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약국에서 동물의 증상을 듣고 원인을 추정해 설명하고 치료약까지 판매한다면, 이는 약 판매에 따른 복약지도일까 아니면 동물에 대한 진료행위일까.
수의사처방제 시행을 앞두고 동물용 의약품 취급에 대한 약사계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러 지역 약사회에서 동물용 의약품 세미나를 개최하고, 동물약국 신고업무를 약사회가 일괄접수 해주기도 한다.
약사계는 수의사처방제를 ‘동물용 의약품’ 의약분업으로 가는 첫 걸음으로 해석하고, 동물약국의 절대적인 수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주도적인 약사들이 동물용 의약품을 적극적으로 다루게 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인근의 두 동물약국을 찾아갔다.
임상 전문지식 없는 처방은 오히려 약물 오·남용 불러 일으킬 위험있어
A약국 약사는 해당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은 곰팡이 때문이라고 말하며 이에 대한 치료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항진균제가 함유된 A모 연고제제와 동물용 의약품으로 등록된 M모 약욕샴푸를 먼저 써보고, 차도가 없으면 먹이는 항진균제를 한 달 단위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연고제제와 샴푸의 약성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같은 증상을 B 동물약국에 가서 똑같이 호소해봤다. B약국 약사는 정확한 원인을 알려면 동물병원에 가보라고 말하면서도, 세균·곰팡이·외부기생충 등 가능한 여러 원인들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동물용 의약품 O모 연고제제를 권했다.
비교적 정확히 병인을 유추해낸 A약국이나 그렇지 않았던 B약국이나 처방된 약은 항생제·항진균제·스테로이드성 소염제 등이 모두 함유된 제제였다.
이른바 ‘산탄처방’ 이다.
이와 관련해 C 수의과대학 교수는 “진료적인 측면에서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못박았다.
산탄처방으로 잠시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정확한 검사를 통해 치료법을 선택하고 치료 경과를 모니터링하여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라는 것이다.
특히 피부과 진료는 발병 초기 산탄처방을 통한 치료를 남용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완치를 방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진료행위와 복약지도 사이..핵심은 ‘진단’
수의사법에 의해서 약사는 진료행위를 할 수 없다.
약사법도 의약품에 대한 설명인 ‘복약지도’를 허용할 뿐, 진단을 하고 그에 따라 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약사법 상 복약지도의 정의는 ‘진단적 판단을 하지 않고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사례가 이와 같은 금지사항에 저촉되는 것일까.
먼저 수의사법 상 진료행위 정의는 대법원 판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법원은 수의사법 상 진료행위를 ‘수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검안·처방·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로 정의했다.
또한 의사-한의사-약사 간의 법적 갈등을 다룬 다수의 판례를 보면 ‘문진·시진·청진 등으로 병상과 병명을 규명·판단하여 이를 통해 밝혀진 질병에 적합한 약품을 처방·조제하는 행위’를 치료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약사 또는 약국의 종업원이 환자의 증세를 문진하여 감기로 진단하고 이에 대해 조제한 경우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단한 경우(대법원, 2002년 판례)도 있다.
또한 증세를 묻고 병명을 밝혀주거나, 환자가 이미 진단받은 병명이 맞다고 확인해 주는 행위도 진단행위로 판결된 판례가 있다.
이에 대해 동물용 의약품 관련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D모 약사는 “의사와 약사 사이에도 이런 갈등이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며 “동물약을 많이 다루다보면, 생리적인 측면을 알게 되면서 설명이 깊어질 수 있다. 복약지도와 진료권침해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서, 한끝 차이로 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동물약국 약사 “무조건적인 약사 배척 지양해야…처방제 확대, 임상환경 개선을 위해 수의사-약사 협력 중요해”
D약사는 “(질병의) 원인을 알려면 동물병원에 가야 한다고 안내한다. 그러면서도 약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련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하는 측면이 있다” 며 “동물약국 약사들이 진료 유사행위를 하는 것은 나도 우려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갈등이 없도록 수의사회와 약사회가 대화에 나서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D약사는 수의사처방제를 선택분업 형태의 의약분업으로 표현하면서도, 수의사와 약사가 서로 싸우지 않고 협력관계를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자처방제 도입과 약물사용내역 기록은 대단한 변화이며, 이를 시작으로 동물용 의약품 시장을 수의사-약사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D 약사는 “동물약 오·남용 문제의 진원지인 동물용 의약품 도매상 문제를 약사와 수의사가 협력해서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면서 최종적으로는 처방제 확대를 통해 수의사의 처방권을 키우고, 약사는 약품 조제·투약을 담당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C 수의과대학 교수는 “이 사례와 같은 진료적 측면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수의사 처방제 실시 품목을 대폭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은 사람과 다르다.
일반의약품을 먹고 쉬면 될 문제인지, 아니면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동물에서는 어렵다.
이런 판단은 수의학적 전문지식과 임상경험의 바탕 아래 이뤄지는 것이다.
약물 오·남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약의 전문가로서 역할이 있다는 약사계의 주장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동물용 의약품 도매상 문제 및 자가진료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에서 접근되어야지,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를 통해서만 이뤄져야 하는 전문적인 진료영역을 약국으로 확대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수의사와 약사의 역할을 보다 명확하고 세부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서로 영역을 침범하고 서로에게 자기 영역을 빼앗기고 있다는 식의 감정싸움은 지양하고,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