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전염성복막염 신약후보물질 `GC376`을 아십니까

임상시험단계 화학물질이 국내 FIP 환자에 쓰인다..중국서 직구해 불법 자가진료 정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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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성 질환인 고양이전염성복막염(FIP)에 대한 신약후보물질 ‘GC376’이 수의사들 사이에서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 임상시험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화학물질임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국내 동물병원이 연구를 명분으로 FIP 환자치료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일부 보호자들이 GC376을 해외직구하여 자가진료에 악용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 가운데, 수의사가 직접 사용하는 것을 두고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RNA바이러스 복제를 억제하는 GC376 화학구조식
RNA바이러스 복제를 억제하는 GC376 화학구조식


바이러스 증식 억제하는 GC376..항바이러스제 활용 가능성

고양이의 장내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하면서 발생하는 FIP는 고양이의 전신에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대증요법 외에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고 치사율이 높아 고양이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질병이다.

미국 캔자스주립대 김윤정 교수팀과 UC DAVIS 닐스 페더슨 교수팀이 주목한 GC376은 RNA바이러스 복제에 필요한 단백질분해효소인 ‘3CLpro’를 억제하는 화학물질이다. FIP 바이러스의 체내 복제를 막는 항바이러스제제다.

만약 성공적으로 상용화된다면 HIV 치료제와 마찬가지 형태가 된다. 계속 투약하면서 FIP 증상발현을 억제하는 형태로 환자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페더슨·김윤정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고양이 임상 국제학술지 ‘JFMS’에 GC376의 필드 임상시험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내 FIP 환자 20마리를 대상으로 GC376을 투약한 결과 19마리에서 FIP 증상이 완화됐다.

19마리 중 13마리는 결국 재발했지만, 나머지 6마리는 논문 발표시점까지(약 1년간) 재발없이 유지되거나 재발 후에도 GC376 투약이 효과를 보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연구진은 GC376의 신약개발을 위한 준비단계에 착수했다. 하지만 신약후보물질이 정식 의약품으로 허가 받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소 수 년 이상의 유효성·안전성 평가실험이 이어져야 하는데다가 신약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에 비해 FIP 환자 시장이 크지 않다고 평가되는 점도 고비다.

닐스 페더슨, 김윤정 교수팀은 지난해 GC376의 필드 임상시험결과를 JFMS에 발표했다.
닐스 페더슨, 김윤정 교수팀은 지난해 GC376의 필드 임상시험결과를 JFMS에 발표했다.


미허가 물질의 남용인가, 죽음 앞둔 환자 위한 최후의 수단인가

GC376은 아직 의약품 허가를 받지 못한 화학물질이지만, 국내에선 이미 FIP 치료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8년부터 서울시내 몇몇 동물병원에서 GC376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양이 보호자들 사이에서도 ‘복막염 신약’으로 불리는 GC376 투약 경험이 공유되고 있다. 대형 인터넷 고양이 보호자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을 통해 투약 후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 유통되는 GC376 제품을 구매대행 형태로 직구해 자가진료에 악용하려는 정황도 포착된다.

중국 현지에서는 타오바오 등 인터넷 쇼핑몰에 GC376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중국 현지 동물병원에서는 FIP 환자 치료에 활발히 사용된다는 후문도 들린다.

중국 현지 인터넷 쇼핑몰에서 유통되고 있는 GC376
중국 현지 인터넷 쇼핑몰에서 유통되고 있는 GC376

이처럼 허가 받지 않은 화학물질을 환자 치료에 사용하는 문제를 두고 수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허가 받지 않은 화학물질을 마치 의약품인 것처럼 환자 치료에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있다. 보호자의 동의를 받고 진행한다 하더라도, 연구보다 상업적 목적에 치우쳐 투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GC376을 사용하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치료비도 고액이다. GC376의 수입원가만 g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데다가, 수주간의 장기투약과 입원치료, 각종 검사가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죽음을 앞둔 환자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위험성과 한계점을 보호자에게 분명히 고지해 동의를 받는다면, 수의사에게 허용된 전문적인 처방권 범위 안에 있다는 시각이다.

서울의 한 동물병원의 A원장은 “(FIP 환자 보호자에게) 우리 병원은 ‘신약’을 쓰지 않는다고 고지하면, 알아서 GC376을 취급하는 병원을 찾아가는 실정”이라며 “수의계 차원에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수의과대학의 임상과목 담당 B교수는 “수의사는 전문직으로서 광범위한 처방권한이 인정되는 만큼, 학술적인 근거가 충분하다면 수의사의 책임 하에 동물용의약품이 아닌 것이라도 치료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신뢰하기 어려운 중국산 제품이 유통된다거나 보호자가 자가진료에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수의사 출신인 이상민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는 “GC376과 같은 주사제를 보호자가 수의사 처방없이 직접 주사하는 행위는 수의사법상 금지된 무면허진료행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GC376을 수의사가 치료 목적으로 활용하는데 대해서는 “허가 받은 의약품이 아니더라도 수의사가 전문성에 근거해 처방했다면 수의사법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또다른 동물병원의 C원장은 “워낙 FIP가 난치성 질환이라 ‘적법한 절차를 준수한다’는 전제 하에 적용해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라면서 “해외에서도 정식 의약품이 아닌 만큼 공식적인 임상시험의 형태를 갖춰야 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GC376 임상시험 하고 싶다면..’검역본부 절차 거쳐야’

그렇다면 일선 동물병원에서 FIP 치료목적으로 GC376을 투약하는 것을 임상시험이라고 볼 수 있을까.

현행 동물용의약품등 취급규칙은 동물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하려는 자로 하여금 임상시험계획을 수립해 검역본부장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임상시험용 시약을 수입하는데도 검역본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국내 동물병원에서 유통되는 GC376 중 일부는 국내 수의과대학과 연계해 검역본부 승인을 거쳐 정식 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역본부 관계자 E씨는 “(해당 건은) 당초 제출했던 계획과 사용 실태 사이에 다른 점이 포착돼 내부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향후에는 수입관리를 보다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추후 GC376에 대한 임상시험의 길도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E씨는 “국내 FIP 환자를 대상으로 GC376을 시험하고자 한다면 검역본부에 해당 임상시험계획과 시약수입허가신청을 제출해달라”면서도 “임상시험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 승인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신중히 답했다.

다만 개별 동물병원이 단독으로 ‘임상시험하겠다’며 수입을 요청하는 시나리오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임상시험을 빙자한 수익 목적의 치료적 활용을 우려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시내 동물병원의 D원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소한의 안정성 평가에 기반한 임상시험 형태를 취하고, 보호자 동의의 형태나 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 하에서 실험적으로 적용하고, 그 결과는 수의학계에 공유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며 “허가도 나지 않은 시약을 치료 목적에 치우쳐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GC376이 아직 연구단계의 화학물질인만큼 적절한 용법이 무엇인지, 부작용 위험이 없는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용된다면 오히려 좋은 약이 탄생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D 원장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약후보물질이 일부 병원의 수익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곤란하다”며 “앞으로 점점 발전할 수의학의 신기술이나 신약들도, (GC376처럼) 국내에는 왜곡된 형태로 도입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개별환자(사람)를 대상으로 한 응급임상 절차. 담당 전문의의 판단과 식약처 승인 하에 진행되며, 그 결과를 임상시험기관과 당국이 공유한다 (자료 : 식품의약품안전처)
개별환자(사람)를 대상으로 한 응급임상 절차.
담당 전문의의 판단과 식약처 승인 하에 진행되며, 그 결과를 임상시험기관과 당국이 공유한다
(자료 : 식품의약품안전처)

사람 말기암 환자는 ‘응급임상’으로 임상시험용의약품 활용

의료계에서는 임상시험 중인 후보물질이라 하더라도 응급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승인제도를 갖추고 있다. 일명 ‘응급임상’이라고 불리는 ‘임상시험용의약품 응급상황 사용승인 제도’는 2002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운영하고 있다.

식약처로부터 유효성, 안전성을 완전히 입증받지 못한 물질이라 하더라도, 해당 물질이 치료 효능을 보이는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말기 암환자처럼 더 이상 치료방법을 찾기 어려운 경우로 한정하고, 전문의의 판단 하에 승인받은 병원에서만 투약이 가능하다. 식약처에 따르면, 한 해 400~800건이 응급임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식약처는 올해 응급임상 승인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고, 해외의 임상시험용의약품도 치료목적 사용을 허용하는 등 제도 확대를 추진할 방침이다.

FIP도 고양이에게는 말기 암이나 다름없는 치명적인 난치성 질환이다.

허가 받지 않은 의약품의 남용은 막되, 치료방법이 없어 발을 구르는 보호자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양이전염성복막염 신약후보물질 `GC376`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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