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처방제가 시행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동물약국이라는 큰 구멍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동물약국에서는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97개성분 중 주사용 항생제와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백신)만 처방전에 따라 판매하고, 나머지 제품은 처방전 없이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취제, 호르몬제, 기타 전문지식이 필요한 동물용 의약품 전체 항목은 물론 항생제도 주사용이 아니면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
즉, 옥시토신, PGF2a, 프로게스테론 같은 호르몬제도 처방전 없이 판매 가능하고, 아트로핀, 덱사메타손, 프레드니솔론, 피모벤단, 멜록시캄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동물용 의약품 또한 동물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판매가능하다. 부작용이 걱정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크게 걱정되는 부분은 `동물용 마취제 17개성분`이다.
현재 국내에 출시되고 있는 동물용 마취제는 총 17개성분(59개 제품)이다. 17개성분(59개 제품) 모두 수의사 처방제에 의해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으로 분류됐지만, 이 또한 동물약국에서는 처방전 없이 판매 가능하다.
결국, 동물약국에서는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중 Acepromazine, Xylazine, Medetomidine, Tiletamine+Zolazepam, Suxamethonimum 등의 `동물용 마취제 유효성분` 17종의 59개 제품을 처방전 없이 누구에게나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보호 장치는 있다.
동물약국에서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했을 경우 해당 약품에 대한 처방전과 판매기록을 3년간 보관해야 한다.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이라 하더라도, 판매기록만큼은 반드시 남겨야 한다.
농식품부는 지난 7월, 동물용 의약품 판매기록양식을 각 시·도에 공문을 통해 전달했다. 판매기록양식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은 ‘판매날짜’ ‘제조/수입업체(공급자)’ ‘제품명’ ‘판매수량’ ‘판매금액’ ‘판매처 주소’ ‘판매처 연락처’ 등이다.
결국, 동물약국개설자는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한 경우, 그 의약품을 구입한 사람의 주소, 연락처까지 기록해 그 판매기록을 3년간 보관해야 한다.
고양이 마취제 달라고 하자 정확한 제품명 되물어
정확한 제품명을 모른다고 하자 신분증 확인도 없이 주사용 아세프로마진 판매
그렇다면 동물약국들은 해당사항을 잘 지키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내 한 동물약국에 방문해 고양이 마취제를 달라고 요구해봤다. 해당 약사는 정확히 어떤 마취제를 원하는지 되묻더니, 정확한 제품명을 모른다고 하자, 주사용 아세프로마진 제품과 경구용 아세프로마진 제품을 꺼내왔다. 두 제품의 가격은 각각 4천원과 1만5천원.
주사용 아세프로마진을 달라고 하자, 약사는 “주사기는 있냐?”며 되물었고, 주사기가 없다고 하자 1cc 주사기까지 판매했다. 주사기의 가격은 100원이었다.
해당약사는 기자에게 신분증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이름, 연락처, 주소 등도 전혀 묻지 않았다. 마치 슈퍼에서 간단한 물건을 사듯 주사용 아세프로마진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업무정지 7일에 해당하는 위반행위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당 동물약국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자, 아세프로마진 외에 주사용 자일라진 제품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기자가 신분확인도 없이, 슈퍼에서 물건을 구입하듯 쉽게 구입한 아세프로마진은 인의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성분이다. 현재 국내에 판매중인 인체용 아세프로마진 의약품은 한 개도 없다.
이렇듯 아세프로마진은 사람에게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독성이나 부작용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아세프로마진은 충분히 범죄에 사용될 수 있는 제품이다.
실제 43세의 한 여성이 아세프로마진을 이용해 자살한 사례도 있다.
수의사 처방제에서 동물약은 합법적인 `구멍`
법적 가능 여부를 떠나 마취제 등 취급에 있어 전문가로서의 성찰 있어야
수의사 처방제에서 동물약국만 예외조항을 갖게 된 건, 수의사 처방제 논의 당시 약사들이 “약사는 약의 전문가이고, 동물용 의약품 오·남용의 근원은 도매상이기 때문에, 처방제에서 약국을 제외시켜 달라”고 주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의사의 처방 없는 무조건적 판매는 언제나 오·남용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마취제의 경우, 필요한 동물에게 바로 사용되지 않고, 보호자가 구매해가는 형태의 유통이 굉장히 위험하다. 구입해간 사람의 기록을 남긴다고 해도, 구입자가 나쁜 의도로 거짓말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이번 사례에서는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약품 취급에 있어 약사의 ‘안전 불감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수의사처방제에 포함된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은 그 유통과 사용에 있어 위험성과 부작용이 특히 우려되는 약품들이다.
약사계에서 주장하듯이 ‘약사가 약의 전문가이고 안전한 축산물과 동물복지를 위해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면 처방제의 근본 취지를 지켜야 한다.
수의사의 처방 없이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사용하는 일은, 그 유통경로가 도매상을 통해서든 약국을 통해서든 처방제의 취지에 맞지 않는 일이다.
현재 법적으로 동물용 마취제, 호르몬제 등을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 하더라도,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해당 제품을 동물약국에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처방전 없이 동물약국에서 임의로 판매 할 수 있도록 허용한 현 제도의 불합리 점에 대해, 약사들 스스로 제도의 불합리 점을 개선하자고 나서는 것이 ‘약을 안전하게 유통시키는’ 약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