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짜뉴스의 시대다.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내용부터 방송사에 대한 소송 뉴스까지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고 가짜뉴스에 속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다. 미국의 한 매체는 “진짜뉴스 반응률 건수가 736만 건인 반면, 가짜뉴스 반응률 건수는 871만 건에 달했다”며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더 주목받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가짜뉴스는 자극적인 내용을 담기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주목받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인터넷과 SNS를 통한 확산도 빠르다.
가짜뉴스를 한 번 접한 사람들은 실제 사실에 대한 보도가 나와도 관심이 적거나 생각을 잘 바꾸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결국, 가짜뉴스의 시대에는 ‘해당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꼼꼼하게 의심하고 성찰하는’ 독자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최근 동물약국과 관련된 한 이익단체가 가짜뉴스로 반려동물 보호자들을 선동하고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단체는 “농림부가 추진하는 백신, 심장사상충 약의 처방화 정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입니까?”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를 제작하여 반려동물 보호자들을 선동하고 나섰다.
이들은 카드뉴스에서 ‘동물병원의 접종비용은 최대 4배 이상으로 가격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됨’, ‘동물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으신 분 있으신가요? 처방전 요구조차 무시되는 국내 동물의료의 현실’이라는 내용을 담아 “백신, 사상충약의 처방화 정책은 누구에게 가장 큰 이득이 될까요?”라고 물었다. 또한 정부가 “기습적으로 의견조회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칙 없는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지정 확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반려동물보호자 바로 여러분”이라며 서명운동을 받고 있다.
동물용의약품을 관장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성분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행정예고하자 이에 대해 반발하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가짜뉴스’
그렇다면 해당 내용들은 전부 사실일까 아니면 가짜뉴스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가짜뉴스이며,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수준을 무시한 단순 선동에 불과하다.
이번에 농식품부가 발표한 처방대상 약품 확대 행정예고에 따르면, 기존의 성분 8종의 지정을 해제하고 마취제 2종, 호르몬제 2종, 항생항균제 14종, 생물학적제제(백신) 13종, 기타 전문지식이 필요한 동물용의약품 15종을 추가 지정한 것을 알 수 있다.
수의사처방제는 2013년 8월 도입됐고 당시 전체 동물용의약품 중 15%(판매액 기준)만 처방대상 약품으로 지정됐다. 이후 2017년까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범위를 20%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 계획대로 처방대상 약품의 확대가 이뤄지는 것이다(오히려 고병원성 AI 발생 등으로 인해 계획보다 늦어진 측면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기습적으로 의견조회를 받는 것’일 수 있을까? 4년 전부터 계획된 일을 ‘기습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 단체 페이스북에는 “농림부의 날치기 법 개정에 반대의견을 올려주세요”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동물병원 접종비용 지적도 ‘가짜’
동물병원의 접종비용 지적도 문제가 있다.
이 단체는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1달 동안 동물약국 방문자 1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 백신 1회 접종비가 5만 원 이하이며, 접종횟수는 5회였다’는 결과를 얻어, 이를 동물약국 개 백신판매 값(5천원 이하)과 비교하여 최대 10배나 비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최대 4배 이상으로 가격 차이가 난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4배든, 10배든 이런 지적 자체에 문제가 있다.
진료비 자율 경쟁체계로 인해 백신접종비가 1만 원 이하로 저렴한 병원도 있다. 또한, 병원에서 사용하는 백신 제품도 수의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수입 백신과 국산 백신, 그리고 수입 백신이라 하더라도 백신 제조 회사에 따라 백신 가격이 전부 다르다.
게다가 동물병원에서의 백신접종비는 백신판매 금액 뿐 아니라 수의사의 수의학적 처치, 주사기 등 재료비, 응급약물 및 기도확보 등 접종 부작용 대처 준비 같은 사항들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지만, 동물약국의 백신 금액은 단순히 약 값만 계산된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단순히 가격이 몇 배 차이가 난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일 뿐 아니라 선동에 가깝다.
‘처방전 요구조차 무시되는 국내 동물의료의 현실’이라는 표현도 가짜
이 카드뉴스에는 ‘지난 3년 간 처방대상인 렙토스피라백신의 처방전은 단 한 건도 발행되지 않음’, ‘동물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으신 분 계신가요?’라는 내용이 나온다.
마치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들이 처방전 요구를 무시하고 처방전 발행을 거부하는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 표현이다. 그러나 수의사는 수의사법 제12조 3항에 의거, 처방전 발급 요구 시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정당한 사유 없이 처방전 발급을 거부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받는다.
처방전 발행이 없는 것은 ‘처방전 발행 요구가 없어서’ 이지 수의사가 처방전 발행을 거부해서가 아니다. 만약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의 처방전 발행을 거부하는 수의사가 있으면 수의사법 위반으로 신고하면 된다.
수의사처방제는 특정 단체 이익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수의사처방제는 동물용의약품이 오·남용되어 동물 및 축산물에 잔류하거나 항생제 내성균의 출현 등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다.
동물 및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어 사용을 제한하거나 취급에 신중을 기하여야 하는 동물약품(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구입·사용할 경우 반드시 수의사의 직접진료 후에 수의사에게 직접 조제 받거나 처방전으로 발급받아 동물약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인 것이다.
동물용의약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제도이지,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반려동물 백신과 심장사상충 예방약이 수의사 처방대상 약품으로 지정되는 것은 해당 약품이 무분별하게 사용될 경우 동물에 대한 피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을 수의사 처방 하에 접종하도록 한 것은, 올해 7월부터 반려동물에서 자가진료가 법적으로 금지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주사행위는 그 자체로도 침습적이며, 특히 백신은 부작용이 생겨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반려동물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 참고 : 백신 자가접종 부작용으로 생명을 잃거나 위험에 빠진 반려동물 사례를 포함한 동물 자가진료 부작용 사례 모음(보러 가기).
“그만 뺏기자”
“약권을 지킵시다”
이 이익단체는 최근 약사들로부터 반려동물 백신 및 심장사상충 예방약 처방대상 약품 지정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받았다.
그 서명운동 때 사용된 배너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만 뺏기자. 수의사에게 동물약을 바치려는 농림부 가만 두지 맙시다. 약권을 지킵시다”
처방대상 약품 확대를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과 연결하여 생각한다는 반증이다.
게다가, 이번에 행정예고 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확대 품목에는 반려동물 백신, 심장사상충 예방약 이외에도 알팍살론, 아이소플루란 등의 마취제, 인슐린 등의 호르몬제, 페니실린 등 항생제, 사이클로스포린 등 면역억제제, 에날라프릴 등 고혈압/신부전 치료제 등 46종의 성분이 포함됐다.
이 중 다른 품목들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이 오로지 동물약국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 만을 예로 들어 반려동물 보호자들에게 ‘반대 민원을 넣어 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 뺏기자”는 표현, 그리고 다른 품목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이 부분만으로도 동물용의약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수의사 처방제’를 단순히 이익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단체가 어느 단체인지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심지어 약국은 ‘약사예외조항’ 때문에 수의사 처방제에서 제외
처방제 회의에 참석해 의견까지 제시해놓고 “기습적으로 의견조회 받고 있다”고 선동
더 황당한 것은 심지어 약국은 수의사처방제에서 예외 되며, 이 단체 관계자가 수의사처방제 제도 도입과정, 그리고 이번에 행정예고 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품목 확대 논의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약사법 제85조 7항에 의거 약국개설자는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 일명 약사예외조항이다.
이 때문에 수의사처방제의 구멍이 ‘동물약국’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으며, 처방전 발급도 적을 수밖에 없다.
이 약사예외조항 때문에 심장사상충 예방약은 수의사 처방대상 약품으로 지정되더라도 약국에서는 수의사 처방전없이 마음껏 판매가능하다.
하지만 이 단체의 카드뉴스를 본 일부 보호자들은 “사상충약도 처방전받아서 사야 하는건가”라고 착각한다.
약사예외조항 때문에 동물약국에서는 수의사의 처방전 없이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마음껏 판매할 수 있다. 처방전 없이 약을 살 수 있는데 처방전 발행을 요구하는 보호자가 어디에 있을까?
결국 처방전 발행이 거의 없는 이유도 약사예외조항 때문인데, 이를 오히려 “동물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으신 분 계신가요?”라고 선동하는 것은 문제다.
만약 동물병원에서의 처방전 발급이 적은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면, 스스로 수의사 처방제 ‘약사예외조항 삭제’부터 요구해야 한다.
이 단체의 선동 글에는 절대로, 단 한 번도 ‘약사예외조항’에 대한 언급이 없다.
‘불리한 부분을 철저하게 배제시킨다’는 선동의 기본 원칙이다.
약사예외조항이 있긴 하지만, 약국에서도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중 주사용 백신과 주사용 항생제는 수의사의 처방전을 발급받아야지만 판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단체 관계자도 회의에 참석하여 ‘반려동물 백신의 처방대상 품목 확대’만을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장사상충 예방약은 처방대상 약품으로 지정되어도 지금처럼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아무렇게나 마음껏 팔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처방대상 약품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이 단체 관계자의 강력한 반대 때문인지, 반려동물 백신만큼은 다른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보다 1년 뒤부터 처방제 적용을 받게 될 예정이다.
고집부리기를 통해 1년의 유예기간을 더 얻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 보호자들을 자극적인 단어로 선동하면서 ‘반대 민원을 넣어 달라’는 것은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수준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단체의 선동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이들은 이미 지난해 8월 ‘미국에서도 안하는 오직 개와 고양이 자가치료금지! 아이들 치료비부담이 폭등할 수 있습니다. 우리 건강은 우리 가족이 선택하게 해주세요’라며 잘못된 내용으로 네이버에 광고를 게재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관련기사 : https://www.dailyvet.co.kr/news/policy/64779
또한, 지난해 9월에는 한 약학전문언론에 ‘예방접종비를 10배나?…농림부, 동물 자가치료규제 강행 [OOO의 시사펀치] “무자격자 외과수술만 금지하겠다”..왜 말을 바꿨나’라는 기사가 게재됐는데, 기사 내용 중 이 단체 회장의 틀린 주장들이 문제가 된 바 있다.
관련기사 : https://www.dailyvet.co.kr/news/policy/65753
당시, 이 단체의 반대 운동이 진정성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이 단체에 대한 동물보호자들의 반발도 커졌다. 일부 반려동물 보호자와 당시 이 단체 회장 사이에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관련영상 : https://www.dailyvet.co.kr/news/animalwelfare/65457
진정성이 결여된 채로, 객관적이지 않은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선동은 결국 들통 나게 된다는 교훈을 남긴 사건이었다.
진정성 결여된 자극적인 선동이 들통나서 반려동물 보호자들에게 비난 받은 적 있음에도 또 다시 선동
‘반려동물 보호자 수준’을 무시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그런데 그 단체가 또 한 번 반려동물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자극적인 선동을 벌이고 있다. 얼마나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수준을 무시하기에 이 같은 선동을 한 번도 아니라 두 번째 벌이고 있는 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 단체 관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동물용의약품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한 번 만이라도 동물의 건강과 안전한 동물용의약품 사용에 대해 생각해달라고.
그리고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수준을 무시하지 않길 바란다.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당신들의 생각만큼 그렇게 멍청하지 않기 때문이다.