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제2회 수의인문사회학 컨퍼런스
사전동의는 수의사·고객·환자 모두를 보호한다..맥락화된 의료 중요성 커져
“수의사는 매우 고객의존적인 전문직이다”
제2회 수의인문사회학 컨퍼런스가 2월 15일(토) 서울대 수의대 스코필드홀에서 열렸다. 2023년 첫 컨퍼런스를 개최한 지 2년만이다.
수의인문사회학은 전문직업성 양성과도 연관이 깊다. 하지만 서울대 천명선 교수팀을 제외하면 아직 다른 수의과대학에는 전임교원이 없고 체계적인 교육도 자리잡지 못했다.
이에 학생단체인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는 전국 수의대생이 수의인문사회학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컨퍼런스를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 수의인문사회학 컨퍼런스는 ‘보호자(고객)’에게 주목했다. 천 교수는 “수의대 학생들과 상담하면서 보호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선에서 보호자를 상대하는 수의사는 물론 간접경험을 하는 학생들조차 보호자 대하기를 무작정 무서워하거나, 적대시하거나, 수의사의 조언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편견을 갖거나, 동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수의사가 대적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전동의는 수의사, 고객, 동물 모두를 보호한다
‘동물진료를 위한 수의사·보호자의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최유진 연구원은 “수의사는 매우 고객의존적인 전문직이다. 동물의 건강 또한 고객(보호자)에게 매우 의존적”이라며 “고객이 어떻게 병력을 설명하는지, 경제상황은 어떤 지, 환자와 얼마나 친밀한 관계이며 치료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치료 수준이 달라진다”고 전제했다.
2023년 천명선 교수팀이 최근 1년 내에 동물진료 의뢰 경험이 있는 반려동물 보호자 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동물의료 서비스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수의사나 학생들의 걱정과는 달리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는 셈이다.
다만 불만사항에서는 진료비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진료비 자체가 비싸다는 인식 외에도 청구 과정의 불확실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았다.
최 연구원은 “고객이 수의사에 거는 기대에서 ‘동물을 잘 치료하는 것’은 기본값”이라며 “고객은 동물의 상태가 어떠한 지, 어떤 치료를 받는지, 예상되는 비용은 얼마인지, 내 재정상황에 적절한 치료법인지 여부를 수의사와 논의하고 싶어한다”며 고객과의 의사소통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보호자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고,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사전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서명이나 녹음 여부를 떠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수의사와 보호자가 공동의 의사결정을 내렸는지가 핵심이다.
최 연구원은 “사전동의는 수의사와 환자, 보호자 모두를 보호한다”고 강조했다. 보호자가 선호하지만 해당 환자에게는 맞지 않는 치료나 검사를 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예상치 못한 비용부담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한다. 치료 진행에 대한 고객의 동의를 입증함으로써 추후 고객의 불만이나 비용지불문제로부터 수의사를 보호한다.
사전동의의 상당 부분은 비용과 연관된다. 최 연구원은 “내원 당일 지불해야 할 단기적 비용뿐만 아니라 치료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소요될 비용에 대한 예측치도 설명하고, 어떤 고객이 지불할 지 책임자도 확인해야 한다”며 “비용을 거론하는 것이 껄끄러울 수 있지만, (비용은) 수의사-보호자-동물 관계(VCPR)를 종료시킬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환자별로 어떤 검사나 치료가 요구되는지, 그에 따른 비용이 얼마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수의사인만큼 상세히 설명하여 고객의 자율성과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자에게 지시할 것인가, 의논할 것인가
근거기반의료에 보호자 상황을 더한 ‘맥락화된 의료’ 중요성 커져
주설아 박사는 수의사가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돌봄 부담, 반려동물과의 관계 등 보호자의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지목했다.
진료의 성격이나 보호자의 상황 등을 함께 감안하여 순응(compliance)을 요구할 것인지, 준수(adherence)를 이끌어낼 것인지 접근법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정해진 처방을 지시하고 보호자가 따르길 요구하는 ‘순응’은 광견병 백신과 같이 법규나 공중보건과 연관된 문제에서 더 적합하다. 반면 보호자와 치료계획을 논의하면서 돌봄을 위한 동기부여를 이끌어내는 준수(adherence)는 장기관리가 필수적인 만성질환이나 난치병에서 더 중요해진다.
가령 환자에게 가장 좋다는 이유만으로 맞벌이 부부 보호자에게 하루 6회 투여해야 하는 안약을 처방하고 순응을 요구한다면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준수할 수 있는 투약계획을 고객과 함께 정하는 편이 낫다.
주 박사는 “순응은 나쁘고 준수는 좋다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며 반려동물 의료에서도 맥락화된 의료(contextualized care)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주목했다.
이상적인 표준 의료(Golden standard of care)는 모든 환자에 적용 가능하지도 않고 ‘해주지 못했다’는 보호자·수의사의 죄책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지목하면서다.
보호자의 재정적 한계나 간병 여력, 환자의 삶의 질과 같은 맥락을 근거기반의료와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유진 연구원은 “수의사의 제안에 고객이 잘 따라오지 않으면 답답할 수도 있지만 ‘동물의 건강’이라는 목표는 같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며 “VCPR 속에서 공동의 이익 균형점을 찾는 것이 수의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