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초 과거 인턴시절 원장님으로 모셨던 조규만 원장님께 전화가 걸려와 “태기야 중국강의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 중국에 동행하던 김종오, 이재득 수의사는 작년에 정저우를 다녀왔기 때문에 많은 후배수의사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이번에는 대한민국 통신사의 기회가 나에게도 온 것이다.
이번 중국 방문은 중국 Zoetis 주식회사가 중국 내 우수고객(중국 동물병원장)들을 상대로 계획한 1년 25회 차 강의 중 한 회 차를 담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황리에 끝났던 예전 강의들 덕에 이번에도 요청이 와서 성사되었으며, 중국 Zoetis 관계자에 따르면 25회 차 강의 중 가장 빨리 마감된 강의라고 한다.
강의는 “마취이론”과 “정형외과이론 및 실습”으로 구성되었으며, 필자는 Wetlab 십습조교의 자격으로 참가하게 됐다. 모든 경비는 중국 Zoetis로부터 전액 지원받았다.
이제부터 통신사를 넘어서는 국위선양단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각자의 직업에서 국위선양을 하는 여러 국민들이 있지만, 수의분야에서 내가 외국에서 직접 본 조규만원장님은 축구계의 차범근, 박지성이자 아이스 링크의 김연아였다.
출국 전날, 간만에 가는 외국이라 부푼 기대를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오전 8시 비행기라 첫 공항리무진을 타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다.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아서 도착한 인천공항은 ‘불경기, 불경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여행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곧이어 조규만 원장님이 도착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체크인을 시작했다. 긴 줄이 대기하고 있는 이코노미 라인과 180도 다른 프레스티지 라인을 통해서 유유히 수속을 밟으면서 ‘사람은 이래서 성공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남다른 기내식과 1:1에 가까운 대접을 받다 보니 어느새 중국 정저우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나가니 한 남성이 건장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꽃다발을 들고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중국 Zoetis의 중부지역 책임자 ‘루시아’였다.
중국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신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었으나 실제로 눈앞에서 그 상황을 보니, 매일 봤었고 지금도 자주 뵙는 원장님이 남달라 보였다. 무거운 수술기구를 담은 캐리어를 차에 싣고 한결 가벼운 몸으로 숙소로 출발했다.
숙소에 짐을 푼 후 루시아(Zoetis 중부책임자)의 차를 타고 정저우 허난성농업직업대학 수의학과 교수와 함께 대망의 중국 첫 현지식을 먹기 위해 출발했다.
이동하는 동안 엄청난 문화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횡단보도가 있지만 무단 횡단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고, 중앙선의 개념이 모호해지며, 조금의 공간만 있으면 무조건 시도되는 U턴, 자전거와 오토바이, 자동차, 사람이 도로에 얽힌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쇼크는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원만하게 사고 없이 잘 다닌다는 점이 첫째였고, 둘째는 신호등이 존재하는 횡단보도에 “HHHHHHHHH” 모양의 턱을 사람들이 넘어서 건너가는 것이었다. 루시아는 그것이 U턴을 횡단보도에서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신고포상제 같은 규제로 막으려 했을 것 같은데, 중국은 그보다 실효성 있게 막아버린 것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다른 관점의 제재를 하는 것 같았다.
이런 문화적 충격을 느끼며 도착한 식당은 정저우의 유명한 샤브샤브 집이었다. 우리나라 식당과 외관상에 별 차이는 없었지만 샐러드 바 대신 샤브샤브 소스를 즐비하게 준비해 놓은 바가 있었다. 필자는 중국어를 몰라 원하는 맛을 골라먹는다기 보다는 복불복에 가까웠다. 반면 조규만 원장님은 현지인에게 중국어로 자신이 원하는 맛을 찾아 드시는 것 같아 대단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조규만 외과 동물병원에 견학을 왔던 시선생 내외를 픽업하여 국립하남성박물관을 둘러본 후 대망의 국위선양단 환영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환영식은 공안 서기, 대학교 현 학장과 차기 학장, 관계 교수 등 12명의 관계자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다음 날 생각해 보면 저녁 식사라기보다는 ‘중국 대 한국, 누가 누가 술 잘 마시나’ 자리였다.
알코올도수 50도가 넘는 중국 소주를 와인 잔에 넉넉히 부어 주고 받으면서 인사를 하는데, 그 많은 사람 술을 다 받아 마시고 돌려주는 조규만 원장님의 모습에서 국가대표 같은 자긍심도 느껴졌지만, 한편으론 너무 힘들어 보여서 안쓰러웠다. 그 많은 사람과 중국어를 농담까지 섞어서 주고받으며, 술로 대륙을 정벌(?)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몇 명이 쓰러지고 사라지고 토하고… 오프 더 레코드로 남겨야겠다.
이튿날, 전날의 과음으로 힘겹게 호텔을 빠져 나와 강의 장소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인사를 나누고, 강의실로 이동했다.
지난번 이재득 수의사의 칼럼처럼 몇몇 수의사들은 400~500km는 강의를 듣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며 중국 끝에서(정정우는 중국 가운데 위치) 강의에 참석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4, 500km면 우리나라는 끝에서 끝까지 가는 거리다.
첫 수업은 Anesthesia였고, 그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 MPL, CCLR, FHO, ESF, Fx repair 등 전반적인 정형외과 강의가 진행되었다. 중국 Zoetis가 좋아할만한 명강이었지만 이론 강의 때의 반응은 그냥 국내 세미나의 집중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의 중간에 점심을 먹는데 드디어 대륙 특유의 신기한(?) 음식 메뚜기 튀김과 변태하기 전의 매미 튀김을 맛 볼 기회가 주어졌다. 주위의 격려 아닌 격려를 받으며 시식을 했는데 예상외로 고소하고 맛있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눈 감고 드시길 권합니다)
대망의 Live surgery 강의가 시작됐다.
이론 강의 때는 사람들의 눈치가 반신반의 하는 눈치였으나 Live surgery 준비부터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고가의 정품의 포터블 스트라이커 드릴 쏘우세트, EO gas멸균과 고압증기멸균이 완료되어있는 수술팩을 수술대 옆에 준비하면서부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규만 원장님이 손 스크럽 후 입장 하는데 바다가 갈라지듯 참관인들이 길을 열어주는 모습이었다. Live surgery가 시작되면서 어제의 빈둥거리는 듯한 자세의 수강생들은 사라지고 조 원장님의 손놀림 하나하나에, 기구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명장면이 연출됐다. 필자는 조규만외과동물병원 근무 당시 수술을 자주 봐왔었고 조 원장님의 수술시간이나 깔끔함은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별다른 흥분 없이 맡은바 임무에 충실히 임했다.
FHO 시술을 보는 중국 수의사의 표정에는 경악과 환호가 공존했다. 피부 절개 후 대퇴 골두가 ‘까꿍’하고 고개를 내미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메스를 들고부터 30초, 절단 부위 트리밍 후 피부 봉합 완료까지 총 5분이 소요되면서, 수강생들은 처음에는 경악을 피부 봉합이 완료 후에는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 순간 괜히 옆에 있는 필자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울컥했다.
대부분의 wetlab 시연이 끝나고 수강생 사체 실습을 대기하고 있는데, 강의 장소를 제공한 허난농업직업대학 수의학과 교수인 田교수가 “교통사고로 수컷 강아지가 골반강내 전립전 뒤 요도 파열로 학교로 이송 중인데 조원장님께 수술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멸균 수술 팩이 남았던 터라 가능하다는 싸인이 떨어지고, 수술을 준비했다. 수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보호자가 170km 떨어진 곳에서 오고 있다는 엄청난 뒷얘기도 들었다.
강아지가 도착하고 수술이 시작됐다. 요도 완전 파열로 결국에는 치골을 골절시켜 두 파열부위를 찾았고, 문합 후 치골을 수복하면서 수술을 마무리했다. 예상치 못한 수술로 벌룬요도카테타 등 재료가 충분히 못한 상황에서도 조 원장님은 맥가이버와 같이 다른 튜브를 즉석에서 변형,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든 후 장착해 환자의 소변배출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수강생들은 입을 쩍 벌린 채, 엄지손가락 만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이후 필자, 시선생, 조 원장님이 함께 사체 실습을 지도 편달 하면서 중국 강의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모든 강의 및 실습이 끝난 후 정저우의 명물 숯불 양고기식당에서 대륙 본연의 회식 문화와 고기 먹는 문화를 체험했다. 거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모를 정도로 융성한 대접을 받았다.
셋째날, 공식일정은 전날 마무리 하고 관광을 시작했다.
첫 관광지는 판관 포청천이 활동했던 개봉시였다. 우리나라의 민속촌과 뉘앙스가 매우 흡사했다. 어릴 때 TV에서 보던 갖가지 동물 작두를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공연이 막바지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어릴 적 TV에서 보던 판관 포청천의 재판 장면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포청천이 실존 인물이 아닌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허구의 인물인줄 알았는데, 여기를 방문하면서 아니란 걸 알았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허준과 비슷한 인지도의 역사 속 인물이란 것에 깜짝 놀랐다. 또 한국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주로 중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던 점이 색달랐다.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두번째 장소인 수상가옥에 도착했다. 이 수상가옥의 기본은 우리나라 수목원이랑 동물원을 넓게 합쳐 놓은 것이었고, 그 크기는 에버랜드의 두 배 정도였다. 관광지의 넓이에 놀랐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보면서 말로만 듣던 대륙의 스케일을 몸소 느꼈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공원 안에서 하는 단순한 공연인데 말이 10마리 이상 동원되어 격투신을 연출하고, 물 폭탄과 무인 화살, 폭약 등 다양한 볼거리가 넘쳐났다. 관광지내 공연에 어울리지 않는 고퀄리티의 특수효과에 촌스러운듯하지만 특색 있는 음향과 공연자들의 마장술이 어우러지니 정말 장관이었다.
공연장을 뒤로한 우리는 황하를 옆에 두고 수목원을 산책하면서 관광을 마무리했다.
중국에서 마지막 저녁, 마지막 술자리, 마지막 현지식 체험은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시장 같은 분위기의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포장마차가 좀 더 깔끔하게 구획화 되어있으며, 한 음식의 거리가 아닌 즐비하게 다양하고 독특한 식재료와 냄새가 온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일정 동안 운전 때문에 금주를 했었던 루시아와 같이 건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일정 동안 같이 했던 동료(?)끼리 100% 말이 다 통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독특한 중국의 음식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은근히 아쉬웠다.
다음날 아침 정저우 공항으로 출발해 며칠 동안 같이 지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출국수속을 밟았다. VIP 라운지에서 그 동안의 중국 일정을 정리하고 다한국으로의 입성을 준비하면서 정저우의 모든 활동을 마무리했다.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