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10곳 중 1곳은 ‘센터병원’..증가속도 더 빨라
일반병원 대비 5년생존율 높다..동물병원 분류·명칭 기준 정비될까

(사진 속 동물병원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수도권이나 6대광역시의 경우 이제는 중형 이상의 동물병원을 찾기 어렵지 않은 상황이 됐습니다.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새로 개원가에 진입하는 동물병원은 진료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분과별 진료나 입원치료 도입을 위해서라도 규모화를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규모만큼 리스크도 있지만 자리를 더 잘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깔려 있겠죠.
이런 인식은 개원가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지만,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하긴 어렵습니다. 정말 규모가 크면 더 잘 버틸까요?
행정안전부가 공식으로 집계하는 동물병원 데이터에서도 규모를 직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없습니다. 소재지와 개·폐업일, 사업장명 정도뿐이기 때문입니다. ‘총직원수’ 항목도 있긴 하지만 제대로 데이터가 입력되어 있지 않죠.
그래서 간접적이나마 참고할 수 있는 지표로 ‘사업장명’을 선정해봤습니다. 통상 수의사 숫자가 많거나 분과별 진료, 의료기기 구성에서 중대형 이상의 인프라를 구축한 동물병원은 ㅇㅇ동물의료센터, ㅁㅁ동물메디컬센터, △△동물의료원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2024년말 기준 행정안전부 동물병원 데이터에서 사업장명에 ‘센터’ 혹은 ‘의료원’을 포함한 동물병원(이하 센터병원)을 추렸습니다. 지역별 동물보호센터나 야생동물구조센터,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보전센터, 탐지견훈련센터 등 분석 목적에 맞지 않은 ‘센터’들은 제외했고요.
한계는 명확합니다. 사람 의료기관과 달리 동물병원에는 명칭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사업장명은 짓는 사람 마음대로죠. 센터병원 명칭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유명한 대형 동물병원도 여럿입니다.
‘그래도 경향을 참고해볼만 한 정도는 되지 않을까’란 기대로 시도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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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명칭을 한 동물병원 비중 11%
수도권·광역시 최근 10년간 개원 동물병원 5곳 중 1곳은 ‘센터병원’
2024년말 기준으로 국내에 영업 중인 동물병원 5,259개소 가운데 센터병원은 590개소(11.2%)다.
지역별로는 경기도(187개소), 서울(149개소), 부산(51개소) 순으로 많았다. 동물병원이 많은 지역에 센터병원도 많은 셈이다.
비중 측면에서는 부산의 센터병원 비중이 18%로 가장 높았다. 세종(17%), 서울(16%), 경기·울산·인천(14%) 순으로 이어졌다.
세종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신규 행정구역이라, 센터병원의 비중이 커진 2015년 이후에 개원한 동물병원이 많은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센터병원의 비중은 최근으로 올수록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연간 개업 동물병원 중 센터병원의 비율은 2000년대까지 5% 미만에 머물렀지만, 꾸준히 늘어 2015년 10%를 넘겼다. 2021년에는 개업한 동물병원의 23%가 센터병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경향은 수도권과 광역시에서 두드러졌다. 서울·경기·6대광역시에서 최근 10년간 개원한 동물병원 중 21.5%가 센터병원이었다. 같은 기간 그 외 시도 지역에서 개업한 센터병원 비중(8.6%)의 2.5배 달했다.

센터병원이 더 증가세 크고, 더 잘 버틴다?
일반-센터병원 5년 생존율 8%p차
센터병원을 그 외 동물병원(일반병원)과 비교하면 신규대비폐업비율, 5년 생존율에서 차이를 보였다.
당해 폐업건수를 개업건수로 나눈 신규대비폐업비율(%)은 동물병원 증감세의 정도를 반영한다.
센터병원 개원 비중이 10%를 넘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을 비교해보면, 일반병원과 센터병원에 차이가 드러난다.
이 기간 일반병원의 신규대비폐업비율은 연평균 69.2%를 기록했다. 10년간 817개소가 순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센터병원의 신규대비폐업비율은 22.3%에 그쳤다. 일반병원에 비해 훨씬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셈이다. 10년간 422개의 센터 병원이 순증했다. 전체 동물병원 중 센터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11%에 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센터병원의 순증세가 일반병원의 절반에 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증가세가 크다고도 볼 수 있다.
5년 생존율 측면에서도 유의적인 차이를 보였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개원한 동물병원 2,048개소 중 일반병원 1,740개소의 5년 생존율은 75%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개원한 센터병원 308개소의 5년 생존율은 83%로 더 높았다.

최근에는 20% 안팎을 기록할 정도로 상승 추세를 보였다.
(자료 : 행정안전부 동물병원 데이터 분석 ⓒ이규영)

(자료 : 행정안전부 동물병원 데이터 분석 ⓒ이규영)
상급동물병원 체계 도입하면서 2차 병원에만 ‘센터병원’ 허용?
중대형 병원의 생존이 더 어렵다는 지표도 있다.
2023년 서울대 산학협력단(박혁 교수)이 수행한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완화 방안 연구에서 인용한 통계청 서비스업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종사자 11인 이상 동물병원들 중 영업이익이 0원 이하인 경우가 22%에 달했다.
의료기기 투자의 감가상각을 반영하는 등 명목상으로만 영업이익이 없게 처리된 경우도 포함됐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지만, 생존을 위협받는 중대형 병원도 적지 않은 셈이다.
행정안전부 데이터로는 센터병원의 명칭만 구분할 수 있을 뿐 수의사나 기타 직원이 몇 명인지, 분과별 진료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CT·MRI로 대표되는 의료기기 인프라는 어떤 지를 세세히 확인할 수 없다.
지난해 ‘반려동물 표준 의료체계 권장(안) 도입’ 연구를 진행한 서울대 서강문 교수팀은 국내에 1·2차 동물병원 기준이 없고 동물의료센터·동물의료원·전문병원 등 동물병원 상호도 정비되지 않아 보호자에게 혼란을 일으킨다는 점을 지목했다.
환자 중증도에 맞게 병원을 선택하기 어렵고, 보호자의 진료 서핑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2차병원에만 동물의료센터 등의 명칭을 허용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서강문 교수팀은 국내 동물의료제공체계를 일반동물병원(1차), 상급종합동물병원(2차), 전문동물병원(특정과)까지 3종으로 분류하고 2차 상급종합동물병원에만 ‘동물의료센터’, ‘동물의료원’ 등의 표기를 허용하는 방안을 냈다.
수의사 숫자나 입원장 수, 진료실 수, CT·MRI 소유 여부, 일평균 초·재진건수, 박사나 전문수의사 보유에 따른 진료과목 구성 등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다만 지난해 12월 열린 공청회에서는 연구진이 상급동물병원의 구분선으로 제시한 상위 5%선을 두고서도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1차 병원 20개당 2차 병원 1개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센터병원 명칭을 사용하는 동물병원 비중은 11%에 달한다. 동물병원 분류와 명칭, 실제 도입 시 소급 적용 문제를 두고 논란의 여지가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올해 동물의료육성발전종합계획을 수립하면서 상급동물병원 체계 도입 방안을 구체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