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예외조항 약인데…’ 동물약 공급 안 돼 문제라는 약사회 주장의 모순
대한약사회, 약국에 동물약 공급 거부한 베링거인겔하임 형사고발
최근 대한약사회가 ‘넥스가드 스펙트라’ 등을 동물병원에만 공급하고 동물약국에는 공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을 형사고발했다.
하지만, 이미 심장사상충약을 동물병원으로만 공급하는 게 공정거래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원판결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수의사 처방제 약사예외조항’으로 인해 ‘처방전이 있어도 약을 조제할 수 없다’는 약사회의 주장 자체에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동물병원으로만 심장사상충예방약 공급 행위 ‘정당’ 대법원 판결
심장사상충예방약을 동물병원으로만 공급하고 동물약국으로는 공급하지 않는 유통정책은 이미 수년 전 논란이 됐고,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은 바 있다.
지난 2013년 대한약사회장이 애드보킷 제조사 바이엘, 하트가드 제조사 메리알(현 베링거인겔하임), 레볼루션 제조사 조에티스를 연이어 방문하고, ‘동물병원으로만 약을 공급하고 동물약국으로만 약을 공급하지 않는다’며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의사를 통보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 2월 애드보킷 유통사 벨벳과 레볼루션 제조사 한국조에티스를 상대로 ‘약국에 심장사상충예방약 공급을 거절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하지만, 벨벳이 “심장사상충예방약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유통채널에만 공급하겠다는 것이 판매 정책이고 그에 따라 수의사가 직접 처방하는 동물병원에만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시정명령에 불복해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018년 6월 대법원이 공정위의 상고를 기각하고 “(애드보킷에 대한 약국의 공급요청을 거절하지 말라는)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취소하라”며 벨벳의 손을 들어준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벨벳이 애드보킷 공급을 거절한 대상은 특정 동물약국에 한정되지 않는 모든 동물약국 일반”이라며 특정 사업자에 대한 거래거절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A동물약국에는 약을 공급하고, B동물약국에는 약을 공급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모든 동물약국에 공급하지 않기 때문에 불공정거래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정명령 부과처분취소소송에서 벨벳이 최종 승소하면서 벨벳에 대한 시정명령의 효력은 사라졌고, 동물병원으로만 자사 심장사상충예방약을 공급하겠다는 기존 정책도 합법적으로 유지 중이다.
약사회는 이번에 베링거를 형사고발하며 경찰에 제출할 탄원서를 접수하고 있다. 탄원서에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이) 동물약국으로는 약을 공급하지 않는 회사 측의 유통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이를 구입하기 위해 동물약국에 방문하는 동물보호자로부터 약국에 약이 없다는 비난과 함께 발길을 돌려 매출에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미, 대법원의 판단까지 나온 정책을 “매출에 타격을 입는다”는 이유로 재차 문제 삼고 있는 행태다.
“처방전이 있어도 조제, 투약 불가능” 주장, 약사예외조항으로 ‘모순’
탄원서에는 특히 “넥스가드 스펙트라 등 수의사가 직접 동물을 진료하고 발행한 처방전이 약국에 접수됐음에도 불구하고 약을 공급받지 못해 조제, 투약이 불가능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약사회 관계자는 약학전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물병원 처방전을 가져와도 약이 없어 조제를 할 수 없고, 성분이 달라 대체조제 할 수 없는 약들도 있다”며 공정위 사례와 다른 문제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수의사처방제 약사예외조항’ 때문에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사예외조항*으로 이미 넥스가드 스펙트라 등을 동물약국에서 수의사의 처방전 없이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처방전을 운운하며 공급 문제를 지적하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수의사 처방제 약사예외조항 : 약국개설자는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수의사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약사법 제85조⑦).
실제 넥스가드 스펙트라 성분(Afoxolaner+Milbemycin Oxime)이나 프론트라인, 브로드라인의 주성분인 ‘Fipronil’은 모두 수의사처방대상 성분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약국에서는 수의사 처방전 없이 판매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따라서, 해당 약들이 동물약국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면, 수의사 처방전 없이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어 동물용의약품 오남용이 발생할 수 있다. 동물을 데려갈 필요도 없고, 동물의 진료도 필요 없다.
탄원서는 ‘수의사가 직접 동물을 진료하고 발행한 처방전이 약국에 접수됐음에도 조제, 투약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약품이 약국으로 공급되면, 수의사의 진료 및 처방전 발행 없이 얼마든지 그냥 약을 팔아도 되는 상황이 생긴다. 앞 뒤가 맞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유통채널에만 공급하겠는 벨벳의 유통정책을 이미 대법원이 인정했음에도, 전문직인 약사들이 매출을 언급하며 오남용이 발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약사예외조항 때문에 동물약국에서는 수의사 처방전 없이 약을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처방전을 언급하며 약을 공급해달라는 약사회 주장은 모순”이라며 “저런 주장을 펼칠 거라면 약사회에서 먼저 약사예외조항 삭제를 주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