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연합 모델, 시대적 흐름인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인가

벳아너스 등장으로 보는 동물병원 연합 모델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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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열린 벳아너스 출범식

‘믿을 수 있는 동물병원 그룹’을 내세운 벳아너스(VET HONORS)가 정식 출범했습니다. 공동 브랜드를 활용해 공동 마케팅을 하고, 인사관리, 직원 CS교육, 세무·회계 컨설팅 등을 지원함으로써 회원 동물병원이 학술적 성장과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저는 MBA 시절 <동물병원 네트워크 전략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라는 연구를 통해 병·의원 네트워크가 무엇인지, 그리고 올바른 동물병원 네트워크 모델은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연구 내용과 최근 업계 상황을 바탕으로 동물병원 연합 모델을 어떻게 봐야 할지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공유하고자 적는 글이니, 독자분들도 댓글을 통해 편하게 의견을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병원 연합 모델의 등장 배경

병원 경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병·의원 연합은 이미 의료계에서는 잘 알려진 모델입니다(연합, 네트워크, 연맹, 동맹 등 다양한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되는데, 이 글에서는 ‘연합’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연합은 조직간 연계·통합 유형의 하나로 내부 구성원들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다른 조직에 대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의료계의 경우, 의료인력의 과잉 공급, 시장 개방, 포괄수가제 도입 및 비급여 진료비 공개 등 규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환자·보호자들의 기대 수준 향상과 욕구 증가 등으로 병·의원의 경영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요즘 동물의료계가 처한 현실과 비슷하죠?).

의료계에서는 이런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1992년 예치과를 선두로 병원 연합 모델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병·의원 연합은 공동 브랜드를 사용하고, 공동 브랜드를 통한 광고 효과 이익을 얻음으로써 병원에 대한 고객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고가 의료기기 등을 공유·공동 구매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하며, 공동 컨설팅 회사를 통한 아웃소싱, 자체 학술 모임과 세미나 개최를 통한 지식과 노하우 고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개발 등을 통한 차별화 전략을 취합니다.

병원 연합의 장단점

의료계에서 병원 연합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입니다. 한 연구에서 연합 모델에 가입한 병원 중 회원자격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병원이 92%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병·의원보다 경영성과에 대한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높았기 때문이죠.

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가입비와 매월 회비를 내야 합니다. 장점이 없다면 가입할 이유도 없겠죠. 그렇다면, 병원 연합 모델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병원 연합의 대표적인 장점을 5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장점 1.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절감

병원 연합의 가장 큰 장점은 연합을 구축하는 것 자체로 여러 가지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연합에 참여한 병원이 함께 의약품, 의약외품, 소모품, 의료기기를 공동구매함으로써 직접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외부검사 의뢰비용도 줄어들 수 있죠. 단독 개원보다 연합에 참여했을 때 병원 운영비가 12% 이상 감소했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용 절감 효과만으로도 연합에 참여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만, 병원의 비용 절감은 역으로 업체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동물병원 연합 모델이 앞으로 계속 등장할 예정인데요, 연합마다 업체에 낮은 단가를 요구한다면 결국 동물병원과 거래하는 업체들은 점점 더 낮은 단가를 제시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동물병원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지만, (연합 모델이 동물의료 시장의 전체 파이를 키우지 못한다면) 업체들의 수익성은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동물의료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점 2. 브랜드 이미지 활용

병원 연합 모델은 공동의 브랜드를 활용합니다. 따라서, 브랜드 파워가 커질수록 병원에 대한 신뢰성과 접근성도 크게 향상됩니다.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한 병원 연합은 브랜드만으로 양질의 진료·수준 높은 서비스를 연상시키며, 환자유치는 물론, 가격 저항을 낮춰줍니다.

장점 3. 경영 도움 및 직원 교육

연합에 가입한 병원은 단독 개원 때 겪어야 하는 경영 관련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연합들은 자신들이 가진 경쟁력 있는 운영 시스템을 통해 인력 채용, 직원 교육, 회계·세무·노무 컨설팅 등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각 회원 병원의 어려움이 줄고 경영이 합리화될 수 있습니다.

장점 4. 공동 홍보

병원 연합은 브랜드 차원에서 종합적인 홍보를 시행합니다. 따라서, 하나의 병원이 달성할 수 없는 공동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대규모 광고·홍보, 봉사활동 등은 브랜드와 각 병원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특히, 브랜드 차원에서 제품을 출시하고 제품에 대한 홍보·마케팅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연합에 가입한 병원들은 더욱 큰 이득을 얻게 됩니다.

함소아 한의원 홈페이지

대표적인 한의원 연합 모델인 ‘함소아 한의원’은 현재 미국, 중국을 포함해 국내외 73개 지점을 확보했습니다. 함소아 브랜드를 딴 한약도 다양하게 출시되어 있죠.

차앤박피부과 역시 전국 24개 지점을 확보하고 있으며, CNP 브랜드를 활용해 다양한 화장품을 출시했습니다.

동물병원 연합 모델에서는 브랜드 차원에서 맞춤형 사료, 영양제, 의약외품 등을 출시할 수 있을 겁니다.

장점 5. 조직적인 대응

연합에 속한 병원 간의 세부적인 협력과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연합 병원 전체가 전문화되고 체계적인 진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송 등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벳아너스가 수개월 만에 50개 동물병원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병원 연합 모델의 단점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연합이라는 특성상 많은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조직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단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병원 연합 모델이 가질 수 있는 단점을 4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단점 1. 브랜드 이미지 관리의 어려움

공동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건 장점이지만,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연합에 가입한 한 병원에서 의료사고 등 문제가 발생한다면, 연합 전체의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져 잘못을 하지 않은 다른 병원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단점 2. 개별 병원 특성 반영 부재

병원 연합은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 같은 차트를 활용하고, 주요 질병에 대해 동일한 진료 프로토콜을 적용하며, 똑같은 보호자 교육 자료를 배포하기도 하죠. 이런 점은 병원 연합의 대표적인 장점이 되지만, 반대로 각 병원의 개별적, 지역적 특성이 무시될 수 있다는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연합의 표준화된 서비스가 모든 병원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단점 3. 비용 낭비

만약, 병원 연합 모델이 체계적인 경영 매뉴얼이나 목표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네트워크만 확장한다면 별다른 경영성과를 내지 못하고, 연합 가입비용만 지불하게 될 수 있습니다. 큰 가입비용과 월 회비를 지출했지만 실질적인 이득은 얻지 못할 수 있는 것이죠.

단점 4. 탈퇴의 어려움

연합 가입이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으면 탈퇴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합에서 탈퇴를 하게 되면, 연합 차원에서 했던 브랜드 이미지를 떨쳐내고 병원 고유의 이미지를 다시 세워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연합 가입에 들었던 비용과 시간도 ‘보상받을 수 없는’ 매몰비용이 됩니다.

과거 동물병원 연합 모델

우리나라 동물의료계에 동물병원 연합 모델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전북대 출신 수의사들을 중심으로 한 R그룹은 현재까지도 잘 운영되는 대표적인 동물병원 연합 모델입니다. 동물병원뿐만 아니라 CRO 등 다양한 사업 모델을 추가하며 상장까지 이뤄냈습니다.

마트에 주로 입점했던 C브랜드도 있습니다. C브랜드는 1998년 shop in shop 이라는 이념을 내걸고 6개 직영점으로 출발했습니다. Shop in Shop 이라는 이념에 맞게 대형마트 안에 동물병원을 개설하는 방식으로 몇 년 만에 100개가 넘는 동물병원을 확보했습니다.

C브랜드는 대형마트 안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개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로열티도 3% 수준으로 사람 병의원 연합 모델보다 훨씬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마트에만 입점해야 한다는 점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했습니다. 대형마트가 자체 반려동물 브랜드를 만들며 마트 입점에 제한이 걸리기도 하고, 마트가 리뉴얼 공사를 하면 강제 퇴점되거나 재입점 시 위치 변경 등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C브랜드는 회원 동물병원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으나, 100개가 넘는 동물병원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했고, 공동의 브랜드를 사용하지만 각 회원 동물병원이 각자도생하는 형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최근 등장하는 동물병원 연합 모델은 장기적으로 ‘동물의료데이터 활용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과거 동물병원 연합 모델들과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문제는 연합에 참여한 동물병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력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회사가 그리는 큰 그림에 동감하고 동참하는 곳도 있겠지만, ‘연합 모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 궁금증’, ‘참여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에 참여하는 곳도 있고, ‘대형 병원의 노하우를 배워보기 위해서’ 참여하는 곳도 있을 겁니다. 연합에 참여하는 동물병원들의 마음과 생각은 다양합니다.

강력하고 주도적인 MSO의 필요성

이처럼, 모든 병원 연합 모델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병·의원 연합 모델도 실패한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성공한 병·의원 연합 모델들을 분석해보면, 결국 체계적인 병원경영지원회사(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s)가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MSO가 성공적인 병원 연합 성공의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주도적인 병원경영지원회사가 있음으로서 서비스 차별화·표준화, 공동구매와 홍보, 직원 채용 및 관리 등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죠. 강력한 MSO는 더 나아가 임상연구, 연구교육, 환자의뢰 등 연합 병원들을 전방위적으로 돕고, 브랜드 상품 제작·판매, 공동 마케팅까지 지원합니다.

앞으로 동물병원 연합 모델이 계속 등장할텐데, MSO 차원에서 어떤 지원이 가능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물병원 연합 모델, 경영난 타개의 돌파구인가?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 새로운 동물병원 연합 모델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점차 심화되는 동물병원 경쟁 상황과 1~2년 앞으로 다가온 영리법인 동물병원 유예기간 종료, 동물진료비 게시, 사전고지, 진료비 공시 등 동물의료계의 큰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지금 준비를 하고 뭉치지 않으면 안될 것 같거든요.

또한, 반려동물 업계에 관심을 갖고 큰 투자를 한 곳들이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양한 반려동물 스타트업이 등장했는데, 커머스를 제외하면 결국 동물병원(동물의료데이터)과 함께 해야 무엇인가 이뤄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동물병원 연합 모델의 등장으로 특히 1인 동물병원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가 클 것 같습니다. 앞으로 1인 동물병원은 연합 모델에 가입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까지 나옵니다. 1인 동물병원의 경영난 타개의 해법이 ‘연합’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 병·의원 연합 모델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앞으로 생존을 위해 대부분의 병원이 연합에 가입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아무런 노력도 없이 연합 모델에만 안주하면 그 병원은 실패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결국 정답은 없고,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인 동물병원이 차별화된 진료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했다면, 굳이 생존을 위해 연합 모델에 합류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반대로 특별히 차별화되지 않은 1인 동물병원이라면 연합 가입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동물병원 네트워크 전략에 대한 이론적 고찰> 연구에서 아래와 같이 적었습니다. 지금 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원론적인 얘기를 한 것 같네요.

“규모가 크든 작든 동물병원 연합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여 동물병원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명확하고, 강력한 회사(MSO)와 회원 동물병원들이 잘 상호작용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또한, 연합 가입 조건을 까다롭게 하여 진입 장벽을 높임으로써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힘써야 하고, 표준화 작업과 동시에 각 개별 동물병원에 대한 맞춤형 경영지원에도 힘쓸 필요가 있다.”

벳아너스의 등장으로 동물병원 연합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준비 중인 연합 모델들도 수 개월 내에 구체화될 것입니다. 2022~2023년에 동물병원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제도들이 연이어 시행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동물병원 연합 모델이 동물병원 경영난 타개에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새롭게 등장하는 동물병원 연합 모델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동물병원 연합 모델, 시대적 흐름인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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