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 중의 하나.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그리고 중력.
우주는 오로지 이 네 가지 힘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물리법칙은 이 네 가지 힘에 따른다.
원자의 핵 범위 안에서 작용하는 약한 핵력과 강한 핵력은 극단적으로 짧은 거리에서 작용하여 인간이 느끼기 힘들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건 전자기력과 중력.
질량이 있는 곳에 생기는 중력, 우주 만물을 이루는 기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해주는 신의 입자로 알려진 힉스보손, 2013년 17개의 기본 입자 중 마지막 힉스보손의 확인으로 50여년 만에 피터 힉스는 노벨상을 타고 그 이름을 지어준 이휘소 박사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위대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인간은 마침내 이 값이 0으로 수렴하게 하는 ‘힘’을 현대과학기술로 찾아내었다.
지구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는 중력은 어느 지점이 되면 마침내 사라지고 마침내 무한의 공간, 우주 공간(space)이 시작된다.
그곳에서는 거대한 지구조차 아무것도 잡지 못한다. 생명체와 무생물, 그리고 공기조차 잡을 수 없다.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은 그 중력 안에서만 살아왔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지구의 생김새를 알 수 없었다. 우주 공간에 나가서야 지구의 모양과 색깔을 알 수 있었다. 사유의 지평은 넓어졌고, 비로소 우주 속의 인간이라는 존재를 돌아볼 수 있었다.
빠르게, 높게,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
쿠베르탱의 올림픽이 추구하는 바는 인간이 중력을 이기고자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칼 벤츠가 개발하기 시작한 자동차는 점점 더 빨리 달림으로서 중력을 거스르고자 한다.
라이트 형제는 양력으로 중력을 이겨내고 하늘로 나는데 성공하였다.
인간의 역사는 중력을 이겨내는 역사였고, 그 끝은 지구의 중력이 0이 되는 우주공간으로의 이탈이다. 휘어진 시공간으로서의 중력장 그 어딘가에 위치한 인간은 또 다른 차원의 우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전쟁
시작은 전쟁이었다. 차가운 전쟁 cold war.
지구는 둘로 나뉘었고, 서로의 진영은 적대적이었으며, 또한 적대적 진영이 있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세계 체제가 되었다.
우주 비행 능력은 각자 체제의 우월성 과시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로켓 개발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므로 이것은 곧 군사적 능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양진영은 필사적으로 경쟁하였고, 중력으로부터의 완전탈출은 이렇게 소비에트 연방과 미합중국 사이의 서로에 대한 질시와 우월감이 어우러져 이루어졌다.
전근대적 국가 짜르의 러시아 제국은 1917년 일련의 과정을 지나면서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하여 소비에트 조직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사유재산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삶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다.
1776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미합중국은 원주민을 없애고 프랑스로부터 중부지역을,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남서부 지역을 차지하여 북미의 패권자가 되었고, 1, 2차 대전을 거치며 대영제국을 제치며 자본주의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기고, 마오쩌뚱의 사회주의 중국이 대륙을 차지하자 미국은 극도로 예민해지며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친다.
우주 개척은 점점 더 각자 진영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분야가 되어갔다.
사람
50년대 초미의 관심사였다. 어느 진영에서 최초의 우주인을 배출할지.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먼저 우주인을 낳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고, 57년 실제 무인 우주비행에 성공한다. 초조해진 미합중국은 1958년 서둘러 NASA를 조직하고, 머큐리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우주인 배출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1960년 마침내 미합중국도 무인우주비행에 성공하여 양 진영은 엎치락 뒤치락하여 나아간다.
하지만 1961년 4월 12일,
올해 브래드 피트보다도 훨씬 멋진,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남자로 뽑힌 유리 가가린이라는 27살 소비에트 연방의 한 청년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48분 동안 우주에서 비행을 하고 돌아온다. 2.4미터 직경의 보스토크 안에서 가가린은 지구를 보고 되돌아 온 것이다.
“지구는 푸른빛이다!”
가가린이 귀환 후 한 말이다. 그 곳에서 푸른 지구를 본 사람은 어떤 기분이 들까? 그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 소비에트 연방이 선수를 친 것이다.
약 한달 뒤 5월 5일 미합중국도 앨런 셰퍼드가 우주비행을 성공한다. 최초의 우주인 비행에는 뒤졌지만 J. F. 케네디의 아폴로 계획으로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버즈 올드린과 함께 달 착륙에 성공하여 ‘작은 한 걸음, 위대한 도약’을 이룬다. 최초로 달을 밟는 건 미국의 차지가 되었다. 진영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심지어 우주비행사조차 미국은 Astronaut 이라 부르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cosmonaut이라 불렀다.
가가린은 지구로 돌아온 후 몇 년 뒤인 1968년 비행 훈련 중 사망하였는데, 1시간 48분 동안 우주 비행 중 사진 한 장 찍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주비행 성공에 대한 의혹에 시달렸다.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역시 깃발이 펄럭이고 엔진분사자국이 없으며, 그림자의 방향이 서로 다르고 미국 애리조나 51군사지역과 지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역시 조작되었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유리 가가린과 암스트롱은 우주 개척에서 최초의 타이틀을 따고 갔다.
개
모스크바 빈민가를 떠돌아다니는 개가 잡혔다.
러시아에서는 흔한 개로 우리나라로 치면 시골에 흔한 ‘황구’나 ‘백구’ 쯤 될 듯싶다. 지금의 우리나라 같으면 10일후면 안락사나 사망할 운명(약 50%의 확률로)이겠지만 그 개는 좋은 음식과 적절한 놀이가 제공되었다. 흰 옷 입은 사람들은 그 개를 좁은 통속에 넣고 굴리고 떨어뜨리기도 하였는데, 여러 마리의 개 중 가장 잘 따라왔고, 침착하게 대처하였다.
서기장 후르시쵸프는 빨리 우주인을 배출하고 싶었고, 혁명 기념일에 즈음하여 20여 일간 훈련 끝에 선발된 그 개는 스프투니크 2호를 타고 중력을 이탈해서 우주에서 7일 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어 사망하였다. 2002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실은 발사 후 높은 열과 스트레스로 약 7시간 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귀환 장치가 없었던 스프투니크 2호에서는 어차피 지구로 되돌아올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 사건은 온도와 습도만 유지된다면 무중력상태에서 인간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1957년 11월 3일이니까, 욕심보다 겁이 많은 인간 보다 개가 먼저 우주에 도달한 최초의 생명체가 되었다.
그 개의 이름은 라이카이다. 1960년에 지구궤도를 최초로 17바퀴나 돌고 지구로 귀환한 생명체 역시 2마리의 소비에트 연방의 개의 차지였다. 스트렐카와 벨키. 유리 가가린은 그 다음이었다.
Gravity
샌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는 우주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 그만 우주 쓰레기가 덮쳐 미아가 된다. 적막한 공간에 둘만 남겨진 가운데 중력이 없는 곳에서 중력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는 자는 오로지 한 명뿐이다. 선장 조지 클루니는 그 티켓을 샌드라 블록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무의 공간으로 사라진다. 우여 곡절 끝에 지구로 귀환한 샌드라 블록, 가장 먼저 그녀를 반긴 건 중력이었다.
사유
우주에서 푸른 지구를 본 지구인은 어떤 기분이 들까? 그건 냉전 체제 이전 인류의 오랜 상상이었다. 실제 그것을 본 사람들의 사유는 중력장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과 같을까?
이것이 궁금했던 일본의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우주를 경험한 우주인 12명을 인터뷰한 책 <우주로부터의 귀환>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 We do not realize what we have on earth until we leave it ( 지구를 떠나 보지 않으면, 우리가 지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달을 돌고 돌아온 아폴로 13호 선장이 지구에 가까스로 도착하여 구조 된 다음 한 말이다.
역시 달을 돌고 온 아폴로 9호에 탑승한 스와이카트는 “우주 체험을 한 뒤에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는 없다”고 한다. 시인이나 화가가 우주 비행사로 채용되지는 않았지만 시인이나 화가, 종교가나 사상가가 된 우주 비행사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최초의 느낌을 라이카가 느꼈고, 그는 우주의 불꽃으로 사라졌다.
예의
임상수의사들은 동물병원에서 1년에 수천마리의 개들을 날마다 진료한다. 파보장염으로 피설사 하는 얘들부터, 슬개골 탈구 교정술을 통해 뼈를 깎이는 얘들, 주사 맞는 얘들까지….
그들이 그 고통을 아무 소리 없이 감내하는 건 마취제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1등으로써의 의연함 때문이리라.
산책하는 많은 개들을 보는 사람들이나 혹은 진료 테이블 위의 주사를 맞기 위해 기다리는 개들을 수의사들이 볼 때 한번쯤은 존경의 예를 표해도 될 듯 싶다. 왜냐면 그들은 인류보다 먼저 중력장 밖에 나가 또 다른 느낌과 사유를 가져본 자의 후예들이니까.
라이카 안녕!
* 엄밀한 의미에서 중력은 무한대의 공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글에서 중력이 없다는 것은 중력이 0 에 가깝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