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찬 변호사의 법률칼럼18]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대하여

수의사법 제11조, 제32조, 제41조, 동법 시행령 제20조의 2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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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에게도 도저히 진료를 계속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는 동물이나 동물의 소유자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고, 수의사 개인의 건강상 이유나 동물병원의 사정 등에 기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수의사법 제11조는 ‘진료의 거부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수의사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동물 진료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법 제41조). 게다가 1년 이내의 기간 동안 수의사 면허가 정지될 수도 있다(법 제32조, 시행령 제20조의 2).

그렇다면 수의사가 동물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란 어떠한 경우를 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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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수의사와 동물 소유자 사이에 체결되는 ‘수의료계약’의 형태를 살펴보자.

동물 소유자가 수의사에게 해당 동물의 진료를 맡기게 되면, 동물 소유자와 수의사는 민법상 ‘위임’ 내지는 ‘준위임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수의사에게는 주의의무, 설명의무 등 여러 위임계약상 의무가 생긴다(이에 대해서는 칼럼 3~7편을 참고해주세요보러가기).

문제는 수의사법이 이러한 위임계약상 의무를 넘어선 윤리적 의무를 법적인 의무로 구체화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수의사법 제11조가 그 대표적인 예다. 수의사가 동물의 진료를 시작할 때 가지는 윤리적 의무인 ‘진료인수의무’를 법적인 의무로 규정한 것이다.

 

수의사법에서 진료인수의무를 규정한 근거로는 먼저 ‘수의사의 진료독점으로 인한 사회적 의무’를 들 수 있다.

일부 예외적인 경우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수의사 아닌 자의 진료행위는 무면허 진료행위로 처벌된다.

때문에 동물 진료에 관해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수의사가 진료인수를 거절하는 것은 자신의 지위에 대한 남용이라는 것이다.

이를 ‘독점지위 이용금지(獨占地位 利用禁地)의 원칙’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다음 근거로는 수의사의 ‘법적인 의무’를 들 수 있겠다.

수의사법, 동물보호법 등은 수의사에게 ‘동물의 건강증진’에 대한 핵심적 역할을 부여한다. 그리고 가축전염병예방법, 공중방역수의사에 관한 법률 등은 수의사에게 ‘가축전염병 예방, 공중위생 향상’등의 임무를 부여한다.

즉 동물 관련법에서 수의사에게 동물복지 및 가축전염병 예방 등에 대한 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수의사가 이에 대한 요청을 받았을 때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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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수의사가 진료인수 과정에서 위와 같은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이를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수의사와 동물 소유자 간에 기본적 사항이 지켜지지 않거나, 오히려 수의사가 동물을 진료하는 경우 그 진료가 동물의 건강을 해하고 축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면 이는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물론 수의사가 동물 소유자의 진료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는지에 대하여는 구체적 사안에서 전후사정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다만 수의료계약의 성격, 진료인수의무의 근거 등을 고려해볼 때 아래의 경우라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될 여지가 높다고 본다. 동물병원 운영에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①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의 부재 또는 수의사의 건강상 이유로 반려동물에 대한 치료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

② 동물병원의 인력, 의약품, 치료제 등 시설 및 인력이 부족하여 새로운 반려동물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③ 동물병원의 예약환자 진료일정으로 인하여 당일 방문 반려동물에게 타 동물병원 전원을 권유할 수밖에 없는 경우

④ 수의사가 자신이 전문적으로 진료할 수 없는 영역이거나 고난이도의 진료 및 수술을 수행할 전문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⑤ 타 동물병원이 동물에게 기 시행한 진료(투약, 시술, 수술 등) 사항을 명확히 인지할 수 없는 등 수의학적 특수성 등으로 인하여 새로운 진료가 어려운 경우

⑥ 반려동물 소유자가 수의사로서의 양심과 전문지식에 반하는 치료방법을 수의사에게 요구하는 경우

⑦ 반려동물 소유자가 수의사에 대하여 명예훼손죄, 모욕죄, 폭행죄, 업무방해죄 등에 해당할 수 있는 상황을 야기하여 수의사가 정상적인 진료행위를 진행할 수 없는 경우

⑧ 반려동물 소유자가 수의사의 지시에 불응함으로 인하여 수의사의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⑨ 수의사가 일시적 음주 또는 건강상 이유 등으로 중증 반려동물의 진료나 수술이 불가능하고, 강행할 경우 오히려 반려동물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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