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이름도 익숙한 길림성이다.
이번에 강의하게 된 길림종합대학교. 중국에서 세워진 최초의 수의대로 중군 수의사면허번호 1번을 배출한 곳이다. 길림대의 면적은 무려 2백만평이나 되는데 2백만평이면 연세대학교의 8배나 되는 캠퍼스 크기이다. 역시 대륙답게 학교를 지었다.
이번 강의는 지난해 9월 허난성 정저우에서의 강의(필자도 실습조교 및 마취발표를 위해 동행했다)가 무척이나 성황리에 끝나, 중국 내 많은 수의대 및 수의사들의 요청이 있어, 중국 Zoetis 주식회사가 계획한 2차 강의다. 조규만 원장님은 4~5년 전부터 중국 및 여러 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강의는 “마취“와 ”수술이론“ 강의 후 실제 환자로 live surgery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필자는 교수님의 제자로서 수의마취 강의 자료를 만드는 것을 도와드리고 Wetlab 실습조교를 하게 됐다. 교수님 외에 필자까지 중국 Zoetis주식회사로부터 전액 경비를 지원받는 형식으로 참가했다. 여기서 주목할 내용은 필자의 마취 프로토콜이 중국내 임상수의사들의 지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중국 최초의 수의대에서의 강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1일차, 인천 공항→ 길림성 장춘공항
필자와 항상 함께하는 김종오 수의사도 동행했다. 2번째 강의지만 출발 전날은 항상 떨린다.
새벽부터 인천공항으로 출발, 먼저 도착하신 조규만 원장님과 함께 8시 30분쯤 장춘행 비행기 표를 체크인했다.
1차 강의 당시 정저우행 비행기는 대한항공이었고, 이번엔 아시아나였다. 둘 다 비즈니스석이었는데 아시아나가 왜 만년 2등만 하는지 알 수 있을 듯 했다. 기내 직원들의 서비스, 기내식, 항공기수명 등.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보였다. 필자는 같은 돈이면 이제 대한항공을 이용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는 중이다.
이맘때 장춘으로 가는 비행기는 백두산 여행객들로 붐빈다. 비행기와 장춘공항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장춘 공항은 중국의 지방 공항이지만 크기는 대륙답게 상당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출입구 쪽으로 나가니 장춘시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조규만 원장님의 우호병원이기도 하다)의 원장 부부와 Zoetis 직원들이 붉은 꽃다발을 들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한국에서 비행기에 짐을 부치기 전까지는 짐이 무거워서 항상 힘들었지만 우리에 짐을 탁송으로 부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제 “귀빈”이므로 무거운 짐들은 이제 공항 직원들과 중국내 조규만원장님의 지인들과 Zoetis 직원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Zoetis 측과 우호병원 원장인 엠마(Emma)의 차를 타고 Emma 동물병원으로 출발하였다. 엠마의 차가 벤츠 ML350이란것에 살짝 놀랬으나 얼굴에 티는 절대 내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우리를 맞이 하고 있는 것은 너무 심한 슬개골 탈구로 인해 몇 년째 앞다리로만 살아온 쵸코 푸들이였다. 조규만 박사님이 온다는 소식에 몇 달 전부터 예약이 되어 있는 수술이었다.
“중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는 조규만 원장님에 말씀에 백번 공감이 갔다. 그 ‘무엇’이란 상당히 어려운 수술이라서 중국 내에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수술들이고, 보통 아픈 강아지에 관한 정보는 전혀 알려주지 않으며, 중국 도착과 동시에 프로포즈 반지처럼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라 할까…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필자와 김종오수의사는 지난해 정저우 강의 때 학을 뗐던 정신적 트라우마로 중국음식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상당하였다. 그렇지만 중국 길림성 첫 끼니는 나름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메인요리였던 해삼정식보단 주변 요리가 입맛에 맞았지만.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을 하였다.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5시쯤 되었다. 숙소는 정저우 때의 숙소보다 시설은 조금 떨어졌지만 방마다 wi-fi가 아주 잘되고 전망이 아주 좋았다.
짐을 풀고 잠깐의 휴식시간 후 내일 강의에 참석하는 수의사와 길림대 교수, 동북농업대 교수, Zoetis직원들, 베이징에서 온 조규만원장님 제자들과의 환영회에 참석하였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중국식당에서 도수가 조금 낮은 맥주는 그냥 ‘물’의 역할이다. 중국인들에게 술은 화주 정도는 되어야 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세계 1등으로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하지만 중국인들에게도 세계 1등 자리를 같이 주어도 부끄럽지 않을듯하다. 내일모레 즈음 나타나는 “내몽고에서 온 마유주 수의사“ 얘기는 조금 기다려 주시라.
2일차, 2014년 소동물 정형외과 중국 강의
중국에서의 조규만 원장님의 강의∙Live Surgery는 중국의 여러 성을 중심으로 2010년부터 크고 작은 규모로 6회 가량 열렸다. 중국 내에서 성황리에 개최되는 수의정형외과 강의로 자리잡고 있다.
이 강의를 듣기 위해 중국 각지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찾아온다. 이번 강의도 중국 내 여러 수의대의 외과교수와 신장위구르, 서안, 하얼빈, 베이징, 상하이에서 교육생들이 찾아왔다.
특히 조규만 원장님과 친분이 있는 중국 내 최고 대학인 동북농업대학인 판홍강 교수도 800Km 떨어진 베이징에서 ‘가까운 곳에 스승님의 강의가 있다’며 얼굴을 보러 오셨다.
강의는 2박 3일 일정으로 열렸다. Anesthesia, Patellar luxation, Cranial cruciate ligament rupture, External fixation에 대해 이론을 배운 후, 직접 수술참관인이 되는 Wet-lab surgery방식으로 수술 강의를 진행한다.
필자와 김종오 수의사는 교실 뒷자리에서 원장님강의를 청강하면서 원활한 강의 진행을 돕고 Live surgery시 수술조교로 활동했다.
강의 도중 몇 마디씩 통역 없이 중국어로 강의를 하거나 쉬는 시간에는 중국 수의사들에게 중국어로 설명을 하시는 조규만 원장님의 모습에 중국 수의사들이 많은 감명을 받은듯했다.
수업은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빡빡하게 진행됐지만 중국 수의사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조규만원장님의 열정이 하나가 된 숨막히는 강의였다. 교실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과 많은 수의사들은 live camera를 통한 생중계를 통해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참관하였다.
3일차, 2014년 소동물 정형외과 중국 강의
강력한 햇살을 느끼며 일어난 필자와 김종오 수의사는 이번 강의의 하이라이트를 중국인들에게 보여줄 생각에 국위를 선양한다는 마음으로 일어나 수술복과 수술장비를 챙겼다. 조원장님께서는 “무엇이 (어떤 케이스) 기다리고 있는지 기대가 되네”라고 하시면서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에 도착을 하자 우리를 반기고 있는 귀여운 테디(푸들) 2마리와 뒷다리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해 있는 강아지가 보였다. 테디들은 상당히 귀여운 얼굴에 착한 아이들이었는데 뒷다리를 못 쓴 지 한참이 되었다고 했다.
보호자분께서 애기들 때문에 여러 수의과 대학과 유명한 병원을 방문하였으나 “힘들다..어렵다..”라는 이야기만 듣고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조원장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베이징에서 장춘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셨다고 했다. 이런 보호자분의 마음에 감명을 받아 ‘요녀석들한테 최선을 다해주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한번 더 다짐했다.
오늘 수술은 일단 테디 2마리 중 1마리와 교통사고가 난 강아지를 먼저 하고 나머지 테디는 일정에 없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한국에서 Digital X-ray에 익숙해져 버린 필자에게 필름 X-ray가 선사하는 긴장감은 신선했다. 정말 자세를 정확하게 해서 찍어야 다시 안 찍기 때문이다.
원장님께 많은 질문들이 쏟아내며 폰카메라와 아이패드, 녹음기 등을 동원해 한마디로 놓치지 않으려는 중국수의사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중국이 앞으로 더욱더 위협이 되겠구나’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다.
참고로 김일산 선생님의 아버님께서는 만주에서 일본군을 때려 잡으시던 독립군의 후예이시며 지금은 베이징에서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한방 동물병원을 하시고 계신다. 척추 디스크 환자들이 전국에서 찾아오는 병원이다.
Patellar luxation, CTWO, Tibial external fixation, Femoral headectomy 의 모든 Wet lab surgery 강의가 수술대 위에 보이는 커다란 카메라로 중계됐다. 의학드라마에서 의사들이 다른 방에서 수술을 보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수술 중계 카메라를 이용한 것이다.
길림대 수의과대학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다들 조규만 원장님의 실력과 강의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live surgery가 끝나고 우리는 공식적인 강의 일정을 마감하였다.
중국 최초의 수의대 답게 수의대 본관엔 많은 교수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위로 갈수록 인민복을 입은 사진이 많이 보인다. 필자가 중국에서는 평균 이상의 키란 것을 알 수 있다.
4일차
공식적인 일정은 마감했지만, 테디(푸들)의 수술을 위해서 아침 일찍 다시 길림대학으로 출발했다. 테디의 다리를 잘 고쳐준 후 소식이 궁금해 한국에 돌아온 후 알아 보았다. “두 녀석 모두 지금은 잘 회복 중이며 몇 년 동안 펴지도 못했던 다리를 지금은 살짝 살짝 딛고 다니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회복만 잘되면 다시 네발로 뛰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식당에서 간만에 고국의 맛을 느끼며 점심을 먹은 후 유명한 온천으로 출발했다. 차를 타고 검은 흙의 밭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는 도로를 약 1시간 30분쯤 달리자, 엄청난 크기의 온천이 눈앞에 나타났다.
온천 내부에는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지 않아 사진을 못 남긴 점이 아쉽다. 엄청난 크기의 돔 형식으로 수영복을 입고 출입을 하는 노천탕인데 역시 대륙답게 사이즈만큼은 엄청났다. 필자와 김종오 수의사는 일행과 조금 떨어져 침대 의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쉬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반가운 한국어에 눈을 뜬 우리는, 온천을 마치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내몽고 양고기를 먹으러 다시 장춘시내로 향했다.
맛은 한국에서 먹던 양꼬치랑 비슷했는데 기름기가 적당히 빠져있고, 양고기의 특유의 냄새는 후추 같은 향료에 가려져 상당히 맛있었다.
내몽고에서는 독한 마유주 300미리를 간뻬이 한 후 말을 타야 성인으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내몽고에서 온 이 수의사는 필자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골치 아픈 친구였다.
50도정도 되는 화주와 맥주컵을 들고 모든 사람에게 간뻬이를 외치며 돌아다니며, 특히 필자와 김종오 수의사 옆에 붙어서 50도나 되는 술을 몇 잔이나 억지로 권하는데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마지막 저녁의 악몽이었다. 사실 술에 취해서 마지막 날 저녁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내몽고 수의사 덕에 마지막 날 저녁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악몽이였지만 고국에 돌아와서 기억해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5일차
장춘의 강한 아침 햇살을 맞이 하면서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아쉬운 중국에서의 일정을 뒤로하고 장춘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까지는 엠마 부부가 우리를 에스코트 해줬다. 엠마 부부와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집필·사진제공 : 이재득 수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