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처방전 받아오세요” 보호자에 불법 처방전 발급 안내한 동물약국
고양이 보호자에게 불법 처방전 발급 방법 자세히 안내
동물약국이 보호자가 동물 자가진료에 사용할 전문의약품을 판매하기 위해 불법 처방전 발급 방법을 안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일부 동물약국이 보호자의 불법 자가진료 행위는 물론, 불법 처방전 발급까지 유도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양이 보호자가 크레메진 처방 요청하자 “의료기관에서 이렇게 처방전 받아오세요” 안내
처방전 발급방법 안내한 동물약국과 처방전 발급한 의원 동시에 고발 당해
경찰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신부전 고양이를 양육하는 보호자 A씨는 2022년 4월 26일 서울의 S동물약국을 찾아 크레메진 세립 처방을 위한 상담을 받았다.
AST-120을 주성분으로 하는 크레메진 세립(구형흡착탄)은 2005년 국내에 출시된 전문의약품으로 만성콩팥병(만성신장질환, CKD) 환자의 요독증 증상을 완화·개선하고 질병의 악화 속도를 낮춰 투석 시작 시기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려동물 신부전 환자에 처방하는 수의사도 종종 있다.
A씨는 처음부터 크레메진 세립 처방을 위해 예약 후 S동물약국을 방문했으며, 대표약사 B씨와 상담했다. 그동안의 동물병원 진료 기록도 가져갔고, 고양이의 신부전 상태도 설명했다.
S동물약국에서는 “전문의약품인 크레메진을 바로 판매할 수 없다”며 처방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어떻게 의원에서 처방전을 발급받을 수 있는지 자세한 방법을 안내했다.
S동물약국 측은 “고객님께서 요청하신 약에는 전문의약품이 포함되어 있어서 약국에서 직접 구매가 불가능하고 처방전에 의해서만 조제 및 투약이 가능하므로 의료기관에서 하기와 같은 내용으로 처방전을 받아오시면 그에 맞추어 약을 준비해드리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제공했다.
안내문에는 <환자분의 요청에 따라 위 의약품(청구코드 640002511, 약품명 크레메진세립(구형흡착탄)) 84포 규격으로 1통 비급여로 검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고객 요청 내용이 적혀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는 “본 안내문은 고객과 병의원과의 원활한 소통을 도와주기 위한 도구로써, 고객의 요청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동물약국은 이어 “고객님께서 요청하신 제품은 인체용 의약품이므로, 고객님께서는 사람에게 투여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해당 품목을 요청할 수 있으며, 의료기관과 약국에서도 사람에게 투약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처방 및 조제가 가능하다고 한 부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보호자가 해당 전문의약품을 고양이에게 투약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람에게 투약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처방전을 발급받아 오라고 안내한 셈이다.
A씨는 “동물약국 약사와 상담 후 의료기관에서 처방전을 받아오라는 안내서를 받고 건너편 2층에 있는 의원으로 갔고, 안내서를 전달한 후 크레메진 처방전을 받았다. 발급 비용은 5천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동물약국 바로 건너편 2층에 있던 C의원은 A씨에게 크레메진세립 28일분을 처방했다. A씨는 이 처방전을 이용해 S동물약국으로부터 고양이에게 사용할 크레메진 세립을 구매할 수 있었다.
A씨는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이미 (고양이가) 신부전 판정을 받았고 상태를 유지 중이라면 S동물약국에서 초기 상담 시 최대한 많은 양을 걸어두는 게 좋다. 약은 분할로 가져갈 수 있고, 가져가는 양만 결제할 수 있으며, 나중에 (약을 추가로) 가져갈 때 또다시 처방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불법으로 약을 많이 처방받는 팁을 공유했다.
해당 사실을 접한 김건용 수의사(전 대한수의사회 자가진료철폐위원회 위원)는 이 사건을 관할 보건소에 제보했다.
보건소 감시원은 C의원과의 대화에서 “동물에게 투약하기 위한 것임을 알면서 처방전을 발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해당 진술은 녹취파일로도 남았지만, C의원 측은 이후 진술을 번복해 환자가 복용하기를 원해 처방전을 발행했다고 확인서를 제출했다.
보건소 측은 S동물약국에 대해 “동물 투약 목적임을 알면서도 의약품을 판매하기 위해 의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오도록 소개·알선했다면 의료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사전에 합의된 C의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오도록 하고, 동물 보호자에게는 사람 투약 목적으로만 약품을 사용하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등 위법행위가 될 만한 부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사전에 조치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S동물약국과 C의원을 관할 경찰서에 수사 의뢰했다.
관할 경찰서의 수사 결과 C의원은 의료법위반으로 처분됐지만, S동물약국은 혐의없음으로 불송치됐다. 여기서 보건소의 수사의뢰가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건소는 S동물약국이 의료법 제27조제3항을 위반했다고 수사 의뢰했다. 의료법 제27조제3항은 “누구든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따른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명 유인행위 금지 조항이다.
경찰서는 이에 대해 “의료법 제27조 제3항의 영리목적은 소개·알선·유인행위에 따른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의료기관·의료인 측으로부터 취득한 이익을 분배받는 것을 전제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S동물약국의 B약사가 A씨를 C의원으로 알선하고 C의원 측으로부터 취득한 이익을 분배받았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리했다.
S동물약국 측이 동물에게 사용할 것을 알면서도 전문의약품을 판매한 행위는 약사법(약국개설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조제하는 경우 외에는 전문의약품을 판매하여서는 아니 된다) 위반 행위에 가까운데, 의료법 유인행위 금지 위반으로 수사 의뢰를 하니 무혐의 처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2014년 부산의 한 약국이 동물보호자에게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동물치료 목적으로 판매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해당 약국은 약사법 위반으로 처분됐었다.
이번 사건을 고발한 김건용 수의사는 “다른 법 조항(의료법 27조 3항위반)으로 수사의뢰가 되면서 약국이 처분받지 않은 점이 아쉽다”며 “크레메진이 고양이 자가진료에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보호자에게 허위 처방전을 발행받는 방법을 안내한 동물약국의 행태는 분명 문제가 있다. 동물약국이 보호자의 불법 자가진료를 유도하는 행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