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원 수의사(프리랜서 기자, 사진)의 기고문 3개를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1. FASAVA 2019 참관기(클릭) 2. 아카사카동물병원 방문기(클릭) 3. TRVA 응급전문동물병원 방문기 중 마지막 기고문(TRVA 응급전문동물병원 방문기 및 나카무라 아츠시 원장 인터뷰)를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새벽 4시 반 응급콜이 울렸다. 조용하던 병원이 분주해진다. 환자가 도착하자 스텝들은 능숙하게 기관튜브를 삽입하고 심장마사지를 시작했다. 환자 모니터에는 ECG와 spO2, etCO2가 표시되었다.
환자는 수년 전 종양 제거 수술을 했으나 종양이 재발하고 최근 경련 빈도가 늘어 중추신경계로 종양 전이가 의심되는 환자였다. 오늘도 20여 분간 경련이 일어난 뒤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것을 보고 응급병원에 내원했다는 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응급 약물을 주사하고 심장마사지를 계속하는 가운데 심장 초음파와 ECG로 환자의 반응을 확인했지만 안타깝게도 환자의 심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비록 이 환자는 살아나지 못했지만 8명의 스텝이 재빠르게 환자를 처치하고 모니터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얼마나 숙련된 팀인지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었다.
TRVA 야간응급동물의료센터 나카무라 아츠시 원장은 “보통 체내 순환이 멈추면 조직내 이산화탄소 운반이 안 되기 때문에 etCO2가 매우 낮게 나온다”며 “이 환자의 경우 etCO2가 높게 나온 것을 봤을 때 경련 과정에서 기도 폐색이 발생하고 시간이 경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병원 한쪽 처치대에는 심인성 폐수종으로 심정지가 왔던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전날 폐수종으로 심정지가 왔다가 응급심폐소생술을 통해 심박이 돌아왔지만 심한 심폐기능 저하로 인공양압환기를 진행 중인 환자였다. 처치대 옆에는 인공호흡기와 환자 상태를 체크하는 모니터 센서와 환자 상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약물 주사가 어지럽게 얽혀있었다. 마치 사람 중환자실과 같은 모습이었다.
나카무라 원장은 “처음 임상을 시작했을 때 폐수종으로 내원한 환자를 진료했으나 상태가 악화되어 각혈과 함께 호흡곤란이 발생해 환자를 잃었던 경험이 있다”며 “당시 이뇨제와 산소 처치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분명 사람 병원이었다면 그다음 단계가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TRVA 야간응급동물의료센터는 도쿄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응급전문 동물병원이다. 보통 다른 병원들이 문을 닫는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야간 응급진료를 담당한다.
몇 년 전부터는 상태가 심각한 환자 관리를 위해 주간 진료팀도 운영하고 있다. 응급 및 중환자 집중관리 전문 병원으로 점차 알려져 도쿄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찾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TRVA 동물의료센터 원장이자 일본 응급수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나카무라 아츠시 원장과 인터뷰 했다.
Q. TRVA 동물의료센터는 일반적인 동물병원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의 병원이라고 알고 있다. 병원에 대해 소개해달라.
TRVA 병원은 세타가야구 40여 개 동물병원이 합작하여 2011년에 설립한 사단법인 형태의 동물병원이다. 10여 년 전 일본에도 기업형태의 동물병원이 도입되려는 시도가 있었고 수의사들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그 대응과정 중에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가 개인 병원이 진료하는 시간이 아닌 휴일이나 야간 진료를 전담해서 맡을 의료기관을 공동으로 설립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각 병원이 자본을 출자하여 법인을 설립하고 병원을 담당할 수의사를 모집했다.
당시 응급의학에 관심이 있어 지원했고 지금까지 병원을 맡고 있다.
Q. 회원 병원들에는 어떤 혜택이 있나. 또 병원 수익은 어떻게 사용되나.
회원 병원의 진료시간 이외에 발생하는 접종 부작용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고 있다. 또한, 회원 병원 수의사에 대한 세미나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병원 휴일이나 야간에 환자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병원이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TRVA 병원은 주식회사와는 다른 구조로 회원 병원들의 출자로 설립된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병원 수익은 모두 병원 시설이나 장비, 인력 그리고 재단 사업에 사용된다. 초기에 출자했던 동물병원 원장들이 돌아가면서 이사회 임원으로 활동하여 병원의 사업 방향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Q. 10년 가까이 야간응급전문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처음 몇 년간은 계속해서 적자였지만 이후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처음엔 수의사 2명, 보조직원 2명으로 시작됐다. 지금은 수의사, 테크니션, 행정직원까지 포함해 30여 명의 인원으로 규모가 늘어났다. 야간에는 보통 수의사 4명, 테크니션 4~5명 정도가 상주하고 주간에도 입원환자와 주간 응급진료를 담당하는 팀이 따로 있다.
야간에 근무하는 것은 이제 적응해서 그다지 힘들지 않은 것 같다. 보통 1주일에 4일 정도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엔 강연과 휴식을 하고 있다. 제일 어려운 부분은 병원이 성장하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다 보니 신경 써야 할 것이 늘어난 점이다. 구성원 간 의사소통이나 환자 관리 인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때문에 몇 년 전부터는 경영과 관련해서도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
Q. 응급수의사이자 원장으로서 보람을 느낀 순간은
응급 의료는 곧 목숨을 구하는 의료이다. 직원들 모두가 살릴 수 있는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매일 노력하고 있다. 보호자들이 ‘그래도 병원에 데려와서 다행’이라고 말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물론 병원을 찾아오는 90%의 케이스가 좋게 해결되더라도 10%는 힘든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도 결국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이런 시스템이나 응급의학에 대한 지식이 널리 퍼진다면 급병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환자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일본에서 처음 응급수의학회를 만들고 수의사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고 들었다.
응급전문 병원을 운영하면서 더욱더 응급의학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초기에만 해도 수의계 전반에 응급의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한 내용과 케이스를 가지고 세미나를 열면 항상 강의실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좋은 호응을 받았다.
스포츠 비인기 종목에서 스타 플레이어가 나오면 그 종목이 관심을 받는 것처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개인이 노력해서 ‘일점돌파’를 해내면 그 뒤로 사회의 저변이 크게 확장된다. 앞으로도 지금 활동 중인 응급수의학회를 통해 일본 응급 의료의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Q.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후배 수의사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일을 120%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탁받은 일을 120% 해내게 되면 반드시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요즘에는 다양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여러 가지를 계획하고 준비해 나가기는 쉬워졌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계획한 대로만 움직인다면 계획한 것 이상의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도전해서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120%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혁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병원에 머무는 며칠 동안 다양한 케이스를 살펴볼 수 있었다. 설사, 구토, 이물섭취, 방광염, 발작, 심장응급, 급성 신부전 등 내원하는 내용과 그것을 설명하는 수의사의 모습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수의사들뿐 아니라 병원 직원들의 단단한 팀워크와 아주 안 좋은 상태의 환자도 여러 약물과 장비를 사용하여 끝까지 살리려는 모습이었다.
나카무라 원장은 “작은 생명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보호자와 환자를 위해 동물병원이 더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는 보호자와 노력하는 수의사가 수의학이 발전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