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약국에서 구입한 백신 자가 접종 후 쇼크
약사曰 “백신에 대한 위험부담은 보호자 책임”
8살 말티즈 보호자 A씨는 지난 6일 한 동물약국에서 강아지 켄넬코프 백신과 DHPPi백신을 구입하고, 강아지에 직접 주사했다. 그런데 주사 후 3분이 지나자 강아지가 휘청휘청 걷다가 힘없이 쭉 뻗고 눈동자가 돌아가고 구토까지 하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다. 전형적인 아나필락시스 증상 이였다.
다행히 강아지는 주변 동물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당시 진료를 본 수의사는 “해당 환자는 병원에 방문했을 때, 잇몸이 창백하고 심박수가 50회 이하로 감소되어 있었고, 대변∙구토 등의 증상을 보여 응급처치를 시행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보호자 A씨는 다음날 해당 동물약국을 방문해 이토록 위험한 약을 충분한 설명 없이 팔아도 되는 거냐고 따졌지만, 약사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늘 설명한다”면서 “백신에 대한 위험부담은 동물보호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제품만 판매한 약사는 잘못이 없고, 구입한 제품을 강아지에게 주사한 보호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즉, 자가 진료의 책임은 보호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약사는 제품 판매 당시, 소독을 위해 알콜솜을 구입하려는 보호자에게 “소독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호자 A씨는 현재 약값에 대한 보상만 받았을 뿐, 피해보상비나 치료비는 일절 받지 못한 상황이며, 대한수의사회를 비롯한 관할 시청, 한국소비자원 등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해당 백신의 설명서에는 “개체에 따라 간혹 백신접종 후에 식욕부진, 허탈, 피부발진, 구토, 경련 등의 과민반응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수의사와 상담하여 적절한 처치를 하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와 같이 부작용 위험이 있는 백신이 어떻게 수의사 없이 동물약국에서 누구에게나 쉽게 판매되는 것일까?
이는 개의 백신 중 광견병, 렙토스피라 등 인수공통전염병에 해당하는 백신만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즉, 지난해 8월 동물용의약품의 오·남용을 막고자 수의사처방제가 실시됐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DHPPi와 켄넬코프 백신은 처방대상약품에 포함되지 않아 수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다.
결국, 약사가 판매한 백신은 법적으로 보호자에게 수의사 처방 없이 판매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제품이다.
하지만 인수공통전염병과 관계 없다하여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만 보더라도 백신 부작용으로 인해 한 생명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이런 위험한 상황을 줄이기 위해, 모든 백신(생물학적 제제)을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항목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또 한 가지 고민해봐야 할 문제는 바로 백신의 포장단위다.
약사법 제48조(개봉판매금지)에 의해 의약품의 용기나 포장을 개봉해서 판매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있다. 이 때문에 약국에서 제품의 포장을 뜯어 낱개로 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백신은 25바이알이 한 박스에 포장되어 있는 제품이지만, 제품설명서에 적힌 백신의 포장단위는 ‘1ml(1두 분)/병’이다. 이 때문에 약사가 제품을 뜯어, 그 안에 있는 백신을 병단위로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한 메이저 심장사상충 예방약에는 포장단위가 ‘1팩(6츄어블)’로 적혀있다. 총 6개의 제품이 들어있지만, 포장단위가 1팩이기 때문에, 이 제품을 팩 단위가 아닌 낱개로 뜯어서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백신 제품의 포장단위가 ‘1병’이라면, ‘설명서 역시 병마다 포함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상식적으로 보호자가 백신을 구입했을 때 설명서를 읽고 발생가능한 부작용이나 주의사항 등의 제품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제품의 설명서는 25장이 아닌, 한 장이다. 부작용 등이 한글로 표기된 설명서는 제품 박스 바깥에 한 장만 붙어있다.
백신의 포장단위를 단순히 ‘1병(바이알)’으로 볼 것인지, 25 바이알이 포함되어 있는 ‘1팩’으로 볼 것인지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만약 이 제품의 포장단위가 바이알이 아닌 팩이었다면, 해당약국에서 이 백신을 낱개로 판매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의사처방제가 시행된 지 약 5개월이 지났다. 수백 개 수준이던 동물약국도 2천여 개까지 증가했다.
반려동물보호자들은 ‘동물의약품 취급·판매 약국’ 이라는 판넬을 보고 약국에 들어가 동물용의약품을 구입하기 쉽다. 하지만 약국에서는 이번 사건 같은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어떠한 응급처치도 받을 수 없으며, 약사는 부작용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위해 동물병원에서 올바른 진단을 받은 후 동물용의약품을 처방·투약 받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동물의 안전을 위해 수의사처방제의 처방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약국예외조항을 없애는 등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대한수의사회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