약품을 판매한 것도 약사법 위반이다.
수의사 면허 대여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무자격자의 불법 약품 판매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죄다.
항생제 쟁여 두고 필요할 때마다 수의사 처방없이 썼는데 ‘무항생제 닭고기’?
면허대여 수의사 명의로 허위 진료기록부 만들어 무항생제 인증 획득
실소유주B와 사무장 동물병원Ⅰ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육계농장의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과정에서도 불법을 저질렀다.
국내 육계농장 대부분은 계열화사업자에 속해 있다. 하림, 마니커 등 대형 계열사가 농장에게 병아리와 사료를 공급해주면 농장은 키우는 역할만 한다. 대신 사육비 명목의 육계 대금을 지급받는다. 농장이 무항생제 등 친환경농수산물 인증을 받으면 사육비를 조금 더 받는 구조다.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을 받으려면 사육과정에서 아예 항생제를 쓰지 않거나, 부득이하게 필요한 경우라면 수의사의 진료∙처방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수의사의 처방전이나 진료기록부로 이를 증빙해야 한다.
하지만 양평의 육계농장주F와 연천의 육계농장주G 등은 실소유주B와 짜고 허위로 무항생제 인증을 받았다.
실제로는 수의사가 아닌 사무장 동물병원Ⅰ의 직원들이 이들 농장의 육계를 불법 진료하고 동물약품을 불법 처방했다.
입추 전이나 입추 무렵에 미리 수의사 처방대상 항생제 등을 대량으로 구입해두고, 사육과정에서 필요할 때마다 수의사 처방 없이 자체적으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수의사의 처방이나 진료에 따라 사용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B가 빌려놓은 수의사A 명의로 허위 진료기록부를 만든 것이다. 이를 무항생제축산물 인증기관에 제출하는 방법으로 인증을 받았다.
실소유주B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F, G를 포함해 육계농장 25곳에 이 같은 수법으로 허위 무항생제축산물 인증을 도왔다.
재판부는 이들 범행이 업무방해죄, 친환경농어업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사무장 동물병원 실소유주에 실형 선고
실소유주 처벌 조항 생긴 지금은 더 큰 형량 가능성
1심 재판부는 수의사 면허를 대여하고 불법 약품판매를 공모한 수의사A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의사로서 동물의 건강증진, 축산업 발전과 공중위생 향상에 기여하여야 함에도 축산물에 대한 항생제 등의 오남용 방지,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수의사 처방제의 도입 취지를 몰각시켰다”면서 “그 대가로 매월 250만원을 지급받고 판매액이 무려 48억원에 이르는 만큼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실소유주B에게는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면허 대여와 불법 동물병원 개설, 동물약품 판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허위 진료기록부로 무항생제 인증을 획득하도록 도운 행위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친환경농수산물을 생산∙유통∙판매하는 업자에게 큰 피해를 주며, 인증제도 자체의 신용을 훼손하고 소비자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꼬집었다.
실소유주B는 처벌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원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판결에서 “동물용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하고 항생제 사용을 최소화한 환경에서 생산된 축산물을 엄격히 관리하여 국민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관련 규정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죄책이 상당히 무겁다”며 1심 실형 선고를 그대로 유지했다.
불법판매를 함께 공모한 동물약품업체 대표C에게는 벌금 5천만원형을 내렸다. 징역형은 면했지만 벌금액은 최고 수준이다.
재판부는 C가 자사 동물약품 공급처를 유지하기 위해 명의 대여 수의사를 소개하고 불법 약품 판매에 가담한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수의사A가 초반에는 일정 부분 수의사 업무를 담당한 점을 고려하면 확정적 고의는 아닌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을 참작했다.
재판부는 수의사법 위반(면허 대여) 혐의를 수의사A에게만 적용했다. 사건 당시 수의사법에는 빌려준 수의사만 처벌할 뿐 빌려간 실소유주(B)나 알선한 자(C)를 처벌할 근거 조항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이들 모두를 처벌할 수 있도록 수의사법이 개정됐다. 비슷한 유형의 사무장 동물병원이 재판에 넘겨지면 더 강하게 처벌될 여지도 있는 셈이다.
실소유주B와 짜고 허위로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육계농장주 F∙G에게는 벌금 1천만원을 부과했다.
충북 음성의 사무장 동물병원도 면허대여∙불법 약품판매 ‘덜미’
면허 대여(수의사법 위반)와 불법 약품 판매 공모(약사법 위반) 함께 유죄
충북 음성의 사무장 동물병원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면허를 대여한 수의사와 실소유주, 시기, 장소는 달랐지만 범행 방식은 비슷했다.
판결에 따르면, 수의사D는 실소유주E에게 2016년 4월 수의사 면허를 대여했다. E로부터 매월 200만원을 받기로 하고, 대신 충북 음성군에 사무장 동물병원M을 개설해줬다.
실소유주E는 2019년 11월까지 약 3년반 동안 400여개 농장에 70억 상당의 동물약품을 판매했다. 무자격자의 불법 약품 판매다.
안성의 사무장 동물병원Ⅰ 사례와 마찬가지로 수의사법∙약사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실소유주 E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6월,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수의사D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수의사A와 같은 형량이다.
수의사D는 항소심에서 ‘수의사 명의를 대여하거나 (불법) 동물약품 판매를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가 사무장 동물병원의 범행에 수의사법 위반과 약사법 위반 모두를 인정한 점도 주목된다.
수의사 면허를 대여했으면 수의사법 위반, 수의사법에 따른 동물병원 개설자가 아닌 자(사무장 동물병원)이 동물약품을 판매하면 약사법 위반이니 두 범죄를 모두 저지른 셈이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면허대여 불법약품 판매에 철퇴..특위 ‘추가 고발 준비 중’
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진료권쟁취특별위원회(위원장 최종영)는 이번 판결에서 드러난 불법행위가 전형적이라는 점을 지목했다.
사무장 동물병원이 무항생제 인증 농장에게 면허 대여 수의사 명의의 허위 진료기록부를 제공하거나, 주부인 수의사의 ‘장롱면허’를 활용한 점 등이다.
지난 4월 특위가 처음으로 문제삼은 김제의 소 임상수의사는 동물약품 판매소와 결탁해 전북 각지의 가금농장에 불법 처방전을 발행했다. 남원의 육계농장에 닭이 들어오기도 전인데 처방전이 나왔고 약도 배송됐다. 이번에 벌금형을 받은 F∙G 농장 사례와 유사하다.
최종영 위원장은 “사무장 동물병원의 형태는 대부분 유사하다. 무슨 약이든 주문하면 가져다 주면서 불법 처방전이든 진료기록부든 다 만들어준다”면서 “현재 추가 고발을 준비 중인 사무장 의심 병원이 여러 건이다. 실소유주는 물론 면허를 대여한 수의사∙약사까지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수사하면 실형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수의사회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경기도 민생특별사법경찰단이 포착해 수사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수원지검 평택지청이 송치받아 사무장 동물병원을 추가로 적발해 재판에 넘겼다.
지역 농가 탐문부터 피의자 휴대전화, 영업사원 업무수첩, 약품판매경로, 계좌영장에 매출내역까지 분석했다.
한 일선 가금수의사는 “무항생제 허위 인증이 흔하진 않지만, 관련 서류만 볼 뿐 실제 수의사가 진료했는지 확인하지 않는 인증제도에 허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예전보다는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나이든 수의사가 (면허 대여로) 용돈벌이하는 게 큰 잘못이냐’는 안이한 인식도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