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수의사 59% `수의사 비추`,심리고통 큰 수의사 50% 혼자 끙끙

수의사 정신건강과 웰빙 간담회 개최...국내 멘토링 프로그램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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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의 정신건강과 웰빙을 주제로 한 소규모 세미나·간담회가 2일(일) 오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개최됐다. 데일리벳이 주최한 이번 세미나에는 세계소동물수의사회(WSAVA) 수의사 웰니스 그룹 창립 회원이자 The riptide project 창립자인 비키림 학생이 강사로 나섰다.

비키림(Vicki Lim) 학생은 뉴질랜드 매시대학교 수의과대학 졸업반에 재학 중이며, 심리학을 전공한 후 수의대에 입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운영하는 The riptide project는 수의계 내부에서 멘토와 멘티를 연결해주는 프로젝트다. 약 200여명의 수의사 멘토 그룹을 카테고리(지역, 종사분야, 수의사로 일한 기간, 관심사 등)별로 구분한 뒤, 상담 요청을 받으면 가장 적절한 멘토를 연결해준다.

미국수의내과전문의(DACVIM)인 킴 힐러스 수의사도 간담회에 참가해 미국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 수의사·수의대학생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기대치보다 낮은 연봉, 긴 근무시간, 높은 스트레스 = 전 세계 수의사 공통분모

미국 수의사 59% “수의사 직업 추천 안 해”

흔히 우리나라 수의사들만 안 좋은 여건 속에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기대치보다 낮은 연봉, 상대적으로 긴 근무시간, 높은 스트레스는 전 세계 수의사들의 공통분모였다.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경우 수의대 졸업 후 처음으로 받는 연봉이 약 5천만원 수준이었으며, 미국은 약 7~8천만원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에 비해 높지만, 미국과 뉴질랜드 수의대 학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쌌다. 미국의 경우 수의대 졸업을 하면 보통 1~2억의 대출(loan)을 갖게 된다는 것이 킴 힐러스 수의사의 설명이었다. 비키림 학생 역시 뉴질랜드 수의대 등록금이 미국만큼 비싸다고 전했다.

이러한 금전적 문제(낮은 연봉, 비싼 등록금 등)는 수의사 직업에 대한 낮은 만족도로 이어진다.

실제로 머크애니멀헬스가 지난해 미국에서 진행한 조사(수의사 웰빙 연구)에 따르면, 오직 41%의 미국 수의사만 자신의 직업을 주변에 추천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내과의사(51%)나 일반 국민(70%)에 비해 낮은 수치였다.

비추천한 이유 1위는 보상문제(낮은 임금)였고, 2위는 비싼 등록금(학생 빚)과 비용 문제였다. 금전적인 이유로 수의사의 직업을 비추천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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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36%)도 순위권에 포함됐다.

한국 임상수의사 65% 주 6일 근무…12%는 주 7일 근무

주 10시간 이상 근무 비율 40%

낮은 워라벨로 대표되는 ‘삶의 질’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각하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이 실시한 2016 수의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임상수의사 10명 중 8명은 주 6일 이상 근무하고 있었다. 주 6일 근무 비율이 64.9%, 주 7일 근무 비율이 11.9%였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비율도 40%였다. 7%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응답했다.

비키림 학생의 경우 내년부터 뉴질랜드의 한 동물병원에서 일할 예정인데, 주 3.5일 근무에 주당 근무시간은 38시간이라고 했다. 킴 힐러스 수의사는 이에 대해 “미국보다 낫다”며 미국은 한국보다 약간 적은 수준이거나 비슷하게 일한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도 확인되는 수의사의 높은 자살률

심리적 고통 받는 수의사 절반은 ‘혼자 끙끙’

직업에 대한 불만족과 낮은 삶의 질은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심지어 극단적인 시도로 연결되기까지 한다.

미국과 영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의사의 자살률은 일반 국민 평균보다 4배 이상 높으며 다른 의료계열 종사자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연구자들은 “자살을 통해 사망하는 비율이 일반 대중보다 의미 있게 높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어린 수의사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났다.

노르웨이와 호주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다. 흔히 선진국으로 알려진 국가에서조차 ‘수의사의 높은 자살률’이 확인되는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 수의사 중에서도 동료 수의사의 자살을 경험한 참가자들이 있었다.

문제는 수의사들이 ‘자신의 힘듦’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크애니멀헬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는 미국 수의사 중 오로지 절반만이 치료를 받는 등 도움을 찾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수의사는 ‘혼자 끙끙’ 앓는 것이다.

킴 힐러스 수의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가뜩이나 자살률이 높은 국가”라며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자기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하고 힘들면 주변에 말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 2일 서울대에서 열린 수의사의 정신건강 세미나에서 잠시 이야기를 한 킴 힐러스 수의사. 미국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수의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동물환자를 살릴 수도 없고, 모든 보호자를 기쁘게 할 수도 없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흘려 보내라"고 조언했다.
12월 2일 서울대에서 열린 수의사의 정신건강 세미나에서 잠시 이야기를 한 킴 힐러스 수의사. 미국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수의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동물환자를 살릴 수도 없고, 모든 보호자를 기쁘게 할 수도 없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흘려보내라”고 조언했다.

콜로라도주립대학교 동물병원, 매주 1시간씩 ‘고민 토론’

우리나라 수의계에도 절실한 ‘멘토링 프로그램’

한국 상황 고려했을 때 협회·정부에서 나설 필요 있어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우선, 수의계 내부에서 이러한 고민을 서로 나누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킴 힐러스 수의사에 따르면, 콜로라도주립대학교 동물병원에서는 매주 금요일 1시간씩 ‘고민 토론’ 시간을 운영한다고 한다. 동물병원의 모든 스텝이 참여해 ‘힘들게 했던 보호자’, ‘동물의 안락사로 인한 스트레스’, ‘돈 관련 문제’ 등을 터놓고 얘기하고, 다 같이 해결 방안을 고민한다.

또한, 미국의 대형동물병원(주로 대학동물병원)에서는 사회복지사(social worker)를 고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보호자와의 문제가 생겼을 때 수의사가 모든 부담을 지고 혼자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와 수의사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함께 얘기를 나누며 문제를 풀어나간다.

킴 힐러스 수의사는 “감정을 공유하고, 슬픔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며 “사회복지사 고용은 작은 동물병원에서 하기 어렵지만, 매주 1시간씩 고민을 나누는 것은 모든 동물병원에서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협회나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비키림 학생은 “수의사 연수교육을 할 때 정신건강 교육과 자살 예방 교육을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협회 차원에서 익명으로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전문가를 연결해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수의사가 협회에 연락하면, 협회에서 공인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연결해주고 상담비용을 협회에서 부담하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가 ‘수의사 직업군이나 수의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 있다. 그러면 상담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수의사협회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수의사와 수의계에 대한 사전 교육을 시행하고 인증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반면, The riptide project처럼 정식 인증 과정이 없이 ‘자발적으로 지원한 멘토’를 ‘멘티’와 연결해주는 방법은 한국 여건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검증되지 않는 멘토에 대한 불안감, 일부 멘토에 대한 불만 등으로 멘토링 프로그램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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