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약국의 실데나필 오남용 위험 지적’ 국정감사 질의 이끌어낸 수의사 제보 있었다
발기부전 자가치료용으로 오남용 정황 포착한 수의사, 정부 민원 핑퐁에 국회의원 제보까지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수의사처방제 약사예외조항의 허점으로 인한 의약품 오남용 위험을 지적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송파병)의 질의가 눈길을 끌었다.
남인순 의원은 실데나필 성분의 동물용 심장약 ‘실리정’을 동물 없이도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비아그라로 잘 알려진 실데나필 성분은 사람에서 발기부전 치료용으로 쓰인다.
의원실에서 직접 구매한 실리정 제품 실물을 제시하며 문제점을 꼬집은 남 의원의 질의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관련 문제를 남인순 의원실에 제보한 수의사 A 씨가 주인공이다.
A 씨는 5년 넘게 동물병원 현장에서 경력을 쌓은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다. 남 의원의 지역구인 송파병의 유권자이기도 하다.
실리정의 오남용 위험을 알게 된 A 수의사는 반 년 넘게 관련 정부부처에 민원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민원 핑퐁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에게도 알려 국감 질의를 이끌어냈다.
실데나필 오남용 문제 포착한 수의사가 민원 냈지만..
복지부→농식품부→복지부→농식품부 ‘핑퐁’
지역구 국회의원 제보까지
이달 초 서울시 송파구 일원에서 기자와 만난 A 수의사는 “약사예외조항 문제에 학부생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실리정 문제를 구체적으로 인지한 것은 올해 초였다.
A 수의사는 “실리정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우연히 오남용 문제로 보이는 글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발기부전 치료용으로 동물용의약품으로 나온 실데나필(실리정)을 약국에서 사서 쓸 수 있다는 내용의 네이버 카페글이었다. 의사의 처방전도 필요없고 가격도 더 저렴하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사의 처방도, 수의사의 처방도 없이 실데나필 성분 의약품을 사서 쓴다는 이야기를 접한 A 수의사는 “처음에는 당연히 불법인 줄 알고 신고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관련 법을 찾아봐도 불법이 아니더라”고 꼬집었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민원을 냈다. 수의사의 인체용의약품 오남용을 걱정하면서 인체약 사용을 보고하는 규제를 만들려 하는 반면 오히려 동물용의약품은 동물약국에서 무방비하게 일반인의 손에 쥐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약사가 동물용의약품을 아무 확인절차도 없이 아무에게나 판매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지, 허술한 관리체계를 정비할 관리방안이 있는지를 질의했다.
이렇게 A 수의사가 첫 민원을 낸 것은 2월이었다. 복지부 약무정책과로부터 첫 답변을 받는데 6개월이나 걸렸다. 그것도 “동물용의약품 소관인 농식품부에 문의하라”는 떠넘기기성 답변이었다.
곧장 농식품부에 같은 내용으로 민원을 제기했지만, 이튿날 바로 다시 복지부로 이송됐다. 이송된 민원은 나흘 뒤 또 다시 농식품부로 이송됐다. 전형적인 민원 핑퐁 행태였다.
A 수의사는 “민원 핑퐁을 겪을 때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권익위로 시선을 돌렸다”면서 “정부 내에서 책임 떠넘기기를 반복하는데 지쳐 국회의원에게도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권익위를 거쳐 결국 답변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것도 원론적 내용에 그쳤다. 실데나필은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에 해당하지만 약국개설자는 약사예외조항(약사법 제85조 제7항)에 따라 수의사 처방없이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A 수의사는 남인순 의원을 포함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러 의원들에게 실리정 문제를 알렸다. “이슈의 핵심이 약사예외조항 문제인만큼 약사법 소관인 복지위가 더 맞다고 느꼈다. 지역구 의원인 남인순 의원이 복지위 소속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했다.
국감질의 나오자 그제서야 ‘제도적 보완 검토’ 답변
동일행위에 대한 불공정, 오남용 위험에 대한 이중잣대 지적
각지 수의사회원의 지역구 의원 접점 늘려야
10월 8일(화) 남인순 의원이 실리정 문제를 국감에서 지적하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부 민원에 대한 답변도 그제서야 다시 왔다. 농식품부는 “실데나필과 같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수의사 처방 없이 판매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약사법 제85조 제7항(약사예외조항) 등 관련 규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하여 제도적 보완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나마도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의 답변은 “동물용의약품은 농식품부에 문의하라”는 식에 그쳤다.
A 수의사는 ‘동일 행위에 대한 불평등·불공정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고 거듭 말했다. 동물병원이나 동물약국이나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같은데 수의사는 동물을 진료한 이후에만 할 수 있는 반면 약사에게는 아무 조건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펜벤다졸 사건을 함께 지목했다. 2019년에 유튜브를 중심으로 동물용 구충제 펜벤다졸(fenbendazole)이 항암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암환자들의 구입으로 품귀현상을 벌였던 사례다. 당시 수의사회와 의사협회 모두 펜벤다졸 사용에 유의를 당부할 정도로 논란이 됐다.
A 수의사는 “당시 약국에서는 품절 사례가 이어지는데 동물병원은 그렇지 않았다. 동물병원은 동물을 진료한 후 사용하기 때문”이라며 “(동물약국에서) 동물용의약품이 실제로 필요한 동물에게 가는지 제도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의식은 그때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오남용 위험에 대한 이중잣대도 꼬집었다. “편의점 상비약 확대에 대해서는 그렇게 위험하다고 주장하면서 동물용의약품을 팔 때는 제대로 확인도 안 한다”며 “’그럼 쥐약도 쥐가 있는지 확인하고 팔아야 하느냐’는 식으로 댓글이 달리던데 황당한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A 수의사는 “2월부터 고생했던 민원에도 결국 행정부는 그대로였고, 열쇠가 된 것은 남인순 의원의 질의였다”면서 “저도 제 지역구 의원께 문제를 제기했던 것처럼 다른 수의사 회원분들도 각자 계신 곳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실리정에서 드러난 오남용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약사예외조항 삭제가 필요한 만큼 약사법 개정을 위해 일선 회원들이 각자의 지역구 의원을 설득하고, 이를 수의사회가 이끌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