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 가면 사라센 탑이 있다.
중세시대 지중해 인근의 유럽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바다 너머로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이슬람인들 이었다.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의 깃발도 없고 선전포고도 없는 그들에게 잡히면 죽거나 여생을 노예로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이슬람인들이 배를 타고 오는 지 감시하기 위해 높은 망루를 짓고 항상 바다를 감시하는 사람을 두고 그들이 나타나면 모두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그 이슬람인들을 사라센인이라 하였고 그래서 그 망루를 사라센 탑이라 하였다. 높은 성벽으로 되어 있는 사라센 탑은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성이 아니라 도망치기 위한 망루였다.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슬람인들은 군사력만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게 아니라 그 문화 또한 당시 선진 문명을 자랑하였다. 고대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였듯이, 고대 로마가 사라진 중세의 모든 길은 이슬람으로 들어와 이슬람에서 뻗어나갔다. 아시아의 끝 신라와도 교류가 있었을 정도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것이다. 요즘에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하기 위해 보트피플이 되어 지중해 어디선가 조난당하여 수백 명이 떼죽음 당하거나 그들이 유럽에서 받는 대우를 보면 말이다.
고대 로마는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채택한 이후 서서히 저물어가면서 마침내 제국이 둘로 나뉘고 결국 동로마로만 잔존한다. 유럽은 작은 영토를 다스리는 봉건영주의 시대를 거치며 문화적으로 쇠퇴하고, 국가적인 체계와 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다.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난 지 57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예수가 태어난 중동의 메카에서 예언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무함마드이다. 거상이 된 그는 중년의 어느 날 천사 지브릴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고 이를 널리 알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이슬람의 시작이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슬람은 유대교와 크리스트교의 토대위에서 자라났다. 알라는 말 그대로 신이라는 뜻이며 크리스트교와 유대교가 지칭하는 그 유일신이다.
아라비아반도 아프리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그리고 인도아대륙과 그 주변의 동남아시아의 많은 섬나라들은 차례차례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관문 이베리아반도 스페인은 800여년이나 이슬람 왕국시대가 지속되었고, 알함브라 궁전을 비롯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인도에서는 당대 최첨단 건축기법이 어우러진 역사 상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 궁을 인류에게 선사하였다.
수학과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달하였고 현대적인 천문학과 화학은 이슬람 문화에서 기틀을 마련했다. 0과 아라비아 숫자는 수학을 더욱 확장시켰다.
Alcohol, Alkali, Aluminum 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화학의 기초도 이슬람 문화에서 마련되었다. 중세시대 최첨단 건축 양식인 돔 양식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무늬는 모두 이슬람에서 발전시킨 문화이다. 우리나라의 옛날 창호지 문의 반복되는 격자무늬도 아라베스크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현대의 문명이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유럽은 르네상스를 통해 부흥을 했다. 고대 인본주의 철학을 통해 유럽인들은 인간을 다시 봤고 생각하는 인간의 발견은 새로운 계층 부르주아를 탄생시켰고 그들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 원동력인 고대 철학 즉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철학은 유럽에서 발견 했을까? 아니다. 답은 이슬람에서이다. 중세암흑시대에 유럽에서는 이미 없애버린 그 철학들은 선진 문명인 이슬람의 언어로 번역되어 보존되고, 연구되어 더 발전되었다. 이것을 다시 번역해서 유럽인들에게 전파해준 것이 바로 이슬람인이다. 따라서 근대 유럽 탄생의 산파는 바로 이슬람이라 할 수 있다.
중세시대의 유럽인들은 이슬람인 들을 볼 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날 후진국이 선진국을 보는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1453년 5월 29일 술탄 메흐메트 2세가 기독교의 로마 제국인 비잔티움을 쓰러뜨리고 콘스탄티노플를 빼앗을 때 극에 달했을 그 두려움과 선망의 감정은 20세기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오스만 튀르크제국이 패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역사에서 신흥 부자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을 두려움과 선망이 한 순간에 사라졌을까?
중세시대 그리고 근대 자본주의시대 유럽인들은 이슬람을 보면서 무엇을 보고 꿈꾸었을까?
한 번쯤 자신들보다 발달한 이슬람 문화를 누려보고 싶지 않았을까?
이런 와중에 이슬람지역을 오갔던 무역상들은 그들의 문화도 실어 날랐고, 그 중 한 가지가 이슬람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던 페르시아, 터키 지역의 고급스러운 고양이였다. 커다란 눈망울에 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를 보는 순간 유럽귀족들과 그 부인들은 자신이 마치 이슬람 상류층이 된 듯 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사람이 고양이를 키웠다는 최초의 증거가 9000 년 전 유적지 중동의 예리코(Jaricho)에서 발견되었고, 고양이를 본격적으로 키우고 우상화시키기 시작한 곳은 이집트이다. 고양이가 죽으면 이집트인들은 눈썹을 밀고 애도했을 정도였다. 이 지역을 차지한 고대 로마제국은 고양이를 몰래 데려가 전 세계로 퍼뜨렸다.
디오도루스(Diodorus)라는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에 의하면 고양이를 마차로 친 로마인 마부가 화난 군중에 돌로 맞아 죽었다고 기록했을 만큼 로만인 들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컸다. 그러다 중세에 접어들자 유럽에서는 고양이를 악마의 동물로 여겨 마녀와 동일시하거나 연관 지었다. 마녀의 처형의식으로 사순절에 수백 마리의 고양이를 산채로 태워 죽였고, 스튜나 수프에 고양이고기를 넣어 먹었다.
유럽의 1000년 암흑기는 고양이에게도 암흑기 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슬람지역의 왕실이나 귀족들이 귀하게 여겼던 고양이를 유럽의 무역상들이 들여와 유럽 귀족들에게 퍼뜨렸다. 페르시아 지역의 회색 장모종과 터키 앙카라 지역의 흰색 고양이를 교배시킨 고양이들이 그렇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긴 털의 거의 모든 장모종은 바로 이 교배종으로부터 유래하였고 그 품종을 페르시안 이라고 한다. 오늘날 페르시안은 약 60종류에 이르고 있다. 초기의 블랙페르시안, 화이트 페르시안 에서, 바이컬러, 태비, 친칠라, 카메오에 이르기 까지…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말하는 흰색의 푸른 색 눈동자의 고양이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은 바로 이 하얀색의 페르시안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 빅토리아 여왕도 두 마리의 블루페르시안을 키웠고 오늘날에는 영국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많은 고양이 애호가들이 생겨났다. 미국에서는 현재 8000 만 마리의 고양이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 때 마녀의 동물로 여겨졌던 고양이는 이제 인간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즉 현재의 이슬람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은 르네상스를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세계를 제패하였다. 초승달 모양의 오스만 튀르크제국의 깃발만 봐도 오금 저렸을 시기는 이미 저물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술 거의 모든 것들의 기준이 서구 유럽인의 것인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 세계 시민들은 유럽인들의 삶을 동경하며 그들을 모방하여왔다. 마치 이슬람 귀족 고양이 페르시안이 유럽귀족의 품안으로 들어갔듯이…….
그리고 이 시대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석유는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이슬람지역에서 주로 나왔고 그 의미를 아직 몰랐던 이슬람인 들은 유럽인들에게 헐값에 넘겼다. 1, 2차 세계 석유파동을 통해 이슬람인들은 석유를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다. 이슬람인들은 그 석유를 통해서 부를 축적하였고, 오랜 세월 사막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해준 상술을 가진 전 세계 16억 무슬림은 오늘날 또다시 세계 경제의 한 축이 되었다.
서구 문명이 선진 문화로 대접받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는 또 한편으로는 많은 분쟁과 고통, 그리고 문제들을 안고 있다.
유럽-이슬람 문명 충돌은 더 심화된 듯 보이고, 신자유주의 조류 속에 많은 폐해들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IMF 이후 중산층이 무너져가고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져가고 있다. 마침내 현대 문명의 심장 뉴욕, 월가 사람들의 탐욕에 오큐파이 운동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는 몸살을 앓고, 과다한 육식주의, 동물실험은 동물에 대한 학대 생명경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슬람문화는 대안 문화의 하나로서 재조명 받고 있다.
그들의 육식에 대한 엄격한 제한은 동양의 불교 정신과 함께 동물과 생명에 대한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이자문화가 없는 이슬람 경제관념은 시민들에게 이자에 대한 고통을 없애고 부의 축적을 같이 투자하고 일할 때 형성할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대안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문화가 현재의 모든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자체적인 문제 또한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때 사라센 탑을 만들 정도로 공포에 떨었던 이슬람에 대해 유럽인들은 그들의 지식과 문화를 수용하여 발전시켰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슬람과 유럽, 이 두 문화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천 수 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들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세계 문명을 이끌어왔듯이 이들 문화권 뿐 만아니라 한동안 잊혔던 대한민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권 또한 언제 세계 중심 문화로 될지 알 수는 없다.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페르시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