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옇던 눈이 다시 까매진다? 근거 없는 반려동물 영양제 허위광고 심각

백내장에 효과 있는 것처럼 속이는 광고에 병원 갈 필요 없다는 피부영양제 광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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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 보니까 미국에서 보지 못한 간보호제, 보조제, 영양제가 너무 많더라. 미국은 FDA 승인을 받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근거에 대한 논문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더라. 보호자들도 어디서 듣고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사용하는데,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난 11일(일) 서울시수의사회 제3차 연수교육에서 간담도계 질환을 주제로 강의한 장지훈 미국수의내과전문의(DACVIM)가 한 말이다.

보호자들이 인터넷 광고를 보고 직접 구매해서 사용하는 만큼, 만드는 회사를 신뢰할 수 있는지, 과학적인 근거·논문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장지훈 전문의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간영양제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양제가 남발하고 있다는 게 일선 수의사들의 생각이다.

특히,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주요 포털에 메인 광고를 하는 M사의 필름형 눈영양제(루테인 성분)의 경우, 안과전문동물병원을 다니는 보호자들조차 광고를 보고 구매해서 급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광고만 보면 마취 백내장으로 뿌옇던 눈이 다시 맑아지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지만, 동물용의약품이나 의약외품으로 허가받은 제품이 아니라, 애완동물용 사료 제품이다.

해당 제품은 홈페이지에 ‘질병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의약품이 아니다. 아이에게 특정 질환이 있으면, 수의사의 처방이 있는 제품 및 약물 복용을 권장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하얘진 눈을 다시 까맣게”라는 자극적인 광고 내용과 ‘단 하루 1+1’, ‘단 3시간만 1+1’, ‘크리스마스 특별 할인’ 등의 문구에 현혹된 보호자들에게 길고 긴 제품 소개 페이지 밑에 잠깐 언급된 “질환 치료의 효과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또한, 광고 이미지에도 ‘소비자 실제 사진이며 촬영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본 제품은 질병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의약품이 아닌 영양제품’이라고 명시했지만, 구석에 회색의 작은 글씨로 적어놨을 뿐이다. 광고를 접한 보호자 중 해당 문구를 발견한 보호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 제품뿐만이 아니다. 동물병원에 갈 필요 없이 제품만 먹이면 치석이 제거되고, 기관지협착증이 완화되고, 피부병이 개선될 것 같은 자극적인 광고가 넘쳐난다.

“보호자들이 효과에 긴가민가하면서도 아픈 반려동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을까 기대하며 구매하게 된다”는 게 일선 임상수의사들의 이야기다. 일부 업체가 ‘반려동물에게 잘해주고자 하는 보호자들의 마음’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M사 제품은 정말 백내장을 개선해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안재상 청담눈초롱안과동물병원 원장(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에 따르면, 해외에도 (백내장을 개선해준다는) 점안제, 구강 영양제들이 판매되고 있고 심지어 관련 논문도 있지만, 논문 대부분이 preliminary study(예비실험) 논문이며 근거가 부족하다고 한다.

미국수의안과전문의(DACVO)인 Kerry Ketring 수의사도 N-아세틸카르노신 성분의 백내장 영양제에 대해 “회사에 원본 데이터(raw data)를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하기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백내장이 아닌 다른 질환(각막부종, 각막염)도 눈이 뿌옇게 보일 수 있다(@안재상 원장).

그런데, 인터넷에는 효과를 봤다는 후기가 많다. 비포-애프터 사진까지 있다. 보호자들이 효과를 봤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추정된다.

우선, 플라시보 효과일 가능성이 있다. 뭔가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반려견의 경우 후각·청각이 발달되어 있어서 백내장으로 시력을 소실한 개체도 적응 시간을 거치면 마치 보이는 것처럼 잘 다니는 경우가 꽤 있다. 특히, 가구 배치가 바뀌지 않는다면, 집 안에서 잘 다닌다. 이런 상황을 보호자가 개선됐다고 오해할 수 있다.

둘째, 사진을 촬영하는 조명과 각도에 따라 혼탁이 달라 보일 수 있다.

셋째, 동공이 작아지면 수정체가 작게 보이므로 백내장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오인할 수 있다. 사진 촬영 시 주변의 밝기나 포도막염에 의한 동공 수축으로 보호자가 착각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백내장 중에서도 시력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안재상 원장에 따르면, 수정체 후방탈구가 발생하면 초점은 맞지 않지만 외부에서 봤을 때 눈이 깨끗하게 보일 수 있다. 또한, 1~2살 어린 개체에서 심한 백내장에 의해 수정체가 서서히 녹으면서 뿌연 부분이 맑아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2가지 경우 모두 안약이나 영양제 때문에 눈이 맑아진 건 아니다.

반려견의 눈이 뿌옇게 보인다고 무조건 백내장이 아니다. 각막부종이나 각막염 등 다른 질환일 수도 있고, 노화에 의한 정상적인 변화(핵경화증)일 수도 있다. 따라서, 반려견의 눈이 뿌옇게 보인다면, 영양제를 구매할 게 아니라 동물병원에 가서 백내장이 맞는지 아닌지 진단부터 받아야 한다.

안재상 원장은 “백내장인데 수술을 받지 않고 영양제만 쓴다면, 포도막염이 생기고 녹내장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반대로 백내장이 아닌데 백내장으로 오인해서 백내장 영양제만 넣는다면, 실제 치료해야 할 질환이 계속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얘진 눈을 다시 까맣게>라는 사료 광고 멘트가 얼마나 위험하고 보호자와 반려동물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안재상 원장은 “아직까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객관적으로 백내장을 좋아지게 할 수 있는 안약이나 영양제는 없다”며 “보호자분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광고에 너무 현혹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뿌옇던 눈이 다시 까매진다? 근거 없는 반려동물 영양제 허위광고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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