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는 반려동물을 진단 및 치료하는 과정에서 반려동물의 생명과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업무 특성상 수의사는 반려동물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할 ‘주의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수의사가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의료행위의 본질적 특수성 때문이다.
의사의 주의의무 기준에 대하여 대법원은 ‘임상의학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을 기준으로 하되, 그러한 의료수준은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으로 파악되어야 하고, 해당의사나 의료기관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여서는 아니 되나, 진료환경 및 조건이나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은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수의사의 주의의무도 의사의 주의의무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위 판례를 기준으로 수의사의 주의의무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의료사고에서 수의사의 주의의무를 판단하는 기준은 해당 진료가 이루어질 당시 임상의학 실천에 있어서의 일반적 의료수준에 있다. 병리학적 엄밀성이 요구되는 학문적 의학 수준까지 요구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의료사고 당시 어떠한 의료지식이나 의료기술이 특수한 개인이나 병원에만 알려져 있었다면, 해당 지식과 기술은 의료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수의사는 수의사법 34조(연수교육)에 의한 새로운 수의학 지식 및 기술을 배워야 할 연찬(硏鑽)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의사의 주의의무를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최신의 의료정보와 기술을 습득한 상태로서의 의료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의료사고 당시 의료관행을 그대로 따랐다는 이유만으로는 과실이 없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관행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의료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규범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일종의 ‘악습’에 해당된다면 주의의무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의료관행이 형성되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기 마련이므로, 해당 의료관행이 규범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다음으로 1년차나 낮은 연차의 수의사들일 경우 주의의무가 감경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임상수의사는 직급 및 지위에 따라 대학교수, 원장수의사, 진료수의사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특히 진료수의사 중 갓 임상에 종사하기 시작한 1년차 진료수의사의 주의의무가 문제된다.
1년차 진료수의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대학교수나 원장수의사의 지도 및 감독을 받아 의료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판단 하에 의료행위를 한 경우라 하더라도 주의의무가 특별히 감경되지는 않는다.
이는 반려동물 소유주의 임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분업적 협력을 하는 경우에 있어 주의의무는 어떨까.
임상수의학이 점점 발전하고 동물병원이 대형화 되면서 진료과목도 세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의사들은 이제 필수적으로 동료수의사, 수의테크니션(간호사), 임상병리사 등과 분업과 협력을 통해 반려동물을 진료하고 있다.
분업적 협력은 분업을 담당하는 각자가 서로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여기서 ‘신뢰의 원칙’이 문제된다.
‘신뢰의 원칙’이란 주의의무가 어느 범위까지 미치는지에 대한 한계를 확정하는 원칙이다. 즉, 스스로 주의의무를 다한 자는 업무분담을 하는 다른 자가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것까지 예견하고 방어조치를 취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수의사와 수의사의 경우 신뢰의 원칙은 수직적 지휘감독 관계인지 수평적 협업관계인지에 따라 적용이 다르다.
대학교수와 소속 수의사의 경우와 같이 수직적 지휘․감독 관계의 경우 원칙적으로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진료과목의 책임자는 진료과목 내에서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진료행위에 관하여 지휘․감독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수의사와 간호테크니션, 수의사와 기타 의료행위보조자의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이에 반해 같은 동물병원에서 진료과목을 달리하지만 수평적 협의진료를 하는 수의사들 사이에는 신뢰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 경우 동료 수의사의 주의의무 위반 위험성을 예견하여 방어적으로 진료할 필요 없이 상대방을 신뢰하면 족한 것이다.
쉽게 말해 내과 담당 수의사가 진료 중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고 판단된 환자를 외과에 의뢰하는 경우, 수술 중 발생한 과실에 대해 내과 담당 수의사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외과 진료에 관한 주의의무는 해당 외과 담당 수의사에게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수의사가 진료를 함에 있어 어느 정도의 ‘재량성’을 가지고 있을까?
수의사의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또한 질병의 진행과 경과의 예측은 곤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의사의 의료행위는 항상 치료방법의 수정 내지 변경의 필요성이 엄존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바로 수의사의 ‘재량성’ 문제이다.
수의사는 진료를 함에 있어 반려동물의 상황과 당시의 의료 수준 그리고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따라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조치 중에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각 수의사의 재량에 달려 있다.
이때 그 선택의 결과만을 놓고 ‘가능했던 몇 가지 조치 중 어떤 선택은 정당하고 다른 선택은 과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이러한 수의사의 재량권이 무한하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한계가 있다.
특히 재량권의 일탈 또는 남용행위에 대하여는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수의사가 재량에 의해 치료방법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해당 치료법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았거나 수의학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방법일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수의사의 주의의무 판단기준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다음 칼럼에서는 수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이 실제로 인정된 판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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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권오승, “의료과오와 의사의 주의의무”, 민법판례연구 Ⅳ.
김만오, “의료과오에 관한 판례의 동향”, 민사법학 27호, 한국사법행정학회.
최재천, 박영호, “의료과실과 의료소송”, 육법사.
이창형, “의료과실의 의미와 판단기준”. 실무법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