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에만 돌아가면 다시 아프지?’ 가정방문까지 한 서울대 동물병원 수의사들

향기 제품(fragrance products)으로 인한 산화적 독성 증례 JVS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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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집에만 돌아가면 다시 아프지?’

지난해 7월경 서울대 동물병원으로 의뢰된 4년령 암컷 포메라니안 환자 ‘토토(가명)’는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서울대로 오기 전 지역병원에서부터 용혈성 빈혈로 수혈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에서 회복됐다가도 집으로만 돌아가면 다시 문제가 재발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서울대 동물병원 유민옥 임상교수팀은 산화적 독성으로 인한 용혈성 빈혈을 치료하면서도 원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빈혈에서 회복되면 병원에선 멀쩡했는데, 퇴원하기만 하면 문제가 재발했다. 유 교수가 직접 자신의 집에 데려가 보기까지 했다.

그렇게 토토가 10번째 입원을 마치던 날, 서울대 진료진은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가정 방문까지 진행했다. 의심되는 독성물질을 찾기 위해 가스분석기까지 빌려갔다. 보호자의 집에서는 방향제, 향수, 스프레이 등 수많은 향기 제품(fragrance products)이 확인됐다.

유 교수팀은 향기 제품으로 인한 산화적 용혈 증례를 대한수의학회 국제학술지 JVS(Journal of veterinary science) 온라인 판에 8월 발표했다.

토토는 지난해 5월 갈색 구토, 설사, 혈색소뇨, 검은 혀 등의 증상으로 지역 병원에 내원하여, 용혈성 빈혈에 대한 수혈 치료를 받았다. 지역 병원에서 면역매개용혈빈혈(IMHA)에 대한 치료적 진단을 시도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토토는 지역 병원에서부터 수혈을 받으면 회복됐다가 퇴원하면 증상이 재발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서울대 동물병원으로 전원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 동물병원에서도 4개월 간 5번에 걸쳐 유사한 상황이 반복됐다. 퇴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갈색 구토와 PCV 감소, 메트헤모글로빈혈증, 다수의 편심적혈구(eccentrocyte)를 동반한 용혈성 빈혈로 다시 내원했다.

용혈성 빈혈-수혈-퇴원을 반복하면서 토토는 3개월여간 수혈만 11차례 받았다. 나중에는 수혈할 혈관을 찾을 수 없어 수술적으로 중심정맥에 접근하는 수밖에 없었을 정도였다.

유 교수팀이 고압산소 치료를 적용한 이후에는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이 발생하긴 했지만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악화되지 않도록 막는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매번 빠른 완전 회복과 퇴원 후에는 재발하는 산화적 용혈의 패턴은 독성 물질의 존재를 시사했다”고 지목했다. 하지만 양파나 마늘, 중금속, 약물 등 산화적 손상으로 인한 용혈로 이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독성 물질의 노출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민옥 교수는 “유전 질환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여러 검사를 시도했다. 사람용 검사기기 업체에 부탁한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 음성이었다”면서 “당시 방한한 혈액학의 세계적 전문가인 Urs Giger 교수님이 큰 도움을 주셨다”고 전했다. Giger 교수는 귀국길에 토토의 검체를 가져가 직접 검사를 섭외하기도 했다.

토토의 HCT, 메트헤모글로빈혈증 양상과 치료적 개입. 지역병원(PCAC)에서 서울대 동물병원(RAH)에 처음 내원한 날을 Day 1으로 설정하면, Day -26, -11, -1, 2, 8, 15, 83, 100와 내시경 직후(Day 30), CT촬영 직후(Day 44), 보호자의 입원 면회일(Day 52)에 빈혈이 재발했다. A는 메틸렌 블루 투여를, B는 고압산소 치료를 나타낸다.
(자료 : Lee S, Seo KW, Giger U, Ryu MO. Oxidative hemolytic crises in a dog due to fragrance products: clinical insights and treatment approaches. J Vet Sci. 2024 Aug;25:e64.)

보호자의 집에만 돌아가면 문제가 재발하니 토토는 병원에 입원한 채로 3개월여를 보냈다. 유 교수는 “입원만 하면 괜찮아졌다. 병원 강아지처럼 지냈다”면서 “저희 집에도 데려가봤는데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독성물질 섭취도 확인되지 않았고, 유전병 검사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남은 실마리는 보호자의 집뿐이었다.

유 교수팀은 마지막 퇴원을 준비하면서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가정방문을 진행했다. 내과 전임수의사인 이설리 팀장이 다른 수의사 3명과 함께 보호자의 집을 방문했다. 독성가스를 감지하는 가스탐지기를 구해 토토가 평소 산책하는 경로에 있는 음식점이나 점포 등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찾은 보호자의 아파트에는 향수와 디퓨저 등 향기 제품이 즐비했다. 평소에도 화장과 향수를 즐겨 사용하는 보호자였다. 그렇게 향기 제품 15종 이상을 파악한 진료진은 이들의 사용을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보호자 자택 가정방문에서 확인된 향기 제품들

향기 제품 사용 중단을 권고한 후 토토는 곧장 병원에 돌아오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상태를 이어갔다.

하지만 5개월여가 지나 진료진은 ‘다시 갈색 구토가 재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제서야 보호자는 향기 제품 사용을 모두 중단하라는 권고를 받았음에도 사실은 헤어스프레이 1종(D제품), 향수 2종(L제품, G제품)만 사용을 중지했다고 털어놨다. 이중 헤어스프레이 D제품을 다시 쓰자마자 토토의 증상이 재발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해당 헤어스프레이 D제품을 다시 노출시켜 용혈성 빈혈이 재발하는지까지 확인해야 원인을 확정할 수 있지만, 윤리적 측면을 고려해 시도하지 않았다. 보호자도 다시 내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리날룰(Linalool)이나 소듐벤조에이트(Sodium benzoate), 부틸화하이드록시톨루엔(Butylated hydroxytoluene) 등을 보호자 집에서 확인된 향기 제품들 여럿이 중복하여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이 스프레이 형태로 개에게 노출됐을 때 메트헤모글로빈혈증과 용혈성 빈혈을 일으키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유 교수는 진료 과정에서 독성 물질의 가능성을 자주 의심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천연’을 내세우는 간식이나 영양제를 먹였다 간손상, 신장손상이 오는 케이스를 자주 접한다는 것이다.

“토토 말고도 가정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환자가 하나 더 있다”면서 산화적 손상으로 인한 용혈성 빈혈에서 화장품, 약물, 식품 등 독성물질과 환경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증례 보고(Oxidative hemolytic crises in a dog due to fragrance products: clinical insights and treatment approaches)는 국제학술지 JVS 온라인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왜 집에만 돌아가면 다시 아프지?’ 가정방문까지 한 서울대 동물병원 수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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