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해지는 반려동물 줄기세포 치료 ‘배양·치료 표준 만들어야’
일본은 2018년 가이드 확립..임상연구 참여 형태로 배양시설 없이도 줄기세포 치료 가능
반려동물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한수의학회 2023년도 춘계학술대회는 ‘생명과학 연구에서 줄기세포의 치료 및 적용’을 주제로 개최됐다.
22일 평창 알펜시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줄기세포 세션에서는 현장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활발히 펼치고 있는 동물병원 4곳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 병원은 줄기세포 치료를 주로 적용한 증례와 함께 자체적인 품질관리 노력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배양·품질관리·치료에 표준화된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보다 앞서 줄기세포 치료를 도입하고 있는 일본은 동물병원의 배양 가이드라인을 확립했다. 최근에는 자체 배양시설 없이도 원외배양된 줄기세포를 받아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임상연구체계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근골격계·신장·심혈관·신경계 등 만성질환에 주로 활용
‘암 생기는 것 아니냐’ 우려는 과학적 근거 없어
검역본부가 2018년 발표한 ‘동물용 세포치료제 안전성 평가 가이드라인’에 따라, 동물병원 수의사가 수술·처치 과정에서 자가(auto) 또는 동종(allo) 세포를 조작하는 것은 별도의 규제기관 허가를 받지 않아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동물병원이 직접 줄기세포를 배양해 다양한 개·고양이 질환에 치료적 목적으로 투약할 수 있다.
이날 학회에는 현장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메디펫동물병원, VIP동물의료센터, 애니컴메디컬센터, 충현동물종합병원이 차례로 발표에 나섰다.
각 병원마다 줄기세포를 적용하는 질환은 다양했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요 질환은 유사했다.
개에서는 척추사이원반질병(IVDD), 만성신장병(CKD), 골관절염(OA), 심혈관계 및 신경계 질환 등 완치가 어려운 만성질환이나 수술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에 활용됐다.
고양이에서는 만성신장병(CKD)과 만성구내염(FCGS)이 공통적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VIP동물의료센터가 2020년 1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실시한 줄기세포 치료 411건을 분석한 결과 개에서는 신장질환이, 고양이에서는 치과질환의 케이스가 가장 많았다.
충현동물종합병원이 2019년 7월부터 2023년 3월까지 개에서 진행한 줄기세포 치료 402건을 분석한 결과, 질환별로는 척추사이원반질병, 슬개골내측탈구, 승모판폐쇄부전, 만성신장병, 췌장염 순으로 많았다.
치료 효과에 만족하지 않은 보호자는 1~2회 투여에 그치기도 하지만, 효과를 거둔 경우 많게는 50회까지도 진행됐다.
메디펫동물병원 구민 원장은 “교과서적인 표준 치료를 진행했음에도 호전되지 않는 경우에 줄기세포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보호자에게도 충분히 설명해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충현동물종합병원 강종일 원장은 “줄기세포 치료가 기대보다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보호자와 동물 모두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분야”라고 전했다.
‘줄기세포를 맞으면 암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목했다.
VIP동물의료센터 정소영 줄기세포센터 팀장은 “줄기세포 배양 중 종양이 발생할 확률은 어린 개체에서 자연적으로 종양이 생길 확률보다도 낮고 배양 과정에서 스크리닝도 가능하다”며 “사람에서 2천건 이상의 줄기세포 치료 케이스를 분석한 결과 5년 이상 추적관찰 환자에서 종양이 발생한 사례는 없었다”고 전했다.
병원마다 줄기세포 품질관리 노력하지만..
‘표준 가이드 필요하다’ 한 목소리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은 규제당국이 안전성·효능을 책임진다. 의약품 제조시설도 따로 허가해주고, 품목허가에도 안전성시험과 임상시험을 거친다.
반면 줄기세포는 각 동물병원이 직접 배양해서 사용한다. 각 병원이 원내에서 배양한 줄기세포의 안전성과 효능을 각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날 연자들은 줄기세포의 안전성·효능을 점검하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들을 소개했다.
줄기세포의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거나 현미경 검사를 실시하는 한편, 오염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마이코플라스마 검사 등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치료에 사용하는 줄기세포의 계대에 상한을 두거나, 줄기세포를 배양할 조직을 기증하는 환축에 대해 감염성 질환을 배제하는 등 사전 작업을 벌이기도 한다.
이날 연자들이 소개한 각 병원의 품질관리 노력은 대체로 유사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병원마다의 노하우일수도 있지만 힘겨운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연자들은 배양부터 품질관리, 치료적 활용으로 이어지는 줄기세포 치료 과정 전반에 대한 표준을 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소영 팀장은 “줄기세포치료가 다양한 질환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일선의 배양·적용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실제 임상에서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줄기세포 품질관리와 치료 적용 과정의 표준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日 PARM, 배양시설 없이도 줄기세포 치료 가능
한국보다 앞서 보편화된 일본의 경우 동물병원 원내 제조 가이드라인이 확립되어 있다.
일본재생의료학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정익 건국대 교수는 “일본은 동물병원 원내 제조 가이드를 2018년 4월에 수립해 각 병원이 자율적으로 준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2019년 설립된 동물재생의료기술연구조합(PARM)에 주목했다.
이정익 교수에 따르면, PARM은 반려동물의 세포치료 서비스를 표준화하기 위해 여러 동물병원이 참여하는 공동연구를 수행한다. 일본 농림수산성·경제산업성 장관의 인가로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다.
일본의 동물병원에 따로 배양시설이 없어도, PARM의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형태로 줄기세포를 받아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임상시험의 형태로 원외(外)배양을 허용한 셈이다.
다만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개별 동물병원이 직접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수의사 책임하에 어떤 질병에든 사용할 수 있지만, PARM을 통하면 조합 위원회에 승인을 받은 적응증(연구대상질환)에 대해서만 활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만성신장병, 척추사이원반질병, 면역매개성용혈성빈혈, 췌장염, 골관절염 등 다양한 질환이 이미 연구대상질환에 포함되어 있어 활용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개 18개 질환, 고양이 15개 질환).
이정익 교수는 “동물병원에 배양시설을 갖추지 않고도 줄기세포 치료를 시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면서 “조합에 참여한 동물병원이 신규 임상연구대상을 신청해 승인을 받으면 (줄기세포) 적용 범위를 늘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