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을 진단 및 치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과실에 대한 손해배상의무가 있다는 것은 지난 2회의 칼럼을 통해 살펴봤다.
그렇다면 이번 칼럼에서는 수의사의 의료과실이 실제로 인정된 판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법원이 수의사의 어떠한 의료과실을 인정하였는지, 손해배상의 금액은 어떠한지 등에 대하여 검토해 보자.
우리나라에도 의료과실을 이유로 수의사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사례가 존재한다.
먼저 수의사가 반려견의 방광염 및 방광결석을 진단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반려견이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과실을 인정한 판결이 있다.
해당 판례에서 법원은 ①반려견에게 혈뇨, 빈뇨 등의 증상이 있었고, 뇨단백 수치가 pH8이었음에도 뇨침사검사 및 소변배양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과실, ②반려견에 대한 초음파검사상 슬러지가 관찰되었음에도 방광벽의 두께를 측정하지 않아 방광염의 발병을 진단하지 못한 과실, ③방광염 및 방광결석에 대하여 부적절한 처방을 한 과실 등을 인정했다.
위의 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 액수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수의사가 반려견 소유주에게 약 830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법원이 반려견과 반려견 소유주의 정신적 유대관계를 충분히 인정하고, 이를 반려동물의 치료비와 위자료를 산정하는데 있어 고려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큰 판결이다.
이 외에도 반려견의 다리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에서 고정 핀의 위치 등이 잘못되었다는 과실로 반려견 소유주에게 250만 원을 지급을 명한 부산지방법원의 판결도 있었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 수의사의 의료과실을 인정한 판례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일본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수의사의 의료과실을 이유로 약 316만엔(약 3,000만 원)의 지급을 선고한 판결이다.
해당 사건에서 수의료계약 체결 시 수의사의 사기행위가 있었고, 수의사가 동물에 대해 상해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수의사에게 이례적으로 고액의 손해배상을 명한 것이다.
수의사는 이 사건으로 3개월의 업무정지처분까지 받았다.
수의사가 당뇨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인슐린을 늦게 투여한 과실”을 인정한 판결도 있다.
법원은 수의사가 반려견을 진료하는 과정에서 당뇨병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진료개시단계부터 인슐린을 투여하지 않은 과실을 인정했다. 나아가 법원은 수의사의 과실과 반려견의 죽음 사이에 상당인과관계(어떠한 행위에서 특정한 경과가 생기리라고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관계 · 편집자주)까지 인정했다.
결국, 법원은 수의사에게 140만 엔(약 1,300만 원)을 배상할 것을 명하였다. 140만 엔에는 재산적 손해 80만 엔과 위자료 60만 엔이 포함되어 있었다.
반려견의 제왕절개수술에서 반려견의 몸 속에 넣었던 거즈를 수거하지 않아 반려견이 복막염 및 패혈증으로 죽은 사안도 있다.
당시 일본 법원은 ‘과실의 추정의 법리’(반려동물의 손해가 수의사의 과실 없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경우, 수의사의 반증이 없는 한, 반려동물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수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을 추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적용하여 수의사의 과실을 인정하면서 재산적 손해 및 위자료를 인정하였다.
한편, 고양이에 대한 판결도 있다.
해당 사건에서 수의사는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좌우 쌍방의 요관을 난소동맥과 함께 잘못 결찰했고, 결국 이로 인해 고양이는 죽게 됐다.
일본 법원은 수의사의 과실을 인정하여 반려동물 소유주에게 약 90만 엔(약 900만 원)의 배상을 명하였다. 90만 엔은 재산적 손해 50만 엔, 위자료 20만 엔, 변호사 비용 20만 엔 등이 합하여 산출된 금액이었다.
일반적으로 수의사가 반려동물에 대한 수술을 진행할 경우, 수술실의 밀실성으로 인해 수의사의 기술적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하지만 위 판결은 수술 후의 상세한 관찰과 기록, 해부조직표본의 존재 등에 의해 수의사의 수술상 과실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안이다.
수의사의 전원의무 위반이 인정된 판결도 있다.
수의사는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동물병원이 보유한 시설, 장비, 인력, 기술 등의 부족으로 정상적인 진료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수의사는 고도의 시설 및 장비, 전문적인 수의사 등을 갖춘 동물병원으로 지체 없이 진료를 의뢰할 의무를 가진다.
이를 수의사의 ‘전원의무’라 하며, 수의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전원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이 인정될 수 있다.
물론 전원의무는 수의사가 반려동물 소유주에게 상급의료기관으로 전원할 것을 권유하여 간단하게 벗어날 수 있다.
전원을 권유하였다면 그 자체로 수의사로서 진료상 의무를 다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반려동물 소유주가 이를 따르지 않아 증세가 악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수의사에게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법원은 수의사에게 전원의무가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
해당 사건에서 한 소형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40도가 넘는 고열증상을 보이고 면역이상이 의심되는 내원 반려견에 대해,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고 소유주에게 고차의료기관으로의 전원을 권유해야 했음에도 이를 약 1주일간 이행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반려견에게는 폐렴과 파종성혈관내응고증후군(DIC)이 발생했고, 법원은 해당 수의사에게 전원의무 위반을 이유로 위자료 20만 엔(약 200만원)을 인정했다.
지금까지 수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에 대하여 살펴보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하여 법원이 인정한 의료과실과 손해배상의 범위를 알아보았다.
다음 칼럼에서는 많은 수의사들이 고민하는 ‘설명의무’에 대하여 알아보자.
※참고문헌
최재천, 박영호, “의료과실과 의료소송”, 육법사.
이재열, “응급환자 전원에 대한 판례의 태도”, 의료법학
김민동, “수의사의 애완동물 수의료과오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