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여 전 데일리벳의 제안을 받고 좀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보호자와 수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칼럼을 써달라는 제안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밀접하지만 또 이질적일 수 있는 두 집단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이 참 막연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주제로 생각한 것이 ‘고양이 친화병원’이다.
학문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보호자는 물론 수의사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이 될 수 있는 토픽이기 때문이다.
15마리 반려동물의 보호자였던 때를 지나 수의사가 된지도 10년이 넘었다. 과거 보호자였던 시절, ‘고양이는 작은 개’라는 쉬운 생각이 팽배했던 우리 사회에서 수의사는 고양이 보호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였던 게 사실이었다.
본인도 이러한 부분을 인지했기에 ‘수의사 됨’이란 우선적으로 학문적으로 무장되어야 있어야 하며, 이를 생명을 다루는 수의사의 기본적인 요건으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물론 참으로 맞는 말이며, 아직도 공감하고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학문적인 소양과 실전 경험을 쌓아가며 외부 강의도 진행했었지만, ‘작은 개가 아닌 고양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본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기 시작했다.
고양이 친화병원 시작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개와는 다른 고양이를 인지하는 것이다. 이는 고양이를 위한 ‘ㄱ’부터 ‘ㅎ’까지를 실천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본 칼럼은 ‘고양이 친화병원’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을 짚어가며 소개하고, 본성적으로 개와는 다른, ‘작은 개가 아닌 고양이’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보호자와 수의사 서로에게 좀더 바람직한 ‘고양이 반려 문화’를 정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고양이 친화병원 정착을 위한 여러 제도, 여러 전문집단들이 있다. 앞으로 소개하는 고양이 친화병원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이들이 공유하는 개념 위에, 한국적인 정서와 본인의 경험을 더해서 전달하고자 한다.
과거 보호자나 수의사들이 고양이에 대해 알았던 부분은 ‘작은 개같지만 독립적이어서 알아서 잘 지내지만, 한번 제대로 화나면 겉잡을 수 없이 돌변하며, 심지어 보호자도 다칠 수 있다’라는 것 정도였다.
또한 ‘사람 손을 타지 않는데 보호자가 고양이와 친밀한 교감은 나눌 수 있는가?’ ‘수의사로서 포악하게 변할 수도 있는 ‘공격자’인 고양이들을 어떻게 제압할 수 있을까?’ 등을 문제로 삼았다.
수의사들은 고양이의 예민함에 걸맞은 속전속결의 제압, 치고 빠지기를 잘하는 사람을 능력 있는 수의사로 봤다. ‘강압적’으로 고양이들을 잘 제압하는 보정법을 선 보이는 것이 ‘경험 있는’ 수의사의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라도 포악해질 수 있는 그들에게 공격당함을 두려워해 항상 노심초사하며 전전긍긍했던 모습도 있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하였으며 현재는 달라진 부분이 있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은 칼럼의 시작으로 고양이친화병원의 첫 번째 컨셉, “처음 손을 잡듯이 사랑하라”라는 마음가짐을 말하고자 한다.
뜬금 없는 말이라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아마 독자들은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의 연애 경험은 있을 것이다. 과거지사이나 한 번 돌이켜 생각해 보자. 처음 이성의 손을 잡았던 순간을 말이다.
수백 가지 생각이 교차하였을 것이고 수만 번 망설였을 것이다. ‘이 사람도 좋아할까? 혹시 뿌리치면 어떡하지? 자연스럽게 해야 하나 아니면 좀 터프한 모습을 보여줄까?’ 등등.
보호자로서 아이를 접하게 되는 순간이나 아니면 수의사로서 아이들을 진료하는 순간, 우리가 그들에게 접근하는 태도는 바로 ‘처음 손잡는 순간’과 동일한 마음가짐, 조심스러움과 배려가 필요하다.
이성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연애하듯이 고양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배려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게 가능해지고 그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조심스러움, 인내, 충분한 시간이 항상 고양이를 대면할 때 바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다.
매사에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즐기는 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진정으로 사랑해서 노력하는 자이다.
앞으로 조심스럽게 고양이와 연애를 해보라. 연애의 대상으로 그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어쩌면 인간보다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