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고래연구소 이영란 수의사 “수생동물에 대한 수의대 관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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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기르는 어업육성법이 공포되고 2004년부터 수산질병관리사가 배출되면서, 수생동물 수의사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수생동물에 관심이 있어도 마땅히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동물병원을 박차고 나와 해양포유류 연구와 치료에 도전한 수의사가 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이영란 수의사님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차멀미는 하지만 배멀미는 안한다'는 이영란 수의사님을 데일리벳에서 만났습니다.

이영란수의사님

Q. 수의사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 부터 동물을 좋아했는지, 어떻게 수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됐는지 알려달라.

대부분의 수의대 학생들이 그러하듯 어릴 때 부터 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요란스럽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가 병에 걸렸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꼭 수의사가 돼서 내 손으로 아픈 동물을 치료하겠다"라는 전형적인 계기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고민하면서 수의사가 '전문직'이라는 점이 멋져보였다.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Q. 대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하다. 학생 때 부터 수생동물에 관심이 있었나?

학생시절에는 건국대학교 수의학과 밴드인 '뮤직 바이러스'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을 빼면 특이한 점은 없었던 것 같다.

학생 때 수생동물 분야와 관련된 일화 같은 것은 딱히 없다. 오히려 수의과대학에 진학한 뒤 수의사 자체에 대한 흥미를 조금 잃어버렸었다. 입학 전과 달리 그렇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Q. 그렇다면 수생동물 수의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고래연구소에 근무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고래연구소에 오기 전에는 10년 가까이 동물병원 임상수의사를 했다. 내가 졸업할 당시에는 반려동물 임상이 한창 발전할 때여서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진로였다.

수생동물 수의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스쿠버다이빙 같은 해양레저스포츠에 빠지면서부터였다. 예전부터 바다 속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물병원 임상수의사로 근무하던 2000년 경, 괌으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만난 현지 동물병원 수의사와 인연이 되어 처음 해저를 접하게 됐다.

그 뒤로 해양스포츠에 빠져 살면서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채널을 즐겨보게 됐다. 영화 <그랑블루>도 좋아했고…그러면서 돌고래를 구조·치료하는 등 야생에서 활동하는 것을 너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길이 전혀 없었다.

이런 생각만 가지고 계속 동물병원에서 근무했는데, 2006년 쯤 되니까 '죽기 전에 이걸 꼭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면서 수생동물 수의사로 전업할 수 있는 길을 여기저기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8년에 서울동물원에서 근무하는 친구 수의사가 외부초청 강연에서 고래연구소 안용락 박사를 만났는데, 수생동물을 다루고 싶어하는 수의사가 있다며 나를 소개시켜줬다. "돈은 많이 못 벌겠지만 하고 싶으면 오라"는 안 박사의 말에 고래연구소를 직접 찾아가 일을 했고, 결국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하게 됐다.

고래연구소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동물병원 개업과 수생동물 수의사의 길을 두고 고민했지만, 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이영란수의사님-부검
참돌고래 부검중인 이영란수의사. 10년 가까이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로 일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동물병원 개업을 포기하고, 고래연구소를 선택했다.

Q. 고래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고래연구소의 가장 주된 업무는 우리나라 고래의 현황을 조사·파악하는 자원평가다. 우리나라에 해양포유류가 어떤 종이 얼마만큼 있는지, 또 얼마나 혼획(그물에 우연히 걸려 어획되는 것)되는지, 좌초로 인해 폐사했는지 등을 파악하고 국제포경위원회(IWC)에 보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고래에 대한 다양한 학술연구를 수행한다. 고래연구소 자체 연구도 있고, 외부 과제를 수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12개 정부기관 및 대학들과 함께 고래를 대상으로 하는 공동연구를 주도하기도 했다.

또한 유전자분석을 통한 계군분석, 혼획된 개체에 대한 구조치료 및 방류, 해양포유류 폐사 시 부검 등을 수행하고 있다.

 

채혈은 물론 내시경, 초음파 검사까지 실시

수의사로서 구조·치료 등의 일은 독립적으로 진행

Q. 고래연구소에서 이영란 수의사님이 하는 일에 대해 알려달라.

연구소가 주로 하는 자원평가 등에 같이 참여하는 동시에 수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독립적으로 하고 있다. 해양포유류 부검이나 구조·치료, 생리학적 연구는 수의사인 내가 들어온 후부터 시작된 일이다.

2011년 12월부터 통영 욕지도 앞 남해 바다에서 혼획된 상괭이(회백색의 몸길이 1.5-1.9미터의 작은 고래)를 구조·치료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해당 상괭이를 부산 아쿠아리움에 보호사육하면서 직접 치료하고 관련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멸종위기 보호종인 토종돌고래 상괭이에 대한 생리학적 기본자료가 전혀 없어서, 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시료채취 및 검사를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다. 검사할 때 마다 채혈은 물론 분기공시료, 소변, 분변 등 다양한 시료를 채취하고 내시경, 초음파 검사까지 한다.

또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작년부터 해양포유류 폐사 사유를 밝히기 위한 부검을 실시하고 있다. 각종 돌고래, 물범, 상괭이에 대한 부검을 비정기적으로 실시한다. 

작년에 구조됐다가 일주일만에 죽은 뱀머리돌고래를 부검해, 위내 이물(비닐)을 폐사원인으로 밝혀낸 적도 있다.

이영란수의사님-초음파

Q. 고래연구소에 수의사가 한 명이라고 들었는데, 장단점은?

수의사가 단 한 명이라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좋은 측면에서 보면, 내가 하는 수의학적 업무를 주변 사람이 잘 모르니 별거 아닌데 칭찬받기도 하고,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수의사가 나 혼자다보니, 연구를 할 때나 치료·부검 등을 할 때 동료수의사나 선배수의사가 없어 쉽게 의논을 하거나 도움을 주고 받을 수가 없고, 하나하나 원서를 찾아보거나 외국수의사들과 접촉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수의사라서 직업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Q. 최근 제돌이를 비롯한 불법포획 남방큰돌고래 야생방류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고래연구소에서 이와 관련해 담당하는 일은 무엇인지?

고래연구소는 개체수 추정, 등지느러미 모양을 기준으로 한 개체식별 등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정기적인 조사를 제돌이 문제가 불거지기 훨씬 전부터 수행해오고 있었다.

이번 방류프로젝트에서는 돌고래 등지느러미에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하여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다. 야생적응훈련장을 탈출한 삼팔이(D-38)가 발견된 것도 일부러 찾으러 나간 것이 아니라, 정기조사 중에 등지느러미를 관찰해서 알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해양포유류 전문기관인만큼, 국립수산과학원 이름으로 '돌고래 방류지침'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지침 중 건강관리, 질병평가, 부검 등 수의학적 파트는 내가 담당해서 작성했다.

 

Q. 수생동물 수의사로서 추가적인 공부를 위해 대학원을 다녔다고 들었다.

2009년에 고래연구소로 오면서 바로 부경대 해양생물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해 '상괭이의 성장과 성성숙'이라는 연구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대학원에서 "나이 많은 건국대 수의학과 출신 수의사가 서울에서 동물병원을 하다가 내려왔다"라는 소문이 퍼져 대학원생들 사이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 교수님들이 수업시간에 동물 얘기를 할 때 내 눈치를 보기도 하는 등 재밌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연구주제 선택부터 실험, 결론도출까지 혼자 다 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111마리 상괭이 생식기관 시료를 일일이 구해서 연구하다보니 상괭이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됐다. 부산과 여수에서 하고 있는 연구도 그렇고, 해양포유류에 대한 수의학적 지식을 지금도 꾸준히 쌓고 있다.

부경대 해양생물학과 대학원에서 들었던 수업도 좋은 경험이 됐다. 수산해양학같은 과목에서 바다의 물리적인 특징이나 해양생태계에 대한 지식을 얻었는데, 이런 지식이 수생동물 수의사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재는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병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영란수의사님-참돌고래부검

Q. 수산질병을 전담으로 다루는 수산질병관리사가 배출되는 상황에서, 수생동물수의사가 되고 싶은 수의과대학 학생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 수생동물수의사는 입지도 좁고 역할이 명확하지 못한 실정이다. 오히려 미국 등 외국에서 수생동물수의사의 역할이 어떠한지 동향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가능하다면 미국 플로리다나 하와이 등 수생동물 수의계가 발전한 곳으로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프로그램이 따로 없지만 고래연구소나 아쿠아리움, 서울대공원 등에 요청하면 견학이나 실습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수의대 학생들에게 종종 연락이 온다. 학생들이 주로 묻는 것 중에 하나가 '연봉이 얼마냐'는 것인데, 물론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수생동물수의사가 되려면 경제적인 측면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비해 수생동물수의사의 현실은 아직 열악하기 때문이다.

또 현재 수생동물수의사는 진료보다는 연구영역에서 주로 활동한다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

 

Q. 수생동물을 다루는 수의사가 매우 적다. 고래연구소 외에 또 수생동물수의사가 활동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전국에 있는 아쿠아리움은 모두 촉탁수의사를 두고 있다. 나도 울산 남구 고래생태체험관의 촉탁수의사다.

촉탁수의사는 대부분 풀타임으로 정식고용된 것이 아닌, 진료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수의사를 부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촉탁수의사로 고용되신 분들도 전문적인 수생동물수의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 제주 한화리조트 아쿠아플래닛에서 수의사 한 명을 풀타임으로 정식 채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영란수의사님-채혈
채혈중인 이영란수의사. 고래채혈은 꼬리를 통해 이뤄진다.

수의사와 수산질병관리사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길 찾아야

해양학과의 실습·견학 요청있어도 수의과대학에서는 요청없어…수의과대학의 일차적인 관심 필요

Q. 앞으로 수생동물분야에서 수의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또 이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인 변화나 수의대 커리큘럼의 변화가 있다면?

수산질병관리사 제도가 시행된지 거의 10년이 지났고, 수생동물수의사의 입지는 너무 좁은 상황이다.

수산질병관리사 문제에 대한 논쟁만 하지 말고 이제는 수의사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수의사로서 해양포유류와 같이 수산질병관리사가 하기 힘든, 조금 더 전문적인 영역을 담당하면서 협조해야 한다. 그러면서 수의사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야 할 것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수의사로서 해양포유류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도, 사회에 나와 일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아쿠아리움 등 대표적인 수생동물 사육기관에서 수의사를 뽑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단순히 진료한다는 차원을 떠나 공중보건적인 측면에서도 수의사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가축이나 반려동물의 방역, 예방, 연구 등과 관련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듯이 해양포유류의 예방, 연구에 대해서도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해양포유류 구조·치료 전문기관을 설립해 수의사들이 개체 치료를 하면서, 동시에 전염병이나 해양오염 등에 대해 연구토록 해야 한다.

수의과대학의 경우, 우선적으로 일차적인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고래연구소에서 고래해부를 할 예정이니 관심있는 학생의 참여를 바란다는 공문을 보내도 이 내용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적잖이 실망했다. 오히려 해양관련 학과에서는 학교차원의 견학이나 실습 요청이 들어오는데, 수의과대학에서는 소식이 없다.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수생동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해줬으면 한다.

또한 수생동물수의사는 단순 치료외에 예방의학, 행동풍부화 같은 측면에서 역할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모든 수생동물을 다루는 것이 수의과대학 여력 상 쉽지 않은 일임을 감안하면, 수의사로서 전문성을 살리기 쉬운 해양포유류 쪽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Q. 이영란 수의사님의 앞으로 꿈은?

수생동물수의사로서 '어떤 업적을 꼭 이뤄야지' 하는 목표는 뚜렷이 있지 않다. 이 쪽 일이 재밌고, 좋아하는 일인 만큼 앞으로도 열정을 잃지 않고 해나가고 싶다.

이영란수의사님_고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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